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누구를 위한 지방선거인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수석논설위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오전 부산 수영구 망미1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선거벽보를 설치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9일 오전 부산 수영구 망미1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선거벽보를 설치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오월도 중순이 지나며 초여름의 햇살이 제법 따갑다. 19일부터 6·1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으니 비로소 후끈한 선거 바람이 불어올지 모르겠다. 그동안 선거 분위기가 너무 뜨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2017년 대통령 탄핵과 뒤이은 궐위선거로 선거 일정이 꼬인 탓이다. 대통령선거를 치른 지 석 달도 안 돼 지방선거를 맞이하니 올림픽 직후의 전국체전처럼 시시하게 느껴지기 쉽다. 게다가 이재명,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김동연이라는 대선 주자들이 이번 지방선거 혹은 동시에 열리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모두 뛰어들었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연일 시장통에 지방행으로 동분서주하니 대선 2라운드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다. 한때는 좋아했던 대선 주자급 정치인들이 지방선거의 가치를 오염시키는 현실이 유감스럽다.


대선 2라운드 분위기 휩쓸려

지방선거 가치 오염돼 유감

부울경 특별연합은 선도 모델

당리당략으로 제동 걸면 안 돼

지역일꾼 제대로 가릴 시간

지방소멸 막을 기회 잡아야


이번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 경기도다. 지난 대선에 나섰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되어 각축을 벌이는 모습은 여러모로 주목의 대상이다. 문제는 대통령 후보와 광역자치단체장 후보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김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국가균형발전 공약을 발표했다. 부울경 등 전국 다섯 지역에 서울 수준의 메가시티를 구축하고, 충남권 이남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법인세를 추가 감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기지사 후보가 되더니 규제로 성장이 제한된 경기 동북부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공약을 내놨다. 경기도를 남북으로 나누는 경기북부 특별자치도 설치도 약속했다. 몇 달 만에 수도권 규제 강화에서 사실상 수도권 규제 완화로 백팔십도 바뀐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선과 이번 지선·보선에 연이어 나선 누구도 이 같은 딜레마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소멸에 대한 공약 제시가 미흡하다고 지적받았다. 새 정부가 산업은행 부산 이전까지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추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공화국이라는 철옹성이 호락호락하게 금은보화를 내어줄 리 만무하다. 산업은행 노조를 포함한 임직원, 서울 소재 언론사, 서울시장 후보들까지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으니 한 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이들의 논리는 모든 게 다 서울에 있으니 나눠먹기식 지방 이전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모든 게 서울에 있어서 지역균형발전을 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어서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오래전 자신들이 먼저 요구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0년 부산시장에 출마했던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 철회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당시 김 의원은 “부산을 바꿔 서울을 능가하는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라고 외쳤다. 부산은 안 바뀌었는데 사람이 바뀌었다. 부산을 떠나 분당에 출마하려다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끝난 박민식 전 의원에게서 철새의 말로를 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더 확실히 추진해야 한다”는 애매한 조건부 발언을 삼가야 한다.

어느 곳에 살거나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 김병준 전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이 주창한 새 정부의 모토다. 서울공화국의 식민지로 수탈당하다 빈사지경에 이른 부울경은 메가시티라는 전기를 마련했다. 부울경 특별연합은 전국 최초의 특별지방자치단체이자 지역균형발전의 선도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특별연합이 출범하자마자 지방선거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국민의힘 울산 시장 김두겸 후보, 경남지사 박완수 후보가 “부산에 흡수될 우려가 높다, 서부 경남이 소외되었다”는 이유로 원점 재검토까지 거론되어서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부울경 특별연합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겼다. 모든 지표는 물론이고 전문가들까지 지방은 이대로는 소멸하고 부울경처럼 뭉쳐야 산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지방선거가 되레 지방을 죽이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전에 가덕신공항을 완공하면 되지, 공사를 어떤 공법으로 할 것인가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선거로 공사 공법을 정하는 경우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나. 부산시장 후보들은 ‘올림픽 유치’나 ‘아시아 10대 행복도시’ 같은 장밋빛 목표 말고 피부에 와닿는 정책으로 대결을 펼치면 좋겠다. ‘아동·청소년 부모 빚 대물림 방지 지원 조례’는 부산 중구의회에서 처음으로 제정되어 전국 70여 개 지자체가 벤치마킹했다. 청소년들이 부모 빚을 대물림받아 신용불량자가 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역 일꾼이 필요하다. 누구를 위해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