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것들] ‘양날의 검’ MBTI… 잘 쓰면 위로의 도구, 잘못 쓰면 차별의 잣대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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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주니어보드 '요즘것들']

몇 년 전부터 부쩍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성격유형검사)’를 묻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심리학 학부생 때 배운 용어가 전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 줄이야. ‘반짝 유행’에 그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MBTI를 다루는 만화와 웹드라마도 등장했죠. 정치 시즌에는 출마자의 MBTI를 검사하는 콘텐츠도 나왔습니다. 요즘 인플루언서들의 Q&A 시간에 빠지지 않는 질문이 MBTI를 묻는 것이기도 하죠.

MBTI란 심리학자 카를 융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개발해 낸 성격 유형 검사입니다. 자신이 타고난 심리적 선호 경향을 파악하는 검사죠. 4가지 지표를 제시하고, 다양한 질문으로 어느 쪽인지 묻습니다.


“넌 MBTI 뭐야?” 익숙한 질문

심리유형론 기반 16개 성격

나와 타인 알고 싶은 마음에

젊은 세대 중심으로 큰 유행

자신을 잘 이해할 기회

무작정 맹신하거나

평가 수단 악용 금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에너지를 얻는지, 혼자 쉴 때 에너지를 얻는지에 따라 E(외향형)와 I(내향형)로 나뉩니다. 실제 경험과 현재 상황을 중시할 때 S(감각형), 직감과 가능성 등을 중시하는 경우는 N(직관형)에 가깝다고 봅니다. 사실과 논리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는 T(사고형), 사람과의 관계와 상황에 중심을 둔다면 F(감정형)에 가깝습니다. 또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분명한 목적을 따르는 경우는 J(판단형)에 가깝고, 상황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P(인식형)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를 조합하면 ENFP, ISTJ 등 16개 유형이 나오게 되는 거죠.

이 결과는 심리 상담을 할 때 참고 자료로 활용됩니다. A라는 사람에게는 ‘혼자 쉬는 시간’이 필요하고, 논리적이기보다 마음을 다치지 않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이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장점을 찾고 또 보완할 점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유형은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MBTI는 4가지 지표에 대한 선호 경향을 파악해 16가지 조합의 성격 유형을 제시합니다.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mingmini@ MBTI는 4가지 지표에 대한 선호 경향을 파악해 16가지 조합의 성격 유형을 제시합니다.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mingmini@

MBTI는 2년 전쯤, ‘무료 성격유형검사’ 웹사이트가 알려지면서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유행에 쉽게 질려하는 젊은 세대가 MBTI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나와 타인을 알고 싶은 마음’이라고 분석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 MBTI를 쓰고 있다는 거죠. 또 상대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MBTI를 통해 위로 받는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지인은 “어릴 때부터 낯가리는 성격을 고쳐야 하는 줄 알고, 오래도록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으로 살아왔다”면서 “내가 잘못된 게 아닌 것을 알고,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는 걸 알고 나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MBTI를 다루는 콘텐츠에는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하죠.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기도 합니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도입된 MBTI의 본질과는 달리, 사람을 평가하고 속단하는 잣대로 쓰이기도 한다죠. 급기야 채용 시에 ‘MBTI를 적어 내라’고 요구하거나 ‘특정 MBTI는 지원할 수 없다’고 명시한 아르바이트 공고문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MBTI는 수많은 심리 검사 중 일부일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참고 자료 정도여서 절대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16가지 유형으로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다 설명할 수도 없고, 해당 유형이 자신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검사는 대부분 MBTI를 흉내 낸 검사로, 신뢰도도 상당히 떨어집니다. 검사 기관에서 전문가와 함께 검사하고, 해석을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일 겁니다. 한때 심리학도였던 기자로서 MBTI가 평가와 잣대를 위한 구별의 도구가 아닌,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찾기 위한 여정의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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