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돈 되는 폐플라스틱, 이제 미래 먹거리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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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환경 문제로 갈수록 퇴출 분위기
반면 폐플라스틱은 새 원료 추출, 가치 급증
최근 대기업들 속속 공장 설립 등 투자 강화

인공 합성물로 지구상에 선보인 지 150여 년이 넘는 플라스틱이 요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인류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준 플라스틱이 환경오염 등 한계를 맞으면서 전 세계적인 퇴출 움직임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플라스틱 폐기물, 즉 폐플라스틱은 날이 갈수록 몸값이 오르는 추세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이 ‘산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은 대·중소기업 간 영역 다툼으로 번져 정부가 중재에 나설 만큼 미래 먹거리로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환경부가 ‘전 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폐플라스틱 배출량 감축 시대로 돌입했다. 부산 지역 12개 구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이 쌓여 있는 부산 강서구 부산시자원재할용센타 모습. 부산일보DB 최근 환경부가 ‘전 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폐플라스틱 배출량 감축 시대로 돌입했다. 부산 지역 12개 구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이 쌓여 있는 부산 강서구 부산시자원재할용센타 모습. 부산일보DB

■ 정부,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20% 감축

최근 환경부는 국정현안 점검 조정회의에서 ‘전 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했다. 본격적인 탈플라스틱 시대를 맞아 2025년까지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지난해 대비 20%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우선 텀블러와 같은 다회용기 대여·서비스 인증제를 도입하고, 배달 용기도 재활용이 쉽도록 최대 두께 기준 등을 개선할 방침이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제품에 부과하는 폐기물 부담금의 현실화와 플라스틱 선별 작업의 자동화도 확대하기로 했다. 예전의 정책도 있지만, 현 정부 들어서도 이 같은 정책의 유지·실행을 재확인한 셈이다. 핵심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 폐플라스틱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하며 탈플라스틱 사회로 나아가려는 흐름은 유럽연합, 미국 등이 주도하면서 대세가 됐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생 원료를 30%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인데, 이는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492만t(잠정)으로 2019년보다 약 18% 늘었다. 정부는 이를 2025년까지 393만t으로 20%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 강화와 재활용 기술 발전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가치가 급속히 높아지면서 대기업까지 뛰어들고 있다. 페트병 등 폐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환경보호 표현 작품. 부산일보DB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 강화와 재활용 기술 발전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가치가 급속히 높아지면서 대기업까지 뛰어들고 있다. 페트병 등 폐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환경보호 표현 작품. 부산일보DB

■ ‘보물’이 되어 가는 폐플라스틱

플라스틱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역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수요는 급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대체로 매립 또는 소각 방식으로 처리되어 온 폐플라스틱은 지금까지는 선진국에서 배출된 폐플라스틱을 주로 아시아의 개도국이 수입해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된 폐플라스틱의 수출입이 통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자국에서 배출된 폐플라스틱은 원칙적으로 자국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재활용 기술이 발전하면서 폐플라스틱 활용에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모양은 예쁘지만 여러 가지 재질로 섞여 있어 기존 방식으론 재활용이 어려웠던 폐플라스틱에서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를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폐플라스틱 재활용산업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폐플라스틱이 미래 먹거리로서의 가능성까지 부각되면서 대기업들도 속속 여기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폐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납사를 추출하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인 ‘열분해유 기술’이 도입되면서 대기업들에도 매력적인 시장이 됐다. 이 기술은 여러 번의 재활용에도 처음의 플라스틱 물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선 SK이노베이션, LG화학, 롯데케미칼, 코오롱인더스트리, GS칼텍스와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기술 제휴와 공장 설립 등으로 속속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 세계 화학적 재활용 시장이 열분해유 기준 2020년 70만t에서 2030년엔 330만t으로 연평균 17%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탄소 저감 등 친환경적인 경영 정책과 맞물려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에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기존 중소기업과 영역 다툼이 발생하자, 이달 21일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과 상생 협약을 맺는 조건으로 이 문제를 일단락지었다. 울산의 사회적 기업 ‘코끼리 공장’이 폐플라스틱을 재생해 만든 플라스틱 장난감. 부산일보DB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에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기존 중소기업과 영역 다툼이 발생하자, 이달 21일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과 상생 협약을 맺는 조건으로 이 문제를 일단락지었다. 울산의 사회적 기업 ‘코끼리 공장’이 폐플라스틱을 재생해 만든 플라스틱 장난감. 부산일보DB

■ 대·중소기업 간 영역 다툼도

폐플라스틱의 새 용도 발견은 폐플라스틱 물량 확보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 제품 생산과 판매가 대세인데다 국내에서도 2023년부터 페트병 제조 때 재생 원료를 30%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한 것도 이런 경향을 더 부추긴다. 유럽의 경우 폐플라스틱 수요 급증으로 올해 초에는 폐페트병이 새 페트병보다 비싸게 거래됐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이처럼 폐플라스틱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기존에 폐플라스틱을 수거·선별해 오던 영세·중소기업과 새롭게 이 분야에 뛰어든 대기업 간 다툼까지 발생하고 있다. 기존 재활용 업계는 영세·중소기업의 생계 영역인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에서 대기업은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부터는 동반성장위원회에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줄곧 요청해 왔다.

결국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달 21일 본회의를 열어 플라스틱 선별업·원료재생업과 관련해 대기업과 상생 협약을 맺는 것으로 이 문제를 매듭지었다. 대체로 단순하게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물질 재활용은 중소기업, 화학적 재활용 분야는 대기업이 맡는 것으로 시장 내 역할을 나눴다. 대강의 역할 분담으로 봉합한 모양새지만, 앞으로 폐플라스틱 활용도 증가에 따라 새로운 기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20세기를 ‘플라스틱 시대’라고 부를 만큼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플라스틱. 인류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가 다시 인류의 필요에 의해 퇴출당할 위기의 순간에 또 새로운 변신으로 귀한 몸이 된 플라스틱의 행로가 놀라우면서 그 앞날이 궁금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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