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약자복지’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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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장애인 잇따라 극단 선택
경제적 자립 지원·일자리 창출 실패
기초생활수급자 정책 손질해야
교통·보행약자 대책도 곳곳에 구멍

김건희 여사가 8월 25일 오후 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 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8월 25일 오후 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 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2일 부산의 한 빌라에서 모녀가 사망했다. 경찰에 의하면 양정동 모 빌라에서 40대 여성 A 씨와 10대 딸 B 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한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A 씨가 B 양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경찰은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7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고, 이웃에서는 경제적인 어려움일 것이라고 했으나 유서가 없어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이보다 앞선 8월 21일 경기 수원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신변을 비관하는 유서를 남겼는데 60대 어머니는 암을 앓았고, 40대 두 딸은 장애인이었다. 아버지는 몇 해 전 사업 실패로 빚만 남기고 병사했고, 이후 생계를 책임졌던 아들도 3년 전 지병으로 숨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 수원은 이들의 주소지가 아니어서 사회복지 관계자들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3일 생활고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언급하며 ‘정치복지’가 아닌 ‘약자복지’를 강조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약자복지 언급으로 정부에서는 ‘복지사각 개선 TF’팀을 구성했으나 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추석 연휴 기간에도 약자와의 동행을 계속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약자복지란 어떤 것일까.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가 진정한 약자’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약자란 빈곤층 그리고 장애인 등이다. 현재(2021년 통계) 기초생활수급자는 235만 9672명이고, 장애인은 264만 4700명이다. 모든 장애인이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겠지만 많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은 맞물려 있다.

이들에게 제일 시급한 문제는 경제적 자립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현 제도는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일할 의욕을 잃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한다.

왜냐하면 일을 하여 수입이 발생하면 수급자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아무도 일을 안 하려고 한다. 지난 12일에 일어난 모녀 사망사건에서도 관할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A 씨의 일일 소득과 전 배우자의 양육비 지급 등으로 의료·생계급여의 선정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그러나 약자에는 빈곤이나 구직만 있는 게 아니라 교통약자 내지 보행약자도 있다. 대문 밖을 나서면 곳곳에 턱이 있어 앞을 가로막고 대중교통에서 지하철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서면역이나 연산역 등의 곡각지점에는 승강장과 지하철의 간격이 벌어져 있어 발빠짐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시각장애인도 빠지고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휠체어의 바퀴가 빠지기도 하고 어린이나 유모차가 빠지기도 한다.

버스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불편하기는 해도 저상버스가 있어 그런대로 견딜 만하지만,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장애인은 버스가 어디에 설지를 모르고 버스의 승강장이 너무 높아서 이용하기가 대략난감이다.

산업의 발전으로 2000년대부터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가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밀어주어야 하는 수동휠체어는 가정용이나 병원용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부산의 주요 관광지인 송도 용궁구름다리는 2020년에 완공했음에도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접근조차 불가하고 송도 케이블카는 전동휠체어는 탑승조차 못 하게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해운대 블루라인파크의 해변열차도 2020년에 개통했음에도 전동휠체어는 탑승을 못 하게 해서 장애인들은 불만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약자복지의 뒤꼍에서는 복지 관련 예산이 줄줄이 삭감되어 앞뒤가 다르다는 원성도 높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표를 얻기 위한 복지가 아니라 표가 안 되는 곳, 정말 어려운 분들의 곁에서 힘이 되는 복지 정책을 펴나가겠다”라고 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좋은 복지라면 투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왜 표가 안 되는 곳이라고 할까. 약자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라는 말인가.

이복남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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