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청산해야 할 정쟁·막말 국감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감시·대안 제시 요구되는 국정감사
여야 대립 격화로 본연의 취지 상실
저질 표현·비방 난무해 파행 치달아
위기 극복 위한 정책 질의도 사라져
생산적 감사로 무용론 불식할 필요
정치권 환골탈태 통해 민심 얻어야

20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도읍 위원장이 대검찰청 국감을 강행하려 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도읍 위원장이 대검찰청 국감을 강행하려 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여야 간 정쟁이 심각하다. 지난 4일 시작돼 막바지에 이른 국회 국정감사를 지켜보고 있으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국감이 정쟁만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을 보여서다.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 논의가 펼쳐지길 원하는 국민의 바람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 책임 방기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올 국감은 21대 국회의 후반기 원 구성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맞이한 국감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여야가 그 어느 때 국감보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알차게 진행해야 할 당위성이 컸다. 국감의 근본적인 목적도 정부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입법부의 감시와 대안 제시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저성장까지 겹친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 핵 위협으로 경제·안보 상황이 위중해진 시기다. 국가적 위기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키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 실속을 찾는 정책 국감이 요구됐다.


한편으로는 국감에서 여야의 힘겨루기가 벌어질 우려가 있었다. 정권 교체로 입장이 뒤바뀐 여야가 그동안 보여 준 ‘네 탓’ 공방이 국감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높았던 게다. 국민의힘은 전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과오를 찾아내 질타하기에 열을 올렸다. 민주당은 현 정부의 무능과 윤 대통령 주변에서 불거진 의혹에 대한 공세로 맞서 왔다.

기대는 무너지고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국감장은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여야가 상호 비방을 되풀이하며 극명하게 대치해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싸움터로 변질됐다. 총알만 없을 뿐 혈투가 난무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모양새다. 18일 국회 법제사법·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선 여야의 난타전이 절정에 달했다. 이날 민주당 이 대표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의혹을 두고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감사가 중단됐다. 다른 상임위별 국감에서도 당리당략이나 감정을 앞세운 감사 보이콧과 중단, 정회, 퇴장 등 파행이 잦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쟁 국감 과정에서 막말과 반말이 빠지지 않아 여야 대립을 격화한다.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한마디로 맛이 갔던지 제정신이 아니다”, “개나 줘버려”, “버르장머리 없다”, “너나 잘하라” 등등. 예의나 품위와 너무나 동떨어진 저질 표현이다. 이런 발언은 으레 치졸한 트집 잡기로 이어져 소모적인 말다툼이 지속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언쟁으로 사태 봉합은커녕 폭언과 인신공격의 수위가 한층 높아지기 마련이다. 고함, 호통, 으름장, 삿대질도 동원되기 일쑤여서 여야 간 증오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결국 이번 국감에서 국민의힘은 민주당 이 대표를 포함한 야당 의원 4명을, 민주당은 정진석·권성동 등 여당 의원 3명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다. 서로 독기 서린 말로 물어뜯는 데 혈안이 된 이전투구의 결과다. 게다가 ‘나는 문제가 없고 상대가 잘못했다’는 식이라 몰염치하기도 하다. 이같이 충돌과 파행이 거듭되는 동안 민생과 경제 문제를 다루는 정책 질의는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국감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빵점짜리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정쟁에 골몰하고 알맹이는 없는 국감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거나 “신물 난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맹탕 국감’이란 비판과 함께 국감 무용론마저 제기될 정도다. 정치를 둘러싼 국민의 불신과 혐오, 무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27년 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서 ‘4류’로 지적받은 정치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1996년에는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가 정계를 은퇴하면서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정쟁을 ‘코미디’라고 빗댔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여야의 거대 양당은 각종 선거, 정기회, 임시회에서도 시종일관 철천지원수처럼 사활을 걸고 싸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협치의 가능성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양측이 고심 끝에 5년 만에 정권을 바꾼 민심의 준엄한 경고를 벌써 망각한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국민들은 정쟁에 넌더리가 날 지경인 반면 국회의원들은 싸움을 주업으로 착각한 듯싶다. 일부 성실한 의원은 억울하겠으나 시급한 민생 경제의 안정과 국민의 원성조차 뒷전인 국회는 퇴출감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은 늦게나마 국감의 진정한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할 때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성찰이 동반되지 않으면 내년, 내후년 국감도 정쟁과 막말로 얼룩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가 발전과 국민의 행복에 쏟아야 마땅한 정치적 역량과 시간을 낭비하며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안길지 모른다. 별다른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쟁 일변도 정치판의 면모를 일신하기 바란다. 환골탈태가 국민 모두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