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산사의 품격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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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범어사 일주문인 조계문은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이다. 천년 고찰 범어사는 4건의 보물을 포함해 수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우리 산사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대가람이다. 부산일보DB 범어사 일주문인 조계문은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이다. 천년 고찰 범어사는 4건의 보물을 포함해 수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우리 산사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대가람이다. 부산일보DB

우리나라 산사(山寺)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이다. 지구촌이 이를 공식 인정한 때가 2018년이었다. 경남 양산 통도사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인류 문화유산으로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의 획기적 성과라 할 만하다. 산사는 특히 진입로가 아름답다. 절에 들어서는 일주문부터 사찰 수호신이 버티고 선 천왕문까지 이르는 그 길은 “성역에 이르는 공간적 의미”(유홍준 미술사학자)를 지닌다. 산사의 아름다움은 단지 풍경의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는다는 얘기다. 거기엔 세속의 욕심을 꾸짖고 오염을 정화하는 정신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산사의 가치가 물질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부산에는 금정산 자락에 범어사라는 걸출한 산사가 있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삼국유사〉에 따른다면 범어사는 1300년 이상의 세월을 잇고 있는 고찰이다. 〈범어사 창건사적〉을 봐도, 예로부터 ‘각종 법당과 요전(寮殿) 등이 별처럼 늘어서 있는 대명찰’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선찰대본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건 물론 긴 세월만큼이나 숱한 문화재들을 품에 안고 있는 대가람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만 해도 조계문, 삼층석탑,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등이 있고, 그밖에 각종 시 지정 유형문화재까지 포함하면 백수십 건에 달하는 문화재가 범어사의 안팎을 이룬다. 가람 한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등나무 군락도 있다. 이렇듯 많은 문화재와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부산의 자산이 범어사다.


세계유산 된 한국의 아름다운 산사

범어사도 숱한 문화재 품은 가치의 공간

최근 경내에 신축 건물 건립 계획

산사 원형 보존 노력에 미흡함 없길

일반인 교육·홍보 등도 중요하지만

문화유산으로 길이 남기를 소망


최근에 소식 하나를 접했다. 내용인즉슨, 일주문인 조계문을 사이에 두고 성보박물관 맞은편 나대지에 새로운 설법전 혹은 교육홍보관을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 얼마 전 범어사는 대설법전 건립 타당성 조사연구 용역을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의 일환으로 신청했다고 한다. 현대의 사찰은 수행과 전법의 도량에만 머물지 않고 일반인을 위한 교육과 문화, 복지의 열린 공간으로 변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존 설법전이 작다 보니 많은 신도나 시민들이 궂은 날에도 야외에서 법회를 들어야 할 정도로 고생한다고 하니 부산의 대표 사찰로서는 면이 서지 않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범어사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설법전이 좁다면 이외에도 선문화교육관을 비롯해 활용 가능한 시설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설법전 추가 건립과 관련해서 무엇보다 걸리는 대목은 새로 짓겠다는 건물 위치가 사찰 경내라는 점에 있다. 산의 지형을 이용한 전체적인 가람 배치와 구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돼 왔고 그것이 지니는 의미가 다 있을 텐데, 이에 대한 고려가 미흡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다. ‘문화재는 원형 보존이 원칙이므로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사업은 제외된다.’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 신청 지침도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이번 설법전 건립은 국고보조사업 지원 대상인 ‘문화재 보수·정비’ 명목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일주문 안에 새 건물을 세우는 일이 문화재 보수·정비와 관련성 있는 것 같진 않다.

전남 구례의 빼어난 전통사찰인 화엄사는 2018년 세계유산 등재에서 제외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사찰 건축 양식이나 공간 배치 등 불교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의 토착성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의 가치 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던 화엄사다. 하지만 당시 일주문 안에 신축된 템플스테이 건물 때문에 경관이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공의 건축물로 인한 원형 보존의 미흡으로 선정에서 배제된 것이다. 범어사 역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서 그 자체가 길이 보존돼야 할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범어사 경내 건물 신축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조금 형태로 국·시비가 투입되는 사업이다. 국민과 부산 시민의 혈세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해당 건축물이 왜 필요한지, 어떤 공공성의 가치를 지니는지 더 많은 시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공론화 과정이라든지 문화재위원회 같은 전문가 심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부산시가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재 유산으로서의 큰 가치를 인정받는 대가람이라면 일반인에 대한 교육과 홍보 못지않게 원형 보존 노력도 소중하다. 우리나라의 큰 절들이 잘 보존된 숲을 지키고 있는 건 사찰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어사 역시 그런 치열함으로 부산의 자산이자 자랑으로 거듭났음을 알고 있다. 범어사가 넉넉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산사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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