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세상에 안 예쁜 얼굴은 없어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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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26일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다큐 영화 '니얼굴'의 GV가 열리고 있다. 박종호 26일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다큐 영화 '니얼굴'의 GV가 열리고 있다. 박종호

제주도에 가고 싶어졌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끝났지만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관심 있게 지켜보고, 외로운 노인들을 부모처럼 돌보는 모습이 그저 부러웠다. 이런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혼자라도 살만하겠다 싶었다. 다운증후군인 쌍둥이 동생 영희가 오래 그려 온 그림들을 보고 영옥이 오열하는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실제로 다운증후군인 정은혜 씨가 영희 역으로 나왔다는 소식은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줬다. 자신의 드라마마다 장애인을 주요 배역으로 써 온 노희경 작가는 언젠가 “세상을 조금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을 했다. 세상을 바꾸는 글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뜻이 담긴 ‘바보’나 ‘병신’ 같은 단어를 입에 올렸던 과거를 반성한다.


다운증후군 작가 정은혜 씨

2000명 이상 캐리커쳐 그림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가능

장애 불편에 집에만 있으면

건강·교육·노동권 등 악순환

장애인 이동권 문제 해결을


지난 일요일에는 영화의전당 소극장에 다큐 영화 ‘니얼굴’의 GV를 보기 위해 갔는데 하마터면 못 볼뻔했다. 독립 다큐 영화의 매진은 영화의전당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은혜 씨가 다큐 주인공이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 초반부에 은혜 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집에만 있는 우울한 모습으로 나왔다. 이날 함께한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은혜 핸드폰으로는 전화가 오지 않고 걸 곳도 없어 전화요금이 몇 달간 0원이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세계에 틀어박혀 혼자서 울고, 웃고, 싸우는 모습이 보기에 딱했다. 그림에 재능을 발견해 캐리커처 작가가 되었지만, 그 재능은 결국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꽃을 피울 수가 있었다. 주말마다 플리마켓에 나가 모두 2000명 이상을 그렸다니 그동안 만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세상 속으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렸기에 기적처럼 오늘의 은혜 씨가 있게 된 것이었다.

2020년 기준 등록장애인은 263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1%나 된다. 하지만 거리에서 혹은 대중교통에서 은혜 씨 같은 장애인을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어디서 뭘 하고 있기에 잘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장애로 인한 불편 때문에 잘 돌아다니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도 외출하지 않는 장애인 비율이 8.8%나 되었다. 장애인 5명 중 1명은 거의 집에만 머무르는 실정이다. 운동이나 외출은 고사하고 병원에 한 번 가기도 힘드니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나쁨’이라고 답한 비율이 절반이나 됐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은 교육·노동권과도 맞닿아 있다.

몇 달 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서울 지하철 시위로 장애인 이동권은 뜨거운 논란과 함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보지 않고 듣지 않았을 뿐이지 전혀 새로운 풍경이 아니었다.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은 무려 21년째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 및 관련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최근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재개했던 전장연에 대해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이들에게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라고 말했다니, 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이고 또 어느 나라 경찰인지 묻고 싶다.

나이가 들며 점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흐릿해짐을 느낀다. 기자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국가가 아직 장애인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보호자가 없으면 혼자서는 외출도 할 수 없는 치매 환자는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65세 이상 장애인 비율은 49.9%에 달한다. 노화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으로 되어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80%는 질환이나 사고로 인한 ‘중도 장애인’이다.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올해 유독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이 많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해달라’며 지난달 전국에 분향소를 설치한 이후에도 비극이 그치지 않고 있다.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엄마와 가족의 인생까지도 모두 바뀌고 만다. 부모가 장애인 자식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너무 무거운 부담감을 이제는 사회가 조금씩 나누어야 한다. 비극을 멈추게 할 유일한 방법이다. 정치도 갈라치기를 할 게 아니라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편을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손님들이 “예쁘게 그려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은혜 씨는 늘 “세상에 안 예쁜 얼굴은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평소 그렇게 예쁜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은혜 씨의 말을 믿고 노력은 해 볼 생각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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