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폭염은 불공정한 재난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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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된 지난 4일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자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된 지난 4일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자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은 ‘작은 더위’라고 하는 소서(小暑)다.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절기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로는 대서(大暑)를 낀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가 꼽힌다. 실제로 이 기간에 불볕더위나 가마솥더위로 표현되는 폭염 현상이 자주 찾아온다. 기상청은 체감온도가 섭씨 33도를 넘는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경우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 고온이 이틀 이상 계속되면 폭염경보를 각각 발령한다. 폭염특보 제도는 일사병 같은 폭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2008년 처음 도입됐다.

부산에서는 지난 2일 오전을 기해 내려진 폭염주의보가 5일까지 나흘째 지속되면서 바깥 활동을 하기에 불편했다. 폭염이 이처럼 빨리 온 것은 이례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밤에는 최저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열대야 현상이 기승을 부린다. 부산은 4일 새벽 최저 기온이 25.1도로 올해 첫 열대야를 기록한 뒤 이틀째 열대야가 나타났다. 이는 1914년 7월 1일 이후 108년 만에 가장 이른 것이다. 지난해 부산의 첫 열대야는 7월 12일 발생했다. 지금이 과연 초여름이 맞나 싶다.


올해 때 이른 무더위·열대야 기승

불볕더위 빈도·강도 커지는 추세

재해가 소외 계층에 불평등 안겨

저소득층 피해와 고통 더욱 심각

체계적 사회안전망 구축 급선무

국가·사회가 적극적 대응 나서야


전국적으로도 6월 말부터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요 며칠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어서며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습도까지 높아 체감온도 35도를 넘기거나 열대야가 생긴 곳이 많았다. 기상청은 올여름 평년보다 기온이 높고, 푹푹 찌는 낮과 후텁지근한 밤이 이어지는 찜통더위가 잦을 것으로 전망한다.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 때문이다. 이러다가 이번 여름이 국내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2018년의 폭염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엄청나게 무덥진 않을까 걱정된다. 이미 올 폭염은 7월 중순께 폭염이 본격화한 4년 전보다 보름이나 빠르다.

2018년 7월의 폭염일수는 무려 15.4일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최근 30년간 7월 평균 폭염일수 3.9일의 4배가량 되는 최악의 폭염 참사였다.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으로 48명이 목숨을 잃은 그해를 포함한 최근 10년간(2012~2021년)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14.8일이다. 과거 30년 평균 11일에 비해 3.8일 늘어났다. 이 같은 수치들은 폭염의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걸 대변한다. 자연현상인 폭염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탓에 대형 재난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지난 1일 경남 창녕에서 40대 남성이 폭염주의보 속에 농산물 작업을 하다 숨지는 등 7월 들어 3명이 온열질환 증세로 사망했다. 안타까운 폭염 피해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연재해의 불공정한 모습이 연상된다. 기후변화로 잦아진 폭염을 비롯한 각종 재난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목격해서다. 누구든지 다 같이 겪을 수밖에 없는 위기인데도 유독 저소득층이 큰 피해를 입고 더 가혹한 고통에 시달리는 까닭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최근의 고물가·고금리 사태가 이러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폭염으로 농작물 작황이 나빠지면 채소값 등 밥상 물가가 더욱 올라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 예년보다 일찍 무더워지자 지난달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일부 취약계층은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워 선풍기조차 종일 틀지 못한 채 힘겹게 버티는 실정이다. 7월부터 전기료마저 인상된 마당에 에어컨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더위에 장사 없다”는 속담도 있는데, 하물며 폭염이 안기는 고초는 오죽하겠는가.

그렇다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기약도 없는 탄소중립 정책이 활발해질 때를 바라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당장 급증하고 있는 온열질환자 최소화 방안 마련과 함께 기상 재해로 직격탄을 맞는 소외 계층을 꼼꼼하게 챙길 수 있는 사회안전망 강화가 급선무다. 자연재해가 환경 파괴로 인해 더 심각한 규모로 더 자주 빚어질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불가항력적인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공동 대처해야 할 대상으로 접근할 때 재난이 초래하는 불공정·불평등성을 해소할 수 있을 테다.

이달에 민선 8기 지방정부와 제9대 지방의회가 임기에 들어갔다. 양측이 지방자치체 안착을 위한 생활정치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사회적 약자의 고충과 비애를 감안한 보다 근원적이고 적극적인 폭염 지원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부산시와 시의회는 코로나19로 지역 기초생활수급자가 27개월 만에 30% 가까이 폭증한 현실도 직시할 일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정신을 빠짝 차려야 한다. 유례없는 경제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는 데 민생 안정을 최우선하는 정책과 협치가 절실하다. 폭염 같은 재난은 개개인이 아닌 국가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체계적이고 철저한 대응체계 구축에 나설 때다. 건강한 사회와 희망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폭염과 경제난에 방치된 가난한 국민을 외면해선 안 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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