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심심한 사과’ 논란이 말하는 것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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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위기는 곧 소통의 위기… 절망보다 지혜 모을 때

한국 학생들은 지난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바닥권을 기록해 디지털 문해력의 저하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문해력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핵심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부산일보DB 한국 학생들은 지난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바닥권을 기록해 디지털 문해력의 저하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문해력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핵심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부산일보DB

‘심심한 사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얼마 전 한 업체가 인터넷에 올린 사과문에 네티즌들이 발끈했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을 지루하다는 의미로 곡해한 탓. 문해력(文解力)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이 사건이 다시 기름을 부었다. 디지털 시대가 깊어 갈수록 문해력의 위기는 심화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국어 문해력, 그 심각한 하락

최근 ‘심심한 사과’ 사태는 근년에 잇따르는 문해력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금일(今日·오늘)을 금요일로 착각하거나 무운(武運)을 ‘운이 없다’로 오해했던 여러 사례들이 떠오른다. 몇 년 전엔 ‘명징’ ‘직조’ 같은 단어를 쓴 한 영화평론가에게 “잘난 척한다” “엘리트주의의 향연”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단어의 뜻을 모르는 일이 한자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흘’이 3일이냐 4일이냐로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1위에 올랐던 적도 있다. ‘사’가 들어가니 4일로 대강 이해했던 거다.

문해력 부족은 단순히 글자의 뜻을 모르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유네스코는 문해력을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을 이해, 해석, 창작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한다. 요즘 아이들은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그 안의 생각과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성세대는 탄식한다. 대체 지금 우리나라의 모국어 문해력은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교육 현장의 아우성

“아이들이 글을 읽는 걸 싫어하고, 읽어도 이해를 못 합니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충격적이다. 사회나 역사 수업 시간은 낱말의 의미를 설명하느라 진도가 안 나갈 지경이란다. 심지어 시험 시간에 “정의(定義)가 뭐예요?” “과도기가 무슨 뜻이죠?”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공지사항을 가정통신문이나 단톡방 메시지로 전달하는 일도 교사들의 큰 고민이다. 아이들이 내용 자체를 못 알아듣거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생은 다를까 싶지만 오십보백보다. 예컨대, 문제를 미리 알리고 오픈북으로 시험을 보는데도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오답을 적는 학생이 대다수다. 정상적으로 맥락에 대한 이해력을 갖춘 학생은 한 학년에 서너 명 정도면 많은 편. 젊은 층은 줄임말만 접하다 보니 신조어는 잘 알아도 통상적인 단어의 유래와 의미는 모른다. 이게 ‘문맹률 1% 이하’를 자부한다는 한국의 민낯이다.


■디지털 시대에 더욱 악화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됐나. 영상 문화가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다. 화면 전환이 빠르고 대화 호흡이 짧은 영상에 익숙한 젊은 층은 줄글로 된 자료에 취약하다. 글 읽는 걸 어려워하기도 하지만 글 자체를 아예 읽으려 하지 않는 태도가 더 문제다. 읽더라도 원하는 정보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스압 주의’라는 신조어가 그래서 나왔다. ‘스크롤 압박 주의’의 줄임말이다. 스크롤을 많이 내리는 장문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미다.

디지털 기기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문해력 하락은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이런 변화는 전국적인 현상이며 앞으로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미래 사회의 기초라는데…

디지털 세상이라지만 한국 학생들은 ‘디지털 문해력’도 꽝이다. 디지털 문해력은 ‘디지털 기기와 정보사용 능력’을 이른다. 지난해 한국 청소년의 디지털 정보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바닥권을 기록했다. 이 충격적인 결과는 전통적인 문해력의 기초 없이는 디지털 문해력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한국 학생들은 주어진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식과 정보가 난무하는 시대에는 가치 있는 정보가 중요한데, 정보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살피고 선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가짜·진짜 뉴스를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문해력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 시대의 소중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이 더 높은 문해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대까지 갈라놓다

문해력 문제는 세대와 계층의 반대쪽에서도 제기된다. 디지털 기기와 그 언어를 불편해하는 시니어 세대의 고충을 가리킨다.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은 시니어 세대에게 삶의 고단한 시험대이자 소외와 고립의 장벽이 된 지 오래다. ‘최애템’(최고로 아끼는 아이템), ‘킹받네’(열받네)처럼 영어와 한글을 섞은 무수한 신조어 앞에서 이들은 절망한다.

젊은 세대는 말 그대로 문해력이, 노인 세대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문해력이 문제인 것이다. 청소년은 한자가 어렵고 어르신은 외국어가 낯선 것과 마찬가지다. 문해력의 위기는 상호 소통이 멀어진 세대와 계층 사이의 단절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문해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와 글쓰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구성하는 차원 높은 정신적 행위다. SNS 사용도 결국 읽고 쓰는 일이다. 아날로그 문해력은 디지털 문해력에도 영향을 준다. 과학기술이 날마다 새롭게 변하는 만큼 자신만의 문해력 향상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물론 개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교육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들이 대단히 중요하다.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서 이와 관련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리라 본다. 아이들이, 나아가 국민들이 읽고 말하고 쓰는 데 흥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


■결국은 소통의 문제

문해력 저하가 ‘한글 전용’ 언어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글을 읽을 줄은 알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이 한자 교육의 실종 탓이라는 시각이다.

일리 없는 주장은 아니나 문해력의 본질은 아니다. ‘심심한 사과’ 사태의 심각성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알고 있거나 생각하는 뜻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했다는 데 있다. 언어의 다양한 쓰임새나 의미를 찾아볼 의지가 없다는 것. 그 태도가 상징하는 바는 바로 편견과 단절이다.

문해력은 소통 의지와 관련된 문제로 봐야 한다. 결국 문해력의 위기란 나와 타자가 속한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가 아닐까. 그래서 “문해력 저하는 민주주의 위기로 귀결될 수 있다.”(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는 것, 이게 디지털 환경에서의 진정한 문해력이다.

곧 다양한 세대가 마주하는 추석 명절이다. 문해력은 위기를 맞고 있지만 그것은 세대 간 문화 차이를 해명할 단서이기도 하다. 갈등의 깊이 앞에서 절망하기보다는 그 간극을 메울 지혜를 쌓는 일이 급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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