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피 같은 돈, 지방에도 돌게 하라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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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왔다 갔다 하는 동백전 캐시백 요율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기로
예타 면제 균형발전 사업도 위기
‘지방 없는 국정’ 일제히 비판
“기재부의 나라냐” 질타 고개
지방소멸은 국가소멸로 이어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 15일까지냐, 16일부터냐.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의 ‘추석맞이 더블 이벤트’가 고민거리를 던진다. ‘9월 한 달간 동백전 더블 이벤트로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라는 덕담까지는 좋지만 15일을 기점으로 충전 한도와 캐시백 요율이 나뉘어 혼란스럽다. 이달에는 60만 원을 충전해 4만 5000원을 돌려받지만 15일까지는 충전 30만 원에 캐시백 10%, 15~30일은 충전 30만 원에 캐시백 5%로 다르기에 그렇다.

동백전은 이처럼 덜컹거리는 게 제 운명인 듯하다. 올해만 하더라도 50만 원 충전 한도에 10% 캐시백으로 가다가 8월 1일부터 충전 30만 원, 캐시백 5%로 바뀌었다. 이달 들어 계산도 두 배 복잡한 더블 이벤트가 나왔다. 10월부터는 어떤 정책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동백전의 앞날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지역화폐 국가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국 지역화폐를 중앙정부 예산으로 지원한 부분에 관해 학계 등 전문가의 많은 지적이 있어 원점에서 점검하는 중에 있다”고 운을 떼더니 2023년 예산안 발표 브리핑에 나선 기재부 예산실장은 “지역사랑상품권은 효과가 특정 지역에 한정되는 온전한 지역사업”이라며 지역화폐 국가 예산의 전액 삭감을 발표했다. 지역화폐의 적들이 기재부를 앞세워 지방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효과가 특정 지역에 한정되면 국가 예산을 줄 수 없다는 반지방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이쪽에 지원하면 저쪽에서 반발한다는 ‘디바이드 앤 룰’(divide and rule)의 분할통치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툭하면 지방끼리 싸우게 하더니 이젠 특정 지방에 그 특정 지방민의 혈세조차 돌아가지 못하게 옥죄고 나섰다. 지방은 안중에도 없는 국가주의는 효율과 경제 논리를 앞세운 수도권 중심주의로 귀착된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이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을 통해 지방의 피 같은 돈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지역화폐를 통해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지방정부에 중앙정부가 딴지를 걸고 나선 셈이다. 기재부 관리나 국가주의자들은 한 번이라도 지방의 골목이나 시장을 찾아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의 말을 경청한 적이 있는가. 국가와 정부화폐가 엄연히 있는데 지방과 지역화폐라니, 괘씸죄를 적용하겠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기획재정부가 13일 부총리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엄격한 예타(예비타당성) 제도 운영을 통해 예산 낭비를 방지하는 ‘재정의 문지기’로서 예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 천명한 것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국가정책적 추진이 필요한 사업을 예타 면제로 끌어올린 지방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사업 규모·사업비 등의 세부 산출 근거가 있고 재원 조달·운영 계획, 정책 효과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사업이어야 한다며 예타 면제 요건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경제성(B/C)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다. 인구가 적은 지방보다 사업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 수도권이 매번 높은 점수를 받아 수도권 집중을 가속한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됐다. 실제로 예타 제도가 시행된 1999년부터 2020년까지 모두 231조 839억 원의 예타사업을 확정했는데, 부울경 3곳을 합쳐도 예타 통과 사업비가 수도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조 446억 원(9.97%)에 그쳤다.

최근 기재부의 서슬이 시퍼렇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이나 검핵관(검찰 출신 핵심관계자) 못지않게 요직을 꿰차고 있어서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국무조정실장,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등이 줄줄이 기재부 관료 출신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에도 기재부 출신의 조규홍 후보자가 내정되자 ‘기재부의 나라’ ‘모피아’(MoFia)라는 말이 회자한다.

지역화폐 지원 국가 예산이 지난해 1조 522억 원에서 올해 6050억 원, 내년 전액 삭감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월 100만 원 충전, 캐시백 요율 10%를 목표로 출범한 동백전은 그 위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예타 면제가 필요한 지방사업도 줄줄이 문턱조차 넘기 어렵게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국정에 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셌는데, 이제 지방의 돈줄마저 마를 판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 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어디 인체만 그러하겠는가. 지방도 나라도 경제의 실핏줄인 돈이 제대로 돌아야 산다. 지방에 돈줄이 막히면 나라라고 해서 어디 성하겠는가.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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