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코남] 31. 한쪽에선 밤새 마시고, 한쪽에선 밤새 치우고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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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공원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운동, 휴식, 산책 등 나름 건전한 목적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부산에는 '술 마시는 공원'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 2000년대 중후반부터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이곳은 '헌팅 성지'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인기를 끈다. 술과 음식, 담배 냄새 등이 뒤섞인 악취가 항상 공원 주변을 맴돌아, 수변공원이라는 이름 대신 '술변공원'이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다. 공원에서 술 마시는 게 무슨 문제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인터넷에서 수변공원을 검색하면 쓰레기로 가득한 공원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 양이 하루에 약 50t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준.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지, 진짜 엉망진창인지, 직접 새벽부터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쓰레기를 주워봤다.


<현장검증>

새벽 3시. 가장 핫한 곳

8월의 마지막 주말, 토요일 새벽 부산 수영구 민락동의 '민락수변공원'을 찾았다. 오전 3시, 선선한 새벽 공기에도 불금의 열기는 꺼지지 않고,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즉석만남을 노리고 오는 젊은 청춘과 광안대교를 보며 음주가무를 즐기고 싶은 관광객이다. 길이 약 500m의 수변공원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2~3명 정도 공원 계단에 앉아 조촐하게 술과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적게는 4~5명에서 많게는 7~8명까지 무리를 지어 바닥에 은색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다. 대충 눈으로 훑어본 돗자리 개수만 50개가 넘는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졌을 뿐인데, 온도 차가 너무 크다. 술에 취해 고성방가는 물론이고 음악을 크게 켜고 노래를 떼창하는 무리까지. 새벽에 이렇게 열기가 넘치는 곳은 부산에서 이곳 수변공원뿐일 테다.


'술변공원'의 위상

사실 맹탐정도 이곳에서 술을 먹은 적이 있다. 아주 먼 옛날인 2009년, 20대 중반 시절. 13년이 훌쩍 지났는데 이곳은 여전히 더럽고 엉망이라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멀리서 술변, 아니 수변공원을 보면 약간 안개가 낀 듯 뿌연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가 가까이 있어 해무인 줄로 착각하기 쉽지만, 안타깝게도 안개가 아니라 담배 연기다. 수변공원 내에서는 금연이다. 낮에는 흡연을 통제할 수 있지만, 밤을 지새우는 취객에겐 무용지물이다. 입 밖으로 내뿜어낸 연기가 구름처럼 떠돈다.

거기에 코를 찌르는 악취도 진동한다. 분명 야외인데도 불구하고 술과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거기에 비릿한 바다 냄새까지 더해지니 토사물에 코를 처박은 느낌이 든다. 악취의 원인은 취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 제대로 말하면 그들이 '두고' 간 쓰레기 때문이다. 수변공원 곳곳 먹고 남은 술과 안주가 방치된 사람 없는 돗자리가 많이 눈에 띈다.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아니다. 돗자리에 앉아 술판을 벌이곤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청소라는, 뒷정리라는 개념이 실종된 곳. 상황이 이렇다 보니 쓰레기장 옆에서 술을 마시는 형국이다. 잘도 이런 곳에서 놀 수 있다니, 비위 좋은 사람이 많구나.


컴컴한 공원의 형광조끼

그나마 '수변쓰레기장'으로 전락하지 않는 건, 치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 3시가 되자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이 하나둘 등장했다. 드디어 청소가 시작된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취객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허리를 굽혀 청소했다. 왜 이렇게 늦게 청소하는 걸까? 사실 수변공원은 종일 '특별관리'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수영구청 관계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환경공무직 직원 외에도 기간제근로자, 안전관리 용역 등 많은 인원이 수변공원을 관리한다"며 "다만 근무 시간을 고려해,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 3시간 동안 인력이 비는데, 그래서 시민들이 수변공원은 관리가 안 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수변공원은 고작 3시간 만에 쓰레기로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이다. 사전에 협조를 구해, 구청 환경관리 담당 직원과 함께 쓰레기를 직접 치워보기로 했다.


식당과 공원의 차이점

수변공원 청소는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다. 마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느낌이다. 먼저 손님이, 아니, 사람이 떠난 자리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돗자리 위에 술과 음식을 놔둔 채 그대로 두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아예 나간 건지 잘 봐야 한다. 민락수변공원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계약직 직원 A 씨는 "빈자리에 사람이 없다고 바로 치우면 안된다"고 말했다. 담배 피우러 가거나, 술을 사기 위해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 씨는 "30분 넘게 기다려도 안 오길래 자리를 치웠는데, 남은 술을 마음대로 버렸다고 3만 원을 물어준 적도 있다"며 "그날은 일당을 날린 셈"이라고 했다. 또 "헷갈리면 바로 옆 돗자리 손님(?)에 물어보면 된다"고 노하우를 알려줬다.

빈 병은 따로 모아 분리수거를 한다. 남은 술이나 음료 등 액체는 어떻게 할까? 수변공원 계단을 살펴보면, 계단 벽면 아랫부분이 반타원형 형태로 뚫려 있다. 파도가 바로 앞까지 치는 수변공원 특성상 물 빠짐을 쉽게 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인데, 그곳에 남은 음료를 버린다. 바다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다음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돗자리 덕이다. 음식물, 일회용품,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가운데로 모은 후 돗자리 채로 이불 싸듯 버리면 된다. 식당 테이블 치우듯 자리를 치우니, 불현듯 쓰레기 투기 해결법이 떠올랐다. 식당과 수변공원의 다른 점은 바로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면 쓰레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45t의 쓰레기들

관리원들은 청소 시작 전 수변공원 일대에 일정 간격을 두고 1t 용량의 거대한 마대를 가져다 놓는다. 이곳에 쓰레기를 모아 한 번에 수거하기 위해서다. 계속 쓰레기를 치우고 있자니, 살짝 '현타'가 왔다. 선선한 날씨인데도 땀은 계속 흐르고, 즐겁게 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청소하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와 중에도 사람은 줄지 않는다. 새벽 4시가 넘었는데도 자리를 치우기 무섭게, 웨이팅이라도 한 듯 다른 사람이 돗자리를 깐다. "여름 되면 밤새도록 놀다가 해가 뜨면 집에 가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그나마 적은 편이다." 언제까지 사람이 있냐는 맹탐정의 질문에, A 씨가 답했다. 쓰레기만 치우는 것도 버거운데, 다른 애로 사항도 있다. 취객을 상대하는 일이다. A 씨는 "왜 쳐다보냐며, 왜 비질을 세게 해서 먼지를 일으키냐는 등 셀 수 없이 시비를 건다"며 "자리에 놔둔 지갑이나 귀중품이 없어졌다고 청소 관리원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또 "몇몇 사람은 자기가 놀고 난 자리를 치우라고 고함치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전 5시 30분 어느새 해가 떴지만, 아직 10여 개의 돗자리가 남아있다. 쓰레기차가 수변공원으로 들어왔다. 관리원은 쓰레기 마대를 한곳에 모았다. 개수를 세어보니 1t짜리 마대가 총 45개. 하루에 나온 쓰레기양이 45t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빈 페트병, 돗자리 등 부피가 큰 쓰레기가 많아서다. 돗자리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대여해주면 어떨까? 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식으로. 그렇게 하면 돗자리 쓰레기라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결말>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는 이곳. 고작 하루지만 수변공원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자니, 취객들에 대한 혐오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민락수변공원의 쓰레기 문제, 사실 해결 방법은 어린아이도 알 만큼 뻔하다. '자기가 어지럽힌 자리는 자기가 치우고 간다.' 하지만 이 간단한 일조차는 민락수변공원에서는 몇십 년 동안 불가능했다.

수영구청은 민락수변공원 내 음주 행위 금지라는 다소 강력한 조례제정을 추진 중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처럼, 수변공원 내 음식 취식을 아예 막자는 이야긴데, 기본권 제한이라는 우려와 공원 주변 상인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취객 간의 실랑이는 밤새도록 끊이질 않고, 밤이 되면 무질서가 판을 치는 이곳.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버려지면서 이에 따른 행정력 낭비와 비용도 무시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사람의 선한 의지에만 기대 나아지기를 바랄 수 없다면, '수변공원 금주령'이나 입장료를 받는 등 강력한 조치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이득일 수도 있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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