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기장 바다에서 ‘별’ 보고 왔습니다 #8-4
※‘부산숨비’는 제주도 밖 육지 해녀의 대명사인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부산은 제주도 해녀들이 처음 출향 물질을 하며 정착한 곳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60대 미만 부산 해녀는 20명 남았습니다. 인터뷰와 사료 발굴 등을 통해 사라져가는 부산 해녀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물질에 동행해 ‘그들이 사는 세상’도 생생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녀보다 관심이 적은 육지 해녀가 주목받는 계기로도 삼으려 합니다. 이번 기획 보도는 〈부산일보〉 지면, 온라인, 유튜브 채널 ‘부산일보’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이야기> : 해남이 되고픈 20~30대 기자와 PD들. 드디어 부산 해녀들과 물질을 떠났다. 청사포 바다는 맑았고, 해조류 옆으로 물고기가 노닐었다. 우린 해녀들 곁에서 쓰레기를 건지며 첫 물질을 마쳤다.
- 관련 기사 : [부산숨비] 해녀들과 청사포 바다에 뛰어든 해남들 #8-3 (https://me2.do/FIYhyoie)
청사포 바다에서 ‘아기 해남’으로 첫발을 뗐다. 실내화 신은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우리도 쓰레기를 건지며 연습을 반복했다.
해녀들과 두 번째 물질을 떠나기로 했다. 앙장구(말똥성게)와 돌미역이 유명한 기장 앞바다. 부산 해녀가 가장 많은 바다에서 도전을 이어가게 됐다.
올해 7월 12일 아침 기장 바다로 향했다. 신암어촌계 해녀들과 연화리 앞바다에 뛰어들기 위해서다. 주황색 테왁을 쉽게 볼 수 있는 기장 바다에서 다시 우린 해남이 됐다.
■ 해남이 받은 두 가지 임무
기장에서 물질한 날은 특별했다. 해산물만 채취하는 보통날과 달랐다. 두 가지 임무가 주어졌다. 해녀들과 바닷속 ‘별’을 따고, 크레인을 조종해 수확물을 받아주라는 특명.
동네 큰형처럼 친근한 어촌계장에게 크레인 조종법부터 배웠다. 크레인 끄트머리에 달린 줄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망사리를 걸어 좌우로 이동하는 법을 연습했다. 조금 큰 ‘인형 뽑기’ 기계라 생각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천대원 신암어촌계장은 “해남이 되려면 해녀들 테왁과 망사리를 받아주는 경험도 도움이 된다”며 “시간에 맞춰 바다를 향해 크게 소리치면 해녀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인 작동법을 익히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도 청사포처럼 탈의실이 없었다. 그래서 또 밖에서 옷을 갈아입는 물의를 일으켰다. 물에 적셔야 편하게 고무 잠수복을 입을 수 있어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그기도 했다.
문득 그래도 우린 편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녀들은 우리처럼 밖에서 옷을 입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연화리 해녀는 공중화장실에서 해녀복을 갈아입었고, 다대포 해녀들은 어선 뒤 천막 안에서 입기도 했다.
■ 별 따러 간 해남들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갔다. 우리가 찾아야 할 바닷속 별은 다름 아닌 불가사리. 전복이나 피조개 등을 잡아먹어 주기적으로 없애야 하는 ‘유해 생물’이다. 번식력이 강하고 식욕이 왕성해 ‘물건(해산물)’도 많이 줄게 만든다.
연화리 해녀 10여 명은 이날 불가사리를 제거하러 출동했다. 바다 곳곳에서 만난 해녀들은 처음엔 우릴 빤히 쳐다봤다. 해녀들에게 별을 따러 왔다고 말하며 “(별을 단 장군이 많은) 육군본부 다 잡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자 그들은 쉽지 않을 거란 눈빛으로 우릴 쳐다봤다. 망사리에 담긴 불가사리를 보여주며 “여기 주변에서는 거의 다 건졌다”고 웃었다.
우린 연화리 앞바다 곳곳을 잠수하며 불가사리를 찾았다. 하지만 우리 같은 ‘아기 해남’에게 별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나름 바닥 깊은 곳까지 들어가고, 바다풀 사이를 뒤져도 별은 없었다.
■ 별이 없다면 맥주캔
불가사리가 없어도 보이는 건 있었다. 유명 관광지이기도 한 이곳에 쓰레기가 없을 순 없었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다 쪽으로 조금만 이동해도 깨끗한 편이었지만, 죽도를 오가는 육교 밑에는 음료 캔 등이 곳곳에 있었다.
우린 이거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잠수를 반복했다. 나름 눈에 보이는 캔을 다 들고나오겠단 기세로 달려들었다. 한 번에 캔을 두 개씩 건지기도 했고, 펄에 박힌 쓰레기도 찾아왔다.
육교 아래에서 쓰레기를 주웠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연화리 바다는 신비로웠다. 다양한 바다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그 옆을 지나는 물고기가 우릴 반겼다. 별이 보이지 않아도 기장 바다는 아름다웠다.
■ 크레인 조종한 해남
한참 물질하다 어촌계장이 던져준 두 번째 임무가 생각났다. 시간을 확인한 후 뭍으로 나왔고, 크레인 전원을 넣었다. 바다 곳곳을 향해 “이제 나오시면 됩니다”라고 여러 번 큰소리를 쳤다.
여기저기 흩어졌던 해녀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크레인을 조종해 바닷속으로 줄을 내렸다. 해녀가 줄 끝에 달린 고리에 망사리를 걸면, 다시 줄을 위로 올렸다. 크레인을 오른쪽으로 돌려 줄을 아래로 내리면 땅 위로 망사리가 옮겨졌다.
해녀들 망사리에는 불가사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반나절 넘게 연화리 앞바다를 훑은 결과였다. 불가사리가 쌓일수록 ‘별이 빛나는 낮’이었다.
해녀회장 선배의 망사리는 특히 무거웠다. 불가사리에 더해 우럭 같은 생선도 잡아 왔다. 신암어촌계 김정자(72) 해녀회장은 “(해남들을 가리키며) 물질 도전하는 너네 보여주려고 잡아 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기장군청 공무원은 이날 건진 불가사리 무게를 쟀다. 해녀들이 잡은 불가사리를 수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긴 수익은 해녀 공동체 자산이 된다. 정정순(63) 해녀는 “음료 구매 등을 위한 공금으로 사용한다”며 “연화리가 단합이 잘 된다고 부러운 대상이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가사리 제거 작업을 함께 한 우린 해녀들이 좀 더 친근해졌다. 그들도 마음을 좀 더 여는 듯했다. 무엇보다 해산물 수확뿐 아니라 도울 수 있는 일이 많단 것도 알게 됐다.
우린 해녀 선배들에게 피로회복제를 나눠드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늘 그랬듯 물질을 마치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수다를 떨었다. 이날은 기자와 PD들도 평소보다 할 말이 많았다. 함께 대화를 나누니 즐거움은 배가 됐다.
우린 물질을 함께 한 해녀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김정자 해녀회장이 “살랑살랑 봄바람”이라고 말하자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그때 정안선(74) 해녀가 “이제 봄바람이 아니고 가을바람”이라고 말을 보탰다.
기자와 PD들이 해남 도전을 시작할 때가 올해 봄이었다. 우린 가을바람을 기다리며 다음 물질을 기약했다.
※다음 편에는 프랑스인 유튜버들과 영도 바다를 누비는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해남 도전 이야기를 생생히 담은 영상은 기사 위쪽과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