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해녀들과 청사포 바다에 뛰어든 해남들 #8-3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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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이야기> : 해녀학교로 떠난 20~30대 기자와 PD들. 부산에서 맞춘 해녀복을 입고 거제도 바다에 뛰어든다. 교육생들과 잠수 훈련을 반복하며 깊은 바닷속까지 내려가는데…. 영도 감지해변에서 파도에 풀썩 쓰러지던 그들은 다시 용기를 얻는다.

- 관련 기사 : [부산숨비] 거제 바다로 ‘유학’ 떠난 기자와 PD들 #8-2 (https://url.kr/fvlp5y)

빨간 등대가 보이는 청사포 전경. 해녀들은 인근 앞바다 일대에서 물질한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빨간 등대가 보이는 청사포 전경. 해녀들은 인근 앞바다 일대에서 물질한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부산 해녀들과 함께 물질하기로 결심했다. 올해 3월부터 바다, 풀장, 해녀학교에서 틈틈이 연습은 해왔다. ‘아기 해남’으로 첫발을 떼고 싶었다.

처음 물질하기로 한 바다는 ‘푸른 모래의 포구’ 해운대 청사포. 윤슬이 아름다운 탁 트인 바다에 부산 해녀들이 수십 년간 터전을 잡은 곳이다.

청사포 해녀가 바다풀 사이에서 해산물을 찾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가 바다풀 사이에서 해산물을 찾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은 영도, 송도, 다대포와는 조금 달랐다. 올해 5~6월 만난 그들은 제주도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 이른 새벽이 아니라 점심쯤 바다에 들어가는 여유도 보였다.

올해 7월 9일 우린 청사포 앞바다로 향했다. 해녀들을 따라 바다를 누비기 위해서다. 그들이 잠수한 후 내뿜는 ‘호이~’ 숨비소리, 그걸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게 설렜다.


갯바위에서 입은 해녀복

해녀들과 바다를 누비는 건 새로운 떨림이었다. 일찌감치 청사포에 도착한 우린 고무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탈의실이 없어 청사포 갯바위에서 고무 잠수복을 갈아입는 취재진.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탈의실이 없어 청사포 갯바위에서 고무 잠수복을 갈아입는 취재진.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당연한 말이지만 청사포엔 ‘해남 탈의실’ 같은 건 없었다. 해녀들도 옷을 갈아입을 공간이 없는 곳이었다. 해녀 13명이 집으로 흩어져 옷을 입고 오는 게 현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린 청사포 갯바위에서 옷을 갈아입는 ‘물의(?)’를 일으켰다. 고무 잠수복은 물에 적셔야 입기 수월한데 바닷물에 푹 담그니 확실히 편하긴 했다. 우린 공동체 정신을 발휘해 서로 옷을 입혀줬다.

맨살에 ‘네오프렌(neoprene)’ 재질 잠수복을 입긴 쉽지 않다. 뻑뻑한 느낌이라 서로 도와줘야 한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맨살에 ‘네오프렌(neoprene)’ 재질 잠수복을 입긴 쉽지 않다. 뻑뻑한 느낌이라 서로 도와줘야 한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해남에 도전하다 보니 이상한 일도 있었다. 일본에서 온 기자가 도리어 우릴 취재했다. 그는 해녀들과 바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청사포에 동행했다.

규슈 〈서일본신문〉 히라바루 나오코 기자는 “해녀들 말만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바다 세계를 전하려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해녀 분들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변신해 깜짝 놀랐다”고 웃었다.

히라바루 나오코 기자(왼쪽)가 고무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부산일보 취재진을 보며 웃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히라바루 나오코 기자(왼쪽)가 고무 잠수복으로 갈아입은 부산일보 취재진을 보며 웃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이렇게 된 이상 물질을 더욱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갯바위에서 옷을 갈아입은 우린 해녀들이 모이는 ‘청사포 마켓’으로 돌아와 각오를 다졌다.


소중한 물 한 바가지

너무 일찍 옷을 갈아입은 걸까. 시간이 흘러도 청사포 해녀들은 물질을 나가지 않았다. 혹시나 일찍 출발할까 봐 미리 준비했지만, 그들은 평소처럼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늘 그랬듯 점심쯤 바다에 나갈 기세였다.

고무 잠수복을 입은 채 뜨거운 햇빛을 떠안은 우린 서서히 말라갔다. 우리가 맞춘 해녀복 두께는 5mm. 겨울 바다에서도 보온 효과가 좋을 만큼 두꺼워 한여름엔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더위에 지쳐가던 부산일보 취재진이 물 한 바가지를 선물 받은 뒤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더위에 지쳐가던 부산일보 취재진이 물 한 바가지를 선물 받은 뒤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그때 한 줄기 빛이 다가왔다. 자꾸 물을 마시며 더위를 달래는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해녀 한 분이 빨간 고무 대야 앞으로 우릴 데려갔다. 바가지에 물을 담은 그는 차례대로 우리 옷 속에 물을 부어줬다.

얼음장 같은 차가움과 거리가 멀었는데 과하게 시원했다. 아이스크림을 한입에 삼킨 듯한 느낌. 문득 한여름에도 해녀복을 입은 채 장사까지 하는 해녀들은 더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직접 잡은 ‘물건(해산물)’임을 알리려고 해녀복을 벗지 않는다는 그들의 말이 맴돌았다.

해녀 잠수복은 목 부분만 접어도 시원해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해녀 잠수복은 목 부분만 접어도 시원해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물 한 바가지를 선물해준 ‘해녀 선배’는 또 다른 팁을 전수해줬다. 잠수복 목 부분을 접어주며 숨쉬기 훨씬 나을 거라 했다. 조금 접었을 뿐인데 바람이 통하면서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청사포 해녀들도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들의 잠수복을 살짝 만져봤는데 우리 것보다 훨씬 얇았다. 괜스레 배신감(?)이 들었다. 청사어촌계 김업이(69) 해녀는 “우린 겨울이나 여름이나 똑같은 잠수복을 입는다”며 “(해남을 가리키며) 두꺼운 건 입지 않는다”며 웃었다.


해녀들과 떠난 바다

기다림 끝에 청사포 해녀들과 갯바위에 나란히 앉게 됐다. 하지만 역시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잠시 돌 위에 놔뒀던 물안경이 깨져있었다. 용당 마지막 해녀에게 받은 동그란 물안경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순자 해녀가 건넨 귀한 물안경을 이날부터 쓰기로 했다.

깨진 물안경을 바라보며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깨진 물안경을 바라보며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청사포 해녀가 기자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하더니 같이 포즈를 취해줬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 해녀가 기자에게 카메라를 보라고 하더니 같이 포즈를 취해줬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갯바위에서도 수다를 이어가던 청사포 해녀들은 우리 긴장을 풀어줬다. 꾸준히 말을 걸었고,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랬던 해녀 선배들은 하나둘씩 바다로 떠나기 시작했다.

청사포 앞바다에 주황색 테왁을 든 해녀들이 물질을 나가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청사포 앞바다에 주황색 테왁을 든 해녀들이 물질을 나가고 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어느새 주황색 테왁이 바다 위에 퍼져나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오렌지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마치 ‘미디어 아트’를 보는 듯한 감정이 들 무렵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어쩌다 해녀들과 첫 물질할 시간이 왔다. 물안경을 고쳐 쓰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윤슬보다 아름다운 바닷속

해녀들을 따라 들어간 청사포 바다는 맑았다. 다채로운 해조류 옆으로 물고기가 노닐었다. 수면에 반짝이는 윤슬보다 바닷속이 훨씬 아름다웠다.

다양한 해조류 옆으로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이 뚜렷했던 청사포 바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다양한 해조류 옆으로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이 뚜렷했던 청사포 바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취재진이 다채로운 해조류가 자라는 청사포 바다를 누비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취재진이 다채로운 해조류가 자라는 청사포 바다를 누비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청사포는 예로부터 품질 좋은 해산물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 특히 5개 바위섬으로 이뤄진 다릿돌 일대는 물살이 세고 돌이 좋아 ‘쫄쫄이 미역’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그런 바다에서 해녀들을 따라다닌 우린 쓰레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어촌계에 나잠어업인으로 등록도 안 된 상태인데, 물질 연습을 하면서 환경 보호에도 미약하게 일조하고 싶었다.

맑은 바닷속에서 겨우 찾아낸 폐그물과 플라스틱. 보통 바닥에 박힌 쓰레기 정도만 눈에 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맑은 바닷속에서 겨우 찾아낸 폐그물과 플라스틱. 보통 바닥에 박힌 쓰레기 정도만 눈에 띈다.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겨우 찾아낸 종이 팩을 보니 일본어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일본에서 청사포까지 떠밀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정수원 PD jyh6873@busan.com 겨우 찾아낸 종이 팩을 보니 일본어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일본에서 청사포까지 떠밀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정수원 PD jyh6873@busan.com

바닷속이 깨끗하다 보니 쓰레기는 해산물만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숨은 쓰레기라도 찾으려 노력했다. 가끔 바닥에 박힌 플라스틱, 폐어망, 나무 덩어리 등이 보였다. 일본어가 가득한 종이 팩도 건질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무엇보다 청사포 해녀들을 옆에서 본 건 행운이었다. 베테랑은 달랐다. 수직으로 잠수한 그들은 해조류 속으로 상체를 들이밀더니 곧잘 해산물을 찾아냈다. 물질은 역시 두 눈으로 보고 배워야 했다.

김업이 해녀가 전복을 들고 물 위로 나온 모습.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김업이 해녀가 전복을 들고 물 위로 나온 모습.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정영자 해녀가 바닥까지 잠수해 해산물을 찾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정영자 해녀가 바닥까지 잠수해 해산물을 찾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오랜 시간 숨을 참은 해녀들은 신중히 손을 움직여 전복과 성게 등을 들고나왔다. 잠수를 반복하며 그 모습을 관찰했더니 동그란 물안경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정영자(68) 해녀는 “얼굴을 덮은 해녀복에 물안경을 걸치지 말고 피부에 딱 붙여 써야 물이 안 들어온다”며 “입가에 물안경을 걸치면 조금 더 편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웃으며 조언해줬다.

오리발 대신 실내화를 신고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청사포 해녀.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오리발 대신 실내화를 신고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청사포 해녀.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청사포 해녀들은 장비 탓을 크게 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던져줬다. 그들은 아무도 오리발을 신지 않았다. 적응만 하면 실내화로 충분하다고 했다.

김형숙(70) 해녀는 “오리발을 차면 수월할 텐데 청사포에서는 어머니 세대부터 쓰지 않았다”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실내화를 신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음 바다를 기약하며

해녀들과 첫 물질을 떠난 우린 조금씩 지쳐갔다. 끝없는 파도 앞에 우린 여전히 미약한 존재였다. 그래도 잠수를 반복하며 쓰레기를 찾아냈고, 해산물을 수확하는 방법을 조금씩 익혔다.

물질하던 부산일보 취재진이 청사포 바닷속 바위 일대에서 쉬고 있는 모습.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물질하던 부산일보 취재진이 청사포 바닷속 바위 일대에서 쉬고 있는 모습.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물질을 마친 부산일보 취재진이 청사포 바다에서 뭍으로 나오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물질을 마친 부산일보 취재진이 청사포 바다에서 뭍으로 나오고 있다.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해녀들과 첫 물질을 마친 우린 다음 바다를 기약하기로 했다. 바다가 익숙하지 않은 우린 녹초가 됐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는 기장 해녀촌에서 별을 따러 가는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해남 도전 이야기를 생생히 담은 영상은 기사 위쪽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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