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윤 당선인의 ‘DJ 정신’ 계승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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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심판받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승리 앞에다 쓰고 싶은 말이다. 이해찬 전 대표가 2018년 “민주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 유일한 기둥으로,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고 말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민주당의 운명 또한 그럴 것 같다는 조짐은 이때부터였다. 선거 기간 내내 정권심판론이 우세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변방의 장수’ 이재명 후보는 민심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끝까지 고군분투했다. 윤석열 후보는 정계 입문 9개월 만에 대통령이 됐다. 빠른 학습력이 장점이지만 잦은 실언과 거친 발언으로 불안감도 안겨 줬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 하지만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한국을 이끌 대통령은 달라져야 한다.

윤 당선인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윤 후보를 지지한 이유도 ‘공정과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찾아서 읽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들어가고 나갈 두 사람이 강조하는 단어가 너무 똑같아서 놀랐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대부분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다. K대통령 드라마는 엔딩이 왜 항상 비극인지 모르겠다. 지난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정치 신인 대통령 당선 의미

문재인 정권·민주당 심판 민심

지방소멸 위기 더 방치 안 돼

재정분권 강력한 실천 절실

윤, 김대중·노무현 자주 거론

국민통합 위한 노력에 최선을

후보 시절의 윤 당선인을 달리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보수 정당 윤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두 대통령의 국민 통합 정신을 배우겠다고 밝혔을 때였다. 유세 현장에서도 수시로 두 전 대통령 이야기를 했다. 그게 단순한 선거용이었는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당선인도 물론 잘 알고 있겠지만,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지방자치제를 위해 싸웠다. 1971년 대선에 나섰을 때부터 줄곧 지자제 실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자제를 요구하며 13일간 목숨을 건 단식을 했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중앙 행정 권한의 지방 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스터 지방자치’ 그 자체였다.

3·9 선거일 서울에서 발간된 한 신문에 실린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칼럼은 울림이 컸다. “청년 문제보다 심각한 것이 지방 청년 문제며, 저출산 문제보다 심각한 것이 지방의 저출산 문제라는 당연한 이야기는 그 어느 후보도 하지 않았다. 그 공배에는 얻을 표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바둑 용어인 공배(空排)는 어느 쪽이 두어도 이익이나 손해가 없는 빈 밭을 말한다. 둘 곳을 다 둔 뒤에야 이 자리를 메운다. ‘공배’의 뜻을 뒤늦게 알고 마음이 더 아팠다. 수도권 민심이 대선 승부를 갈랐다고 한다. 수도권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옅어진 줄 알았던 지역감정의 심화도 우려스럽다.

당선인은 부산에서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가덕신공항 추진, KDB 산업은행 부산 이전, 경부선 지하화 등을 약속했다. 지방소멸 문제 해결도 공약했다. 전국 팔도에 뿌린 수많은 약속을 얼마나 지킬지 모르겠다. ‘국민주권·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개헌국민연대’라는 단체가 후보 4명 중 특히 윤 후보가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에 대한 공약 제시가 미흡하다고 꼬집은 바도 있어서 걱정이다. 오히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역소멸 문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진 것 같다. 안 대표는 “왜 부산시가 민간 기업 유치를 못 하는지 아시나? 중앙정부가 모든 돈과 법적인 권한을 가지기 떄문”이라고 정곡을 찔렀다. 정치는 살리는 것 아닌가. 여야 협치를 통해 지방을 살려 달라.

모든 게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회의 총 72회 가운데 29회나 참석했다. 반면에 문 대통령은 이 회의에 단 한 번 참석했다. 지난해 10월 한 행사장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초석을 놓겠다고 선언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당초 문 대통령의 목표치였던 6 대 4는 고사하고, 그 뒤 하향 조정한 7 대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의 성패는 재정분권에 달렸다고 한다. 안 대표가 지방정부의 재정권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재정분권에 대한 강력한 실천 의지를 당선자와 함께 보여 주길 기대한다. 전쟁 같은 대선을 치르며 우리 사회는 정신적으로 또 한 번 분단됐다. 대통령 당선인 앞을 당장 가로막는 주적은 ‘갈라치기’이고, 전쟁처럼 치러야 할 과제는 ‘사회통합’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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