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법과 원칙만이 능사는 아니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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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출신 한 고조 유방이 귀족 가문에다 초패왕을 자처할 정도로 절대 강자였던 항우를 꺾고 천하를 차지한 배경에는 ‘법 삼장’(法 三章)이 있었다. ‘법 삼장’은 유방이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진격하면서 내세운 기치로, 살인·상해·절도에 대한 3가지 법령 외 기존 진나라의 법은 모두 폐기한다는 것이었다. 가혹했던 진나라의 법 집행에 신음하던 백성들은 환호했고 민심은 유방에게 쏠렸다. 제국 건설이 어찌 법 조항 3개만으로 가능했으랴. 유방이 그만큼 법과 원칙에 유연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로 봐야 할 것이다.

법과 원칙은 세상을 경영하는 중요한 벼리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중국 전국시대에 진나라는 법과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혼란을 종식시키고 천하통일을 달성했다. 그 중심에 이사가 있었다. 법가 사상의 완성자로 불리는 이사는 진나라 승상으로서 법의 철저한 집행이 국가 운영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진나라의 엄혹한 법치주의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평가했다. “진나라 법망은 어느 때보다 치밀했으나 간사하고 거짓된 일이 싹트기 시작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요체는 도덕에 있는 것이지 혹독한 법령에 있는 것은 아니다.” 법과 원칙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혹독한 법치’ 진나라 잃었던 민심

‘유연한 법 집행’ 한나라 고조 차지

잇단 증오 집회 등 분열과 갈등에

윤 대통령 오불관언 태도 아쉬워

위법 감시하는 검사의 시선 대신

약자에 대한 긍휼 기반 정치 해야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새 정부의 요직을 독식한다”는 세간의 숱한 지적에도 “원칙에 따라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며 일축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단체와 유튜버들의 집회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우선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달 10일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이 집회는 문 전 대통령을 향한 고성과 욕설 일색이다. 확성기 등을 이용해 각종 혐오 발언을 여과 없이 분출하면서 주민들의 고통 따위는 무시한다. 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기준을 벗어나 상대에 대한 증오감만 남는 집회라는 비판을 받는데도, 윤 대통령은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냐”며 거리를 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사태는 해결은커녕 오히려 더 꼬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서울 서초구 그의 자택 앞에서 소위 ‘맞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서울의소리가 윤 대통령이 평산마을 집회를 사실상 옹호한다며 항의성 집회를 여는 것이다. 그러자 같은 장소에서 신자유주의연대가 서울의소리 집회를 비난하는 집회를 시작했다. 시위가 시위를 낳고 증오가 증오를 부른 격이다. 일각에선 국민 갈등을 해소해야 할 현직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 갈등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말할 뿐 오불관언이다. 자신의 집 앞에서 벌어지는 두 집회에 대해서도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라고 밝혔을 뿐이다.

국토부가 쟁점이던 안전운임제 연장에 합의함으로써 지난 14일 극적으로 중단된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 사태는 약자들이 입은 상처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파업을 벌이며 화물노동자들은 유가 폭등으로 생존이 벼랑 끝에 내몰린 처지를 호소했다. 어떤 이는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의 삶은 노예 그 자체”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시선은 대체로 차가웠다. 경제계는 파업이 나라 경제를 망친다며 맹렬한 적의를 드러냈고, 다수 언론은 파업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엄정 처벌을 촉구했다.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대통령으로서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안 그래도 대내외적인 악조건으로 경제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마당에 물류 파업은 그 충격을 배가시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떠나, 법과 원칙만을 앞세웠을 뿐 화물 노동자들의 “제발 살려 달라”는 호소에는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은 검사처럼 위법 행위를 감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까지 진정성 있는 눈으로 살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원칙이 실종되고 법이 무력화되면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 국정은 혼탁해진다. 이는 엄연한 진리다. 그러나 법과 원칙의 기준이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화합과 치유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면 이는 심각히 되돌아봐야 할 문제다. 천주교 사제이자 사회운동가인 헨리 나우웬(1932~1996)은 긍휼을 당부했다. 긍휼(compassion)은 단순한 연민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타인과 하나 된다는 의미다. 나우웬이 비유한 바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묻게 된다. 법과 원칙도 인간에 대한 긍휼의 바탕 위에 서야 하는 건 아닌지, 또 그게 정치의 본령이 아닌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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