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부울경 메가시티는 '생존 연대'다
논설위원
부울경 메가시티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됐던 우려가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메가시티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울산과 경남의 새 단체장이 취임 후 재검토와 속도 조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메가시티를 이끌어 갈 특별자치단체인 부울경특별연합이 예정된 내년 1월 1일부터 사무에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수도권에 맞설 새로운 경제공동체 건설의 꿈이 점점 멀어져 우려가 크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부울경특별연합을 민선 8기 도정 과제에서 제외하고 방향 재설정을 위한 별도 용역에 들어갔다. 경남의 부정적 입장 이면에는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의 소외론이 자리하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의 입장은 한층 강경하다. 부산으로 모든 상권이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빨대 효과’에 대한 우려다. 경주, 포항과 함께 해오름동맹을 강화해 주도권을 확보한 후 부울경 메가시티에 참여하겠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울산은 부울경이 아닌 신라권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내년 1월 특별연합 가동 앞두고 암초
울산·경남 ‘빨대 효과’ 우려 미온적
선도 사업 예산 7조 확보 발등의 불
디지털 전환 메가시티 중요성 높아
혁신 생태계 구축 뭉쳐야 가능해
상생 위한 부산시장의 리더십 필요
지난 4월 특별연합이 공식 출범했지만 내년 1월 1일 본격 사무 시작까지 실무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 특별연합 의회를 구성해야 하고 특별연합장도 선출해야 하며 아직도 3개 시도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청사 문제도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사업을 진행하려면 하반기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부울경 3개 시도는 특별연합이 내년부터 30개 선도 사업에 대해 우선 예산을 확보해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사업에 필요한 예산만 7조 원 규모로 올 하반기에 예산을 확보해야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 2단계 사업 40개를 합하면 전체 예산 규모가 35조 원에 이른다. 부울경을 1시간 생활권으로 묶는 기반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부울경 메가시티의 궁극적 지향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확보에 있는 건 아니다. 메가시티는 단순히 큰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와 자본, 혁신과 생산 및 소비가 집중되는 공간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이 새로운 흐름이 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UN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40개가량 메가시티가 형성되고 있는데 전 세계 경제활동의 약 66%와 특허를 받은 혁신의 86%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국내에서는 수도권 정도가 메가시티에 포함된다. 부울경을 SOC 확충을 통해 1시간 생활권으로 묶는다고 메가시티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산업 간 융복합과 인적·지적 집적이 이뤄지고 창의적 젊은 인재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력이 가능한 수준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부울경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부울경이 스스로 메가시티 전략을 수립해 정부에 건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윤석열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전략으로 메가시티에 대한 전폭적 지원과 부울경을 남부권 제2 수도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기대를 모았다. 지역이 주도적으로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도 메가시티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지방 소멸을 막을 마지막 희망이 될 부울경 메가시티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부울경 3개 시도 연구원이 ‘동남권 발전전략 수립 공동연구’에서 메가시티는 지방이 죽어 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돌파구를 위한 ‘생존의 연대’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부울경 통합을 가로막는 것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부산은 1963년 경남으로부터 분리됐고 울산은 1997년 떨어져 나왔다. 부울경은 원래 하나의 역사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 구역 분화 이후 부울경은 협력과 상생의 역사보다 갈등과 앙금의 역사를 쌓아 왔다. 부산 독립에 대한 경남의 배신감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산업적 기반이 탄탄한 울산은 홀로서기를 원했다. 결국 부울경은 지역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했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부산과 경남은 신항 명칭과 경마장 유치를 둘러싸고 소모적 갈등을 빚어 왔고 가덕신공항은 오랜 세월 표류했다.
결국 결자해지라고 부산의 역할과 부산시장의 리더십이 중요한 시점이다. 경남과 울산에 진정성을 갖고 다가가 메가시티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개별 사업을 놓고 이해가 엇갈리면 경남과 울산의 입장을 전향적으로 수용해서라도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내 것 네 것 따지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로 득실만 따지며 머뭇거리는 이 순간에도 지방 소멸의 시계는 가고 있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