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이 막강한 문화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메디치 / 파트릭 페노

메디치 가문은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를 후원하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문화운동인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350년간 절대강자로 군림하며 4명의 교황과 2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한 메디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메디치 가문은 어떻게 피렌체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프랑스의 소설가인 파트릭 페노의 장편 역사소설 <메디치>는 메디치 가문의 장대한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왕관 없는 제후, 피에 물든 백합, 자비의 천사 등 세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가문의 시조인 조반니 디 비치에서 시작해 르네상스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로렌초’, 정적들을 처단하며 토스카나 대공국 대공 자리에 오른 코시모 1세, 토스카나의 마지막 군주 잔가스토네로 이어지는 메디치 가문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메디치 가문을 둘러싼 정쟁과 권력암투가 누아르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보티첼리 등 후원하며 르네상스 주도
가문의 영욕 통해 ‘바람직한 삶’ 제시
1권 <왕관 없는 제후>는 메디치가를 유럽 금융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은 ‘로렌초’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로렌초는 왕에게 돈을 빌려줄 정도로 막강한 금융자본을 지닌 메디치가의 후계자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청년. 그는 헬레니즘 시대 문화를 부활시키기 위해 문예운동인 르네상스를 꿈꾼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이 가진 부와 권력을 견제하는 세력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 위협에 시달리던 로렌초는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암살 기도로 동생 줄리아노까지 잃는다. 결국 로렌초가 암살에 연루된 인물들을 하나둘씩 처단해나가며 피렌체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메디치 가문과 교황 식스투스 4세 사이에 전면전이 펼쳐진다. 이러한 전쟁을 겪으며 예술을 사랑하던 청년 로렌초가 누구보다 냉철한 제후가 변모하는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권 <피에 물든 백합>은 로렌초의 손자 코시모의 이야기. 피렌체의 48인 위원회는 지방에서 조용히 성장한 열일곱 살 청년 코시모를 꼭두각시로 세우기 위해 피렌체 공화국 지도자로 선출한다. 그러나 이 어린 야심가는 자신을 가로막는 적들을 거침없이 제거하며 피렌체의 진정한 주인으로 성장한다. 3권 <자비의 천사>는 메디치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바이에른의 왕녀 비올란테 등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랑과 결별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했던 메디치가와 피렌체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메디치가를 두고 벌어지는 권력 암투의 와중에 모나리자, 비너스의 탄생, 천지창조와 같은 예술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도 그린다. 유서 깊은 대작들이 어떠한 배경에서 제작되었는지 지켜보는 것도 이 소설의 묘미. 현대 사회에서도 근대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반복되고 있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암투는 언제나 치열하다. 이 소설은 메디치 가문의 영욕의 역사를 통해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현대인들에게 에둘러 제시하는 듯하다. 파트릭 페노 지음/홍은주 옮김/문학동네/전 3권/1권 1만 6000원, 2·3권 각 1만 5000원. 천영철 기자 c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