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윤 정부 ‘지역균형발전’, 신기루인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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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위주 성장·개발 촉진 정책, ‘지방 시대’ 공약 헛구호?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 완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 발표
비수도권, ‘지역 차별’ 강한 반발
세종시 신청사, 12월 부처 입주
대통령 집무실은 빠져 큰 실망
균형발전 정책 다듬고 실행할
컨트롤타워, 역할·실체 불투명
지방시대위원회도 출범 계획
통합 주체와 운영체계도 모호
정부 진정성 있는 실천 의지 중요

3월 24일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3월 24일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방의 시대라는 모토를 갖고 새 정부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지난 3월 국민에게 한 약속이다. 균형발전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이다. 역시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4월 윤 대통령은 민선 7기 전국 시장·도지사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역 균형발전은 국민 모두 어디에 거주하든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균형발전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지난 8일 윤 대통령은 민선 8기 전국 시장·도지사들을 만나 “저는 선거 때 국민 누구나 어느 지역에 사느냐와 관계없이 공정한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고 경제와 산업이 꽃피우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스스로 환기시켰다.

윤 대통령의 그 약속은 지금 표류하고 있다.


수도권에 과한 애정

기존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수도권 내 자연보전권역에서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하기는 매우 어렵다. 지방 기업 보호 취지로 만든 까다로운 규제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부는 지난 20일 수도권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 규제를 완화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시행령은 특히 해당 권역에서 폐수처리 시설을 갖춘 공장의 규모를 ‘1000㎡ 이내’에서 ‘2000㎡’까지로 늘렸다.

‘유턴 기업’ 즉 외국에 있다가 국내로 복귀하는 기업이 수도권에 들어가는 건 현행법 상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인 투자기업에 한해, 그것도 수도권 경제자유구역에만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부는 이런 제한마저 풀어 버렸다. 유턴 기업이면 대부분 수도권에서 신증설이 가능해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해당 기업에 대한 지원 폭도 크게 확대했다.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에 대해 산업부는 ‘불합리한 규제’로 규정했지만, 경영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의 기업들에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산업부는 지난 21일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도 발표했다. 기업들로 하여금 반도체 투자에 나서도록 세제 혜택 등 각종 지원을 하겠다는 방안이다. 기재부와 국토부도 참여한 이 반도체 전략에는 수도권의 반도체 단지 조성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관련 인허가도 간소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에 앞서 교육부는 지난 19일 반도체 산업 인력 양성 방안을 밝혔다. 대학원·일반대·전문대·직업계고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학교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를 새로 만들거나 정원을 조정할 수 있도록 문턱을 대폭 낮췄다. 교육부는 수도권만이 아니라 비수도권에도 적용되는 방안이라고 밝혔지만, 아무래도 반도체 관련 산업이 집중돼 있는 수도권에 학생들이 몰릴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게 세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결과적으로 수도권 위주 성장·개발을 촉진하고 지원하게 되는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 반발은 당연한 것으로, ‘균형발전을 촉구하는 강원·영남·호남·제주·충청권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규제 완화를 ‘개악’으로 규정하고 철회를 요구했다. 26일에는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균형발전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등 지역 사회단체들이 26일 윤 대통령의 균형발전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모습. 부산일보DB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등 지역 사회단체들이 26일 윤 대통령의 균형발전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모습. 부산일보DB

“균형발전”은 헛구호?

이러한 사정으로 윤석열 정부가 겉으로는 균형발전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지방을 기망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가 많다. 신(新)세종시정부청사 대통령 집무실을 둘러싼 논란이 그렇다. 세종시 중앙동에 들어서는 신청사는 올 10월 완공 예정인데, 행안부가 최근 밝힌 올 12월 신청사 입주 계획에 대통령 집무실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시 신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하는 일은 ‘윤석열 정부 지방시대 로드맵’의 출발점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설치를 다짐했고,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도 올 12월 집무실 설치를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구상이 사실상 철회됨으로써 윤 대통령의 지방시대 구호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게 됐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수도권 시설을 지방으로 강제 이전하는 획일적 분산 정책은 실패했다”는 말을 했다. 원 장관이 언급한 ‘수도권 시설’은 곧 공공기관으로, 윤석열 정부는 ‘2단계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주요 국정 과제에 포함시켜 놓았다. 그런데 균형발전의 주무 부처인 국토부의 수장이 공개적으로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이전을 추진 중인 부산을 비롯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원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며 성토했다.

파장이 커지자 원 장관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지역의 지속적 성장이나 지역 자체 내에서 성장동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는 너무나 한계가 많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으나, 윤석열 정부의 균형발전 어젠다가 한낱 신기루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는 없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균형발전 구호로 생색을 내다가 내팽개치고 결국 수도권 우선주의 본색을 드러냈다는 실망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성·실천으로 신뢰 찾길

윤석열 정부는 최근 6대 국정 목표를 확정했다.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나라’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에 이어 마지막으로 제시한 게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다. 지방시대를 달성하기 위해 ‘진정한 지역주도 균형발전 시대’ ‘혁신성장기반 강화 통해 지역의 좋은 일자리 창출’ ‘지역 스스로 고유한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지원’이라는 3가지 약속을 비롯해 세부 실천과제도 마련했다.

현란한 선언들이다. 하지만 더없이 화려한 약속도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만사휴의다. 내놓은 정책들이 앞뒤가 다르고 부처마다 행동과 생각이 다르다면 정부의 약속이 제대로 실천될 리 만무하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균형발전 구호가 그렇다.

무엇보다 균형발전 정책들을 다듬고 실행해야 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한데, 윤석열 정부 출범 3개월이 다된 지금까지 그 실체가 불투명하다. 대통령 소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업무는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김사열 위원장의 거취 문제가 정치 쟁점화 되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사실상 마비된 상태고, 그에 따라 균형발전 정책들이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26일 윤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 정부 업무계획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가칭)를 출범시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통합 주체와 통합 후 운영체계에 대한 윤곽은 아직 분명치 않다.

지금 돌아가는 형편으로 보자면 윤 대통령과 정부가 균형발전에 의지를 갖고 있기나 한 건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윤석열 정부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실천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신뢰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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