[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뉴스 서비스가 '제품'이 되는 시대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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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에디터

‘저널리즘이 제품이란 말인가?’

연전에 홍콩의 영자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본사를 방문했을 때 뉴스 서비스를 ‘제품(Product)’으로 호칭하는 것을 보고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SCMP는 창간 120년이 다 된 관록의 신문. 한데, 2015년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인수한 뒤 극적인 디지털 혁신을 단행해 전 세계 신문업계의 주목을 받은 터였다. 그 성과를 둘러보러 간 자리에서 귀를 의심했던 대목이 새 뉴스 서비스를 ‘신제품’으로 부를 때였다.


온라인 독자 요구 수집·분석

뉴스에도 ‘제품 기획’ 개념 도입

뉴욕타임스 1000만 독자 견인

포털 탓만 하며 기술 혁신 방기

한국 언론 디지털 경쟁력 퇴행

새로운 발상으로 새 독자 만나야


SCMP는 당시 ‘아바쿠스(주판)’ ‘잉크스톤(벼루)’ ‘골드트레드(금실)’를 론칭한 참이었다. ‘아바쿠스’는 중국 기술 산업 전문 매체, ‘잉크스톤’은 중국 뉴스 큐레이션 앱, ‘골드트레드’는 중국 문화 소개 영상 서비스였다.

“뉴스 사이트 독자 외에 새로운 독자층을 개척하기 위해…소규모의 팀을 만들어서…새로운 뉴스 제품(News Products)을 출시하는데…성과가 미미하면 바로 접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SCMP의 알짜 콘텐츠가 되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소비자의 니즈(요구)에 맞춘 출시 전략이 적중해 시장 안착에 성공한 셈이다.

기업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는 타깃 소비자를 정하고 경쟁 제품과의 비교 우위를 따진다. 이 개념이 뉴스 서비스에 차용됐다고 보면 되겠다. 저널리즘도 사용자(User)의 반응, 다르게 말하면 충성 사용자를 거느려야 존립하고 나아가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 하버드대 저널리즘 연구기관인 니먼랩이 발표한 〈2022년 저널리즘 전망〉 서두에는 “저널리즘을 재정적으로 지탱할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면서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할 만한 저널리즘 제품(Journalism Products)을 지원하고 효율성을 개선하는 비즈니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라”고 되어 있다.

뉴스 서비스에 ‘제품적인 발상(Product Thinking)’을 접목하려는 언론사가 늘어나 ‘제품 관리자(Product Manager)’도 생겨났다. ‘제품 접근법이 저널리즘을 지킬 수 있다’는 공감대를 가진 이들이 ‘뉴스 제품 연합(News Product Alliance)’을 결성하고 노하우를 공유, 전파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는 ‘미디어 제품 관리(Media Product Management)’가 커리큘럼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뉴스가 제품이 된 시대의 의미를 곱씹게 된 계기는 뉴욕타임스(NYT)의 유료 독자 1000만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NYT는 지난 2일 지면 80만 외 온라인 독자의 증가로 합계 1000만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압도적인 수치를 짐짓 무시하고 기사를 읽다 성공의 비결이 숨은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지난해 4분기에 신규 온라인 구독자가 37만 5000명 늘었는데, 이 중 17만 1000명이 핵심 뉴스 제품(Core News Product)에서 나왔다.”

여기서 ‘뉴스 제품’이란 ‘쿠킹(레시피)’ ‘크로스워드(낱말 맞히기 퍼즐)’ ‘와이어커터(신제품 후기)’ 그리고 신문 기사를 읽어 주는 ‘Audm’ 등 NYT의 자매 유료 플랫폼이다.

NYT는 뉴스 사이트 밖 독자 확장을 위해 ‘신제품’을 꾸준히 늘렸고, 이를 ‘제품 담당 부사장’이 진두지휘한다. 이런 점에서 NYT는 신문사라는 정체성을 벗고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현기증이 일었다. 검색 플랫폼(포털)과 소셜 플랫폼(페이스북 등)이 뉴스 트래픽을 독점하는 국내 환경이 겹쳐 떠올라서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전 세계 46개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언론사 사이트 이용 비율은 꼴찌, 포털과 SNS 이용은 거꾸로 1위다. 이는 뉴스를 생산한 언론사 홈페이지는 왜소화되는 한편 외부 플랫폼 종속이 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사가 포털에 입점해 뉴스 구독자 1000만 명을 얻어도 이는 포털의 사용자일 뿐 언론사가 가질 수 있는 사용자 정보(User Data)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보면 한국 언론사는 압도적인 트래픽을 가진 포털에 얹혀 노출 효과를 누리기만 하고 정작 자체 뉴스 사이트의 경쟁력 강화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이 스스로의 플랫폼으로 유료 독자 확보와 유지에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자명해졌다. 새로운 사용자들은 지면 밖 모바일 세상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그 모바일 온리 환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주목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지켜져야 한다. 그 가치를 바꾸고 싶지 않다면, 신제품을 내놓고 새 독자와 만나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본령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방편을 바꾼다는 자세로.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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