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피란수도 부산과 도시의 품격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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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한국전쟁 시기 임시수도 시절
부산은 ‘끝에서 다시 일어선 곳’
 
비석마을 등 피란 유산 산재
현재 세계유산 등재 추진 9곳
 
선정 땐 국격·자긍심 제고 등 기대
부산 도약 또 다른 디딤돌 될 수도

'2022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 행사의 하나로 '스윙~스윙~ 피란수도 딴스홀' 무대가 19일 서구 임시수도 정부청사 앞에서 펼쳐져 동호회 참가자들이 피란 시절의 스윙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2022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 행사의 하나로 '스윙~스윙~ 피란수도 딴스홀' 무대가 19일 서구 임시수도 정부청사 앞에서 펼쳐져 동호회 참가자들이 피란 시절의 스윙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요즘 집중호우는 그 출몰을 가늠키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 행사가 열리던 지난 20일도 그랬다. 점심시간 지나자 멀쩡하던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부산시민공원 일대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행사가 취소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행히 몇 시간 후에 비는 그쳤다.

궂은 날씨에 촉각을 곤두세운 건 ‘피란수도’ 행사가 올해 부산시민공원으로 그 무대를 넓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피란시절 부산에 ‘스윙 댄스’ 문화가 꽃피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한국전쟁 때 각국 포로들이 ‘춤’을 매개로 행복을 꿈꾼다는 내용의 ‘스윙키즈’ 영화가 공원 잔디광장에서 상영됐는데, 전쟁의 아픔과 신명 난 몸의 행위가 교차하는 아이러니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찌 보면 피란수도의 역사를 껴안으려는 지금 우리의 노력들이 이미 그런 역설을 품고 있다. 아픔을 과거에 가두지 않고 미래로 끌어안는 ‘승화’는 성장을 향한 소중한 자양분이다.


말이 나왔으니 피란수도 얘기를 더 해 본다. 부산이 임시수도로 지정된 건 1950년 8월 18일,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곧장 수원과 대전, 대구로 천도가 이뤄지지만 그 기간은 불과 며칠, 길어야 한 달 정도였다. 부산은 한국전쟁 1129일 중 1023일간 임시수도였다. 1차(1950.8.18~10.26)와 2차(1951.1.4~1953.8.14), 두 번에 걸쳐 그 소임을 다했다.

당시 김동리가 임시수도 부산을 그린 단편 ‘밀다원 시대’의 유명한 묘사가 있다.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떠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바다에 빠지거나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러한 최후의 점 같은 곳….’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곳,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마주한 곳이 부산이었던 것이다. 임시수도 시절 정치는 독재로 치달았고, 전시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며, 사람들은 꿀꿀이죽으로 연명했다. ‘침몰 직전의 구명정’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막다른 끝에서 마침내 일어선 곳이 부산이다. 가마 ‘부(釜)’ 자를 쓰는 도시답게 부산은 모든 것을 녹여 내는 뜨거운 가마였고, 모든 것을 품어 내는 바다였다. 전쟁과 죽음의 고통으로 휘청거렸으나 거기에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이 있었던 것이다. 국란 극복의 원천이 고통과 상처로부터 왔다는 역설은 진실이다.

이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과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을 꼽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의 공동묘지 위에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지었던 곳, 그리고 소 막사를 개조해 거처를 만들고 마을을 이룬 곳이다. 피란수도의 이런 유산들은 지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소막·비석마을을 포함해 총 9곳이 2017년 문화재청의 잠정목록에 조건부로 선정된 바 있다.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국립중앙관상대(부산기상관측소) 등 정부 지원 유산 3곳, 미국 대사관(부산근대역사관)과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유엔기념공원) 등 국제협력 유산 4곳이 여기에 포함된다.

문화재청의 조건부 선정은 피란 생활상이 반영된 유산의 추가와 종합 보존관리 계획 수립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그러려면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등록하는 게 필수적이다. 피란 유산 가운데 제1부두가 소유자인 부산항만공사의 동의를 얻지 못해 문화재 지정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이 부분이 해결돼야 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의 의지라 하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업적보다는 나라와 시민의 미래를 위한 길을 정책의 눈높이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초 아미동 비석마을 주거지가 처음으로 부산시 등록문화재가 된 데 이어 최근 들어 마을 보존·관리를 위한 지구단위계획 수립이 시작된 것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일 테다. 지난 6월 하야리아 부대에 남아 있던 장교클럽(1949년 건립)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마찬가지다.

피란수도의 세계유산 등재 효과는 관광을 통한 경제적 파급력과 국격의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서 국민과 시민이 갖게 될 자긍심은 그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다.

끝에서 다시 일어선 곳, 새로운 시작점이었던 곳, 죽어야 살 수 있었던 곳, 부산. 과거를 건강하게 기억하고 그 가치를 후대에 전승하는 일은 대단히 소중하다. 국란을 이겨 낸 그때처럼 부산이 다시 도약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힘이 될 수 있어서다. 21세기 글로벌 도시의 진정한 품격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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