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카톡 '먹통'서 꽃핀 불편의 미덕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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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서비스 중단 사태, 디지털 종속 사회 돌아보게 해
몸의 움직임 통해 편리함 넘어선 인간의 길 성찰 필요

현대인들은 한시라도 스마트 기기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과도한 연결 때문에 극심한 사회적 피로감에 시달리는 디지털 중독 시대에 살고 있다. 부산일보DB 현대인들은 한시라도 스마트 기기로부터 떨어져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과도한 연결 때문에 극심한 사회적 피로감에 시달리는 디지털 중독 시대에 살고 있다. 부산일보DB

최근 카카오톡 ‘먹통’ 사태는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현대인의 고단한 숙명을 이면에 품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문명의 최대 강점은 편리함과 효율성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그런 단순한 잣대로 재단될 순 없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그것에 대한 매서운 경고일지도 모른다. 느리고 불편해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역설, 그러니까 불편의 미덕을 새삼 일깨울 기회다. 불편에 대한 성찰은 디지털 중독에 빠진 현대인에게, 그리고 지구의 미래와 환경을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 디지털에 중독된 사회

2015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1세기 인류를 ‘스마트폰 하는 인간’으로 규정한 바 있다. 휴대전화를 가리키는 ‘포노(phono)’와 생각·지성을 뜻하는 ‘사피엔스(Sapiens)’를 합친 ‘포노사피엔스’가 그것이다. 일어날 때도, 취침할 때도, 출퇴근할 때도, 일할 때도,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신인류. 디지털 기기 하나로 시공간 제약이 없는 소통이 가능하고, 생활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다.

‘노모포비아(Nomophobia)’가 여기서 나왔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걸 말한다. 불안은 중독의 매개체다. 스마트폰 같은 IT 기기나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 역시 중독 사회의 한 현상이다. 그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건강과 대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 새로운 강박과 스트레스

디지털 기기 의존의 다른 증상은 강박과 스트레스다. 2021년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응답자의 63.9%가 ‘디지털 과부하’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비대면’의 일상화로 메신저 등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IT 기기 의존과 중독은 무엇보다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미지·동영상·게임 영역은 후두엽에서 바로 처리가 이뤄져 기억과 사고·추리 영역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 기회를 막는다고 한다. 그것은 감각적 정보 수용에만 익숙한, 이른바 ‘팝콘 브레인’을 양산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 위험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 15일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로 사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사진은 카카오톡 오류 메시지. 연합뉴스 지난 15일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로 사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사진은 카카오톡 오류 메시지. 연합뉴스

■ 카톡이 멈추자 찾아온 평화

카카오톡 먹통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이런 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카카오톡의 국내 메신저 점유율은 90%. 당장 서비스 장애·중단에 따른 불편과 손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건 물론이다. ‘초연결사회’의 붕괴 혹은 단절에 대한 우려와 성토도 쏟아졌다.

한편으로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부터의 해방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카톡 없는 주말, 휴일다운 휴일을 보냈다.” “불편했지만 그 대신 평온과 여유가 찾아왔다.” “카톡이 멈추자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알람이 멈추니 주변이 보였다.” “세상과 분리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해방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깨달음의 기회가 찾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나치게 온라인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디지털 방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은 가능하다는 것 등등.


■ 디지털 디톡스의 소환

그래서 다시 소환되고 있는 단어가 디지털 디톡스다. 디지털(digital)과 해독(detox)의 결합어로, 각종 전자 기기와 인터넷·SNS 등의 중독에서 벗어나 심신을 치유하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디지털 중독을 푸는 해법이다.

현대인은 한층 자극적인 콘텐츠에 젖어 있거나 과도한 연결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디지털 습관이 어떤 독을 지니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게 더 큰 문제다.

전문가들은 일정 시간 디지털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그동안 과도한 디지털 사용으로 정신에 쌓인 독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치 음식을 먹지 않아 몸에 쌓인 독을 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컨대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다니거나 또는 하루쯤 집에 놓고 외출하는 방식 등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행하는 것이다.


이번 카카오톡 서비스 중단 사태는 디지털 중독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부산일보DB 이번 카카오톡 서비스 중단 사태는 디지털 중독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부산일보DB

■ 불편의 역설, 불편의 미덕

디지털 중독에 대한 자성은 불편에 대한 성찰과 맞닿아 있다. 앞서 보았듯, 불편함 속에서 되레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찾았다는 역설이 그것이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 비하면 편리함의 시대란 아주 짧다. 어쩌면 인간 유전자 속에는 불편한 시대의 아날로그적 속성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불편한 캠핑 열풍이 불고,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DIY가 성행한다. 까다로운 카메라 필름 현상을 굳이 배우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LP판 음악감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게 다 불편함이 각인된 몸의 무의식적 향수가 아닐까.

편리함은 움직임을 없앤다. 움직임이 없으면 균형 있는 뇌의 발달이 불가능하다. 우렁쉥이 이야기가 통찰을 제공한다. 우렁쉥이는 뇌를 가지고 있지만 성장해서 한곳에 정착한 뒤에는 자신의 뇌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 움직임이 없으니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뇌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섬뜩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 다시 인간의 길을 돌아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직접 하는 일은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 그것은 불편하고 느리지만 여유와 충족감을 준다. 인간의 가치는 바로 거기서 나온다. “인간으로서 행복을 누리려면 고독이 반드시 필요하다”(칼 뉴포트·<디지털 미니멀리즘>)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공간을 파격적으로 극복한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활용하고 느끼는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을 찾으려는 사람은 불편을 감내한다. 불편과 느림은 삶을 누리고 음미하며 일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지혜다. 불편을 감내하는 일은 지구의 미래가 걸린 환경을 위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카톡 먹통이 새삼 삶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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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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