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롯데를 한 번 더 믿어 본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큰 관심을 끌었던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영업 중단은 하루 만에 끝났다. 지방선거 다음 날인 2일 바로 영업을 재개해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속에 남은 찜찜함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영업 정지 하루 전날인 5월 31일까지도 칼자루를 쥔 부산시의 태도는 완강하기만 했다. 내심 언제, 어떤 매듭으로 끝날지 궁금했지만, 이렇게 하루 만에 일이 술술 풀릴지는 사실 몰랐다. 올해 초부터 경고음을 보내기 시작한 시의 태도가 임시사용 승인 기한이 다가올수록 더 강경하고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 중단일이자 지방선거일인 1일 오후부터 백화점 임시사용 승인 연장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다음 날 시의 공식 발표로 확인됐다. 영업 중단 하루 만에 시와 롯데 사이에 모종의 이야기가 진행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복점 영업 중단으로 3000여 명의 직원과 주변 상권의 타격이 매우 우려됐는데, 그런 걱정이 사라진 것은 잘된 일이다.


광복점 영업 중단 하루 만에 재개

부산시, 롯데타워 진정성 확인 해명

 

하지만 ‘롯데의 약속’ 의구심 여전

시의 갑작스런 태도 변경도 의아

 

자금 계획 제시 등 실행 방안 관건

더는 시민 기대 저버리지 않아야


그러나 이와 별개로 핵심인 롯데타워 문제가 어떻게 단 하루 만에 묘수를 찾을 수 있었는지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20년이 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어 줄곧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게 롯데타워 건립 문제다. 광복점 영업 중단 하루 만에 롯데가 시의 완강한 태도를 확 바꿀 만한 계획을 내놨다면, 시는 훨씬 전에 이 같은 강수를 뒀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시민의 지적에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다.

부산시는 지방선거에서 박형준 시장이 압승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 롯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롯데가 진정성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롯데가 롯데타워의 준공 시점을 예정보다 1년 앞당긴 2025년 말까지 하고, 타워 건립 과정과 완공 후엔 지역업체를 최우선 배려하며,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광복점 임시사용 기한을 9월 말까지 한정해 롯데에 대한 견제 장치를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밝혔다.

롯데와 부산시의 밀고당기기에서 언뜻 시가 판정승한 모양새다. 시는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는 시민을 의식해서인지, 임시사용 연장 조건으로 롯데 측의 진전된 롯데타워 건립 의사를 확인했다는 점을 힘줘 강조하고 있다. 롯데도 타워 건립의 진정성을 보여 주기 위해 그룹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며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도 사업 추진 의지를 내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를 온전히 믿기에는 그동안 롯데타워 건립에 쌓인 불신이 너무나 깊다. 당장 시민들 사이에선 20여 년 전의 약속도 백년하청인데, 이번 협약도 별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많다. 일부에선 롯데와 협약 체결일이 바로 지방선거 다음 날임을 지적하면서 롯데의 진정성이 왜 하필이면 그때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시민들은 롯데는 물론 시에 대해서도 무언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가 광복점의 임시사용 승인 기한을 4개월로 한정한 것도 이를 의식한 것이겠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롯데타워에 대한 시의 행정을 미덥지 않아 한다.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역시 롯데다. 광복점 영업 중단이라는 불을 끄기 위해 롯데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렇다고 이게 롯데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것이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실질적으로 2025년 롯데타워 완공을 위해 롯데가 어떤 조처를 하느냐가 핵심이다. 올 하반기 건축심의 접수, 내년 상반기 건축허가 신청과 같은 행정 절차 이행도 중요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그룹 내부적으로 투자 재원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 최소한 수조 원의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돼야 할 텐데,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초기부터 치밀한 준비가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룹 차원에서 롯데타워 건립에 얼마의 자금을 투입할지, 그 조달 방법은 무엇인지, 여기에 참여할 계열사는 어떻게 구성할지부터 윤곽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해 그룹 내부적으로 공유된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중요한 자금 계획이 현재 이런 지경이라면, 광복점 사건 이전엔 롯데타워 건립은 내부적으로 아예 제쳐 놓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롯데의 진정성은 바로 이 부분부터 시민들에게 증명돼야 할 듯싶다.

롯데가 정말 이전과 다른 다짐을 했다면, 이참에 부산 정서에 맞게 화끈하고 시원하게 롯데타워 문제를 마무리해 보길 바란다. 어느 기업보다 더 부산과 얽힌 인연이 많은 롯데다. 부산에서 행한 사업 규모로 보나, 지나간 세월로 보나 이제 부산시민으로부터 ‘우리 롯데’라는 말을 들을 때도 됐다. 시민들 사이에 롯데를 비방하는 말보다 칭찬하는 말이 많아지는 날을 보고 싶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