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생활정치의 꽃, 지방선거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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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이 최근 정계 은퇴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김 전 장관이 지난해 실시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힌 뒤 선거사무소를 떠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이 최근 정계 은퇴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김 전 장관이 지난해 실시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힌 뒤 선거사무소를 떠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지방 깔보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돈과 권력이 서울로, 수도권으로 몰리는 오랜 중앙집권제로 지방은 소멸 위기에 놓였지만 그렇다고 서울의 살림살이는 나아졌는가. 인구 과밀화에 따른 집값 상승에다 교통지옥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은 쾌적함과는 거리가 먼 채 날로 팍팍해질 뿐이다. 지방과 수도권의 균형발전이 왜 중요한지 값비싼 대가를 치른 오늘에 와서야 정치권, 나아가 새 정부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그런데도 정치는 여전히 중앙에 쏠려 있다. 지방선거라 해서 지방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법이 없다. 국회가 있는 서울을 본거지로 한 정당이 방방곡곡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치가 지역주민을 위하는 게 아니라 권력 쟁취를 위한 정당의 소유물로 전락했다. 한때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고려했던 정치권이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놓고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여야가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거대정당이 독식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거대담론 저물고 생활정치 부상

지방선거도 ‘동네 생활권’ 주목

쾌적한 공동체 조성 이바지해야

권력 다툼에 골몰하는 중앙정치

지역주민의 행복엔 관심 없나

정치 혁신은 지방에서 시작돼야


새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만 해도 그렇다. 지방에서 보기에 청와대든 용산으로 옮기든 왕조시대 도성의 안과 밖 차이일 뿐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 오십보백보다. 정부 부처가 죄다 옮겨 간 행정수도 세종시는 멀찌감치 놔두고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굳이 한양을 지키겠다는 게 영 마뜩잖다. 동네 생활권인 ‘15분 도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터에 KTX를 타고도 2시간 30분 넘게 걸리는 ‘한양 천 리’ 밖의 일이 지역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동네가 이만큼 쾌적해진 것은 그 팔 할은 지방자치제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자제가 부활한 1991년 이전과는 상전벽해의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도로는 차만 쌩쌩 달릴 뿐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보도조차 충분하지 않았고 도심에서는 마땅히 걸을 길도, 꽃과 나무도, 쉴 만한 공원과 숲조차 찾기 어려웠다. 지자제 이전 그 많던 시민 세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다’는 한 대선 후보의 슬로건이 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지방자치는 생활이 정치가 되고 정치가 생활이 되는 생활정치다. 그 생활정치의 꽃은 역시 지방선거다. 15분 도시이든 21분 도시이든 의료, 보육, 문화, 생활체육 등 각종 편의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한 생활권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지방일꾼을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활정치에까지 정당이 끼어들어 권력 다툼의 장으로 물을 흐려서는 안 될 일이다. 기초의회 의원과 기초지자체 단체장의 정당공천 폐지론이 꾸준하게 나오는 이유다.

20대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일상의 행복을 찾는 생활정치가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인상이다. 거대담론의 시대가 가고 일상의 작은 담론이 정치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어서다. 겉만 번드르르한 이념 지향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문제, 작은 권리 찾기, ‘지금 여기’ 우리 동네의 발전 등 일상생활로 정치가 파고들었다. 정치가 더욱 세심하고 전문화된 정책으로 유권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살아남는 시대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정계 은퇴의 변이 이 대목에서 겹쳐진다. 그는 ‘정치를 그만둡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고 일상의 행복입니다”라고 밝혔다.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직업적 정치인의 길을 더 이상 걷고 싶지는 않다”고도 했다.

3·9 대선과 6·1 지방선거 사이에서 정치지형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의 퇴진과 세대교체는 예견된 터였다. 더불어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낳은 ‘87년 체제’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개헌이라는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정치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이번 지방선거에서 특히 여성과 청년의 정치 참여가 기대를 모은다.

지방선거가 변해야 한국 정치에 희망이 있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뿌리째 바뀌어야 우리 정치가 바뀐다. 지금까지의 하향식 중앙정당 정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풀뿌리 정치여야 비로소 정치 혁신과 개혁을 말할 수 있다. 지방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뀌고, 나라 또한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를 통해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정치 재목을 찾는 것도 유권자에겐 쏠쏠한 즐거움이다. 정치 지도자는 무릇 지방선거에서 발굴되고 키워져야 한다. 권력만 좇는 정치가 아니라 민의를 떠받드는 정치는 지방이라는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길러져야 마땅하다. 따라서 정치 혁신과 개혁의 진정한 주인공은 지역주민이며, 그 출발선은 지방선거일 수밖에 없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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