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일 관계, 포용적 여론이 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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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지난 12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일본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관을 실은 장의차를 향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일본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관을 실은 장의차를 향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년간 멈춰 서 있던 한·일 관계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중 경쟁, 북핵 문제 등 요동치고 있는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 관계를 마냥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달라진 것과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새 정부 대일 관계 회복 의지 강해

아베 전 총리 사망 큰 변수 못 돼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가 최대 이슈

국내 여야 대립 양국 협상 걸림돌

정쟁보다 포용적 국민 여론이 중요



먼저 달라진 것은 윤석열 새 정부의 대일 관계 회복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공히 국가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양국이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갈등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둘째, 윤 정부의 이러한 의지 표현은 그간 한국과는 대화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던 일본 정부 내 분위기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국가 간 합의인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실질적으로 파기했고,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해당 일본 기업은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삼권분립이라는 명분으로 ‘방치’해 온 점을 들어 대화를 거부해 왔다. 최근 박진 외교장관이 도쿄를 방문해 2017년 이후 약 55개월 만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진 것은 변화하고 있는 일본의 분위기를 보여 준다. 셋째, 현대 일본 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급서이다. 아베 전 총리는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그간 금기시되어 왔던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트는 등 ‘전후 일본 체제로부터의 탈피’라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의 서거로 기시다 총리의 운신의 폭이 넓어져 양국 관계에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자민당 내의 파벌 관계, 그리고 아베 전 총리가 일본 정계와 사회에 남긴 보수적 유산을 고려하면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첫째,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다. 그간 한·일은 “이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데 입장을 같이했었지만, 한국 대법원 판결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일본은 국제법과 한국 내 법적 판단 간의 불일치는 원인 제공자인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가져와야 한다고 초지일관 요구하고 있다. 둘째, 한국과 일본 국내 여론은 여전히 서로에게 싸늘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불매 운동이 한창일 때와 비교해 일본에 대한 여론이 일부 호전되었지만, 일본인들의 감정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의 정권이 바뀌었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본도 이제 감정을 그만 풀어라”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셋째, 한국 정계의 여야 간 극한 대립 상황이다. 이러한 적대적 상황은 상대편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공격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일본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면 그 폭발력은 대단하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최근 한·일 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제시된 강제징용 문제 해법 중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안은 우리가 먼저 배상을 하고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위변제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해결 방식에 대한 피해자들의 수용 여부이다. 또한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일방적으로 폐기당한 기억이 있는 일본이 과연 어떤 모습과 조건으로 이를 수용할지도 큰 관건이다.

화려한 외교적 퍼포먼스보다는 피해자들과의 진정성 있는 깊은 대화 과정을 이어 가야 하고, 서로 간의 입장을 고집하기보다는 양국 정부의 대승적 결단이 중요하다. 국민 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정당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좀 더 포용적이어야 한다. 중심 잡힌 포용적 국민 여론은 정쟁의 여지를 없앤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지만, 최악의 한·일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부산과 일본과의 교류도 멈추어 섰다. 다행히 지난 2년간 중단되었던 ‘부산-후쿠오카포럼’이 11월 초에 부산에서 다시 개최된다. 한·일 관계에 있어 긴요한 포용적 국민 여론이 좀 더 확장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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