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돌본 장애자녀 살해한 노모…항소심 감형 이유는
1심 징역 4년→항소심 징역 3년·집유 5년
코로나19로 24시간 지적장애 자녀 돌봐
우울증 극심, 범행 이후 극단적 시도도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딸을 46년간 보살피다 살해한 70대 노모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자녀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헌신했던 노모는 코로나19로 자녀와 24시간 집에 갇혀 지내며 우울증이 극심해졌고, 비극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노모의 마음을 헤아렸다.
부산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박종훈)는 살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A(72)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A 씨는 2020년 7월 자신의 집에서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딸 B(46) 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주부인 A 씨는 지적장애 2급, 시각장애 4급 등 장애를 가진 B 씨를 어렸을 때부터 보살펴 왔다. A 씨는 B 씨를 재활원이나 여러 모임에 데려 갔으나 잦은 돌발행동으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 3월 일자리를 얻은 B 씨를 위해 A 씨는 함께 출퇴근을 하며 사회생활을 도왔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발생해 A 씨와 B 씨는 24시간을 집에서 함께 보내게 됐다.
A 씨 역시 2016년부터 우울증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B 씨와 집에만 있으면서 그 증상은 더욱 악화됐다. A 씨는 가족들에게 “사는 것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시기에 B 씨가 A 씨에게 “죽자”는 말을 하자 A 씨는 B 씨를 살해했다.
1심 재판부는 “자녀가 장애를 가졌더라도 그 때문에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며 “피고인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모두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며, 범행 외에 대안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이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행위는 엄중처벌이 마땅하나, 중증 지적장애 자녀를 오랫동안 돌본 피고인에게 여러 딱한 사정이 있다”며 “A 씨는 46년간 딸을 정성껏 보살피며 여느 부모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로 자녀와 24시간 함께 지내며 우울증이 극도로 악화돼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며 “범행 직후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 우울증약과 수면제를 한꺼번에 먹었고, 가족들도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법정에서 재판부가 범행 사실과 양형 이유 등을 설명하자 A 씨와 방청석에 앉아있던 가족들은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