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꼼수 정치, 부끄럽지 않은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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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상황이 아니다”는 법원 결정에
“당헌 고치면 비상”이라는 국민의힘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우려에
일사부재의 어기며 길 터 준 민주당

목적도 방법도 정당해야 옳은 정치
국민은 비열한 꼼수 반드시 응징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바둑에서 허방을 놓아 상대가 걸려들기를 노리는 변칙의 수가 꼼수다. 이게 일상에까지 전해져 흔히 꼼수라고 하면 비열하고 얍삽한 수단을 뜻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이 구사하는 꼼수가 현란하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단연 돋보인다. 이준석 전 대표가 신청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을 법원이 인용해 지난 26일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국민의힘 현 상황이 당헌·당규에 비춰서 비대위를 만들 만큼 비상하지는 않다고 법원은 판단한 것이다. 놀란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튿날 5시간에 걸친 의원총회를 통해 해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당헌·당규를 고쳐서라도 새 비대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원은 비상상황이 아니라는데 당사자인 국민의힘 스스로가 억지로 비상상황을 만들어 내는 셈이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 주도한 꼼수라는 비판을 받는 터에, 법원의 결정마저 변칙적인 방법으로 뭉개려 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꼼수를 꼼수로 덮으려 한다” “민주주의도 버리고 법치주의도 버리고 국민도 버렸다”는 탄식과 비난이 쏟아진다. 명색이 집권여당인데 그 꼴이 참으로 가관이다.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오십보백보다. 지난 28일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의 득표율은 77.77%. 민주당 역대 최고인 데다 행운의 숫자라는 ‘7’이 겹겹으로 쌓인 터라, 이 대표로선 의기양양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에겐 늘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사법 리스크’다. 가족을 포함해 이 대표와 관련돼 진행 중인 수사는 백현동·대장동 개발 의혹 등 6가지다. 이 사법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민주당은 전당대회 전 숱한 반발에도 결국 당헌 80조를 고쳤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규정은 그대로 두되, 당무위 의결을 거쳐 취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빠져나갈 길을 터 준 것이다. 당헌 80조 개정은 이미 당 중앙위에서 부결됐는데도 재상정해 통과시켰다. 일사부재의 원칙에 어긋나는 이 조치 역시 꼼수에 다름 아니었다.

꼼수 정치의 절정이라 할 만한 일이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초에 있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제외한 야당과 민주당이 결성한 ‘4+1 연합’이 선거법을 개정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키로 했다. 거대 정당 독주 시대가 끝나고 다당제의 길이 열림으로써 우리 정치에도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했다. 자유한국당이 그해 2월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위성정당을 이용해 내심 원내 과반 의석을 노렸다. 미래통합당의 행태를 비난하던 민주당도 다음 달 여러 군소 정당을 모아 범여권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더불어시민당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치나 의미는 깡그리 무시한, 반칙 대 반칙, 꼼수 대 꼼수의 대결이었다.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은, 위성정당답게, 그해 4월 총선이 끝나자 바로 소멸했다.

꼼수 정치는 국회에서만 횡행하는 게 아니다. 입법 기관인 국회가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법을 세우자 법무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옛 수사권을 그대로 행사하겠다고 선언하고, 행안부는 법률적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도 역시 시행령 개정을 통해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을 강행했다. 이를 두고 “시행령 전성시대”라는 비꼬는 말이 나오는 건, 따지고 보면 모두가 편법이고 꼼수이기 때문이다.

병불염사(兵不厭詐)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서는 꼼수 같은 비열한 짓도 꺼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쟁터에서나 통할 말이다. 아무리 정치가 전쟁처럼 냉혹하고 잔인한 영역이라고는 해도 정치는 정도(正道)라야 한다. 목적도 정당하고 방법도 정당해야 한다. 정도는 신의가 바탕이 돼야지 꼼수로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바둑에서 꼼수는 제대로 된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정치에서도 우리는 그런 결말을 충분히 경험했다. 꼼수 정치의 극치라고 불리는 ‘사사오입 개헌’이 대표적인 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재적의원 203명 중 3분의 2, 즉 13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개표 결과는 135명. 1명이 모자라 부결됐다. 하지만 당시 자유당은 ‘203의 3분의 2’(135.333)를 반내림(사사오입) 하면 135라는 억지를 부려 결국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의 말로는 익히 아는 바다. 국민의 눈을 잠시는 속일 수 있어도 계속 속일 수는 없다고 했다. 국민의 눈은 밝다. 꼼수의 비열한 정치는 결단코 응징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임광명 논설위원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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