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의 세상 터치] 반중 정서 확산하는 한·중 수교 30주년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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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찻잔 속 태풍인 줄 알았다. 이달 4일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계기로 ‘한복(韓服)공정’ 논란이 불거질 때만 해도…. 논란은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대표가 중국 국기를 전달한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함께 등장한 장면에서 촉발됐다. 국내 네티즌들은 “중국이 한복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행위”라거나 “한복은 한국 고유 의상”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중국이 추진한 한국 고대사 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빗댄 ‘한복공정’으로 표현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같은 대응은 사실 관계를 살펴봤을 때 과한 측면이 있으며, 한·중 갈등을 부추기는 과민 반응이라는 일각의 의견도 나왔다. 조선족뿐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 대표 모두 자신들의 전통 복장으로 국기 전달 행사에 참여한 만큼 차분히 지켜보자는 게다. 이 목소리는 올림픽 쇼트트랙 종목의 잇단 편파 판정과 중국 텃세에 따른 우리나라 선수들의 불이익으로 반중(反中)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면서 묻혀 버렸다. 반중 감정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더 거세지고 전 연령대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베이징올림픽, ‘한복공정’ 논란 일어

잇단 편파 판정으로 반중 감정 폭발

양국 청년층 간 민족 갈등의 골 깊어

한국 역사·문화 침탈 시도 중단할 때

호혜평등 정신으로 협력 강화 필요

보다 성숙한 한·중 관계 미래 열어야


반중 정서가 고조되는 근본적인 원인의 제공자는 중국이다. 지속적인 ‘문화공정’ 도발이 한국인들의 중국 혐오감을 키워 온 탓이다. 중국 측이 한복을 자기네 문화로 선전한 경우만 해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제작된 베이징올림픽 홍보 영상은 한복 차림의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상모를 돌리는 모습을 담아 문화 침탈 논란을 빚었다. 중국 최대 포털인 바이두 백과사전은 ‘한복은 중국옷 한푸(漢服)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SNS에서 한국이 한복을 훔쳐 갔다고 우긴다. 채소를 절인 중국 음식 파오차이(泡菜)가 김치의 원조라는 그들의 억지 주장은 한국인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중국은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의 민족 감정을 자극했다. 중국 정부가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2002년 시작한 ‘동북공정’이 대표적이다. 만주 지역에서 한(韓)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든 고구려·발해가 중국 지방정권이었다는 주장엔 늘 분노가 치민다. 남의 역사를 강탈하는 국제 범죄이자 중대한 외교적 결례여서다. 바로 인접한 한반도에 독자적인 해당 역사를 계승한 번듯한 국가, 수천만 인구를 가진 민족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묵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올해로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년이 흘렀다. 1992년 8월 24일 한·중 양국은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반목의 40년 역사를 끝내고 정식 국교를 맺었다. 한·중 관계는 수교 초기 우호 단계에서 1998년 협력동반자,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2013년 성숙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2017년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 단계로 발전을 거듭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해 기준 한국의 최대 교역국(전체 교역량의 24.6%)이면서 최대 수출(25.9%)·수입(23.3%)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두 나라 관계가 더욱 긴밀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뜻깊은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우호가 한층 증진되기는커녕 악화될 것이 우려된다. 여야 정치권까지 반중 정서와 대통령선거의 표심을 의식해 중국 비난에 가세하자 중국 당국이 불쾌감을 표시했을 정도다. 국수주의에 물들거나 한국을 싫어하는 혐한증(嫌韓症)을 가진 일부 중국 네티즌들 역시 반중 현상에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한·중 갈등이 심화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더욱이 미래를 짊어진 양국 청년층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수교 후 25년간 한·중 교류 규모가 눈부시게 성장했던 우호·협력의 시기를 복원하는 데 양국 정부가 노력했으면 좋겠다. 양국의 협력 강화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성숙한 관계의 미래를 열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2017년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과 한류를 금지한 한한령(限韓令) 조치 이후 냉랭해진 한·중 관계에 하루속히 훈풍이 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중국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침탈하려는 꿈을 접는 것이 중요하다. 패권주의 대신에 호혜평등의 정신으로 이웃나라 한국을 대해야 할 것이다. 〈논어〉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를 가르치지 않았던가. 양국 국민들이 이 말을 명심해 근거 없는 맹목적인 비방과 무분별한 강경 발언은 삼갈 일이다. 한국 정부에는 남북문제와 한·중 교역을 이유로 일관했던 중국 눈치 보기나 저자세 외교를 탈피해 때로는 할 말을 다하는 소신을 보여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지켜 줘야 중국을 불공정하게 여기며 경계하는 반중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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