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길 걷다 보니 어느새 겨울 풍경… 경남 합천 정양늪 생태공원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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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겨울 풍경 함께 있는 정양늪 3.2km 탐방로
덱길·흙길·메타세쿼이아길·징검다리 색다른 길
큰고니·청둥오리·큰기러기 등 늪에서 만난 철새
정양늪 생태학습관 전망대 서면 늪 풍경 한눈에

경남 합천군 대양면 정양늪은 편안하게 걸으면서 계절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경남 합천군 대양면 정양늪은 편안하게 걸으면서 계절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울긋불긋 단풍, 바스락바스락 낙엽, 푸드덕푸드덕 겨울 철새. 이 같은 늦가을과 초겨울의 풍경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바뀌는 계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경남 합천군 대양면 정양늪 생태공원을 찾았다.


■소박한 듯 화려한, 매력 넘치는 늪

합천 정양늪은 우포늪에 비해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황강 지류인 아천천의 배후습지로, 약 1만 년 전 후빙기 이후 해수면 상승과 낙동강 본류의 퇴적으로 생겨났다. 전체 면적은 41만㎡. 황강 수량과 수위 감소로 육지화되고 수질 악화가 가속화되면서 습지 기능을 잃어 갔지만,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생태공원 조성사업으로 생태계를 되돌렸다.

정양늪 생태공원에는 늪의 생태를 관찰하며 걷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총 길이 3.2km로, 오르막길이 없어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정양늪 생태공원 주차장에서 생태학습관을 지나면 나오는 생명길에서 걷기를 시작해도 되고, 육각정과 생태학습관 사이로 난 나무 덱 길로 들어서도 된다. 탐방로 중 두 군데 구간에 징검다리가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로 전체 한 바퀴를 돌기는 힘들다.

늪의 잔잔한 수면 위로 길게 놓인 덱 길로 먼저 들어섰다. 늦여름까지 장관을 이뤘을 연잎들이 한 생을 마치고 시들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황량한 풍경에 잠깐 발걸음을 주춤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 믿고 500m 길이의 나무 덱 길을 걸었다. 덱이 끝나갈 즈음 갈대를 만났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희한하게도 갈대를 바라보는 쪽은 갈대가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신라 장수가 주먹으로 짚은 자국’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장군주먹바위. ‘신라 장수가 주먹으로 짚은 자국’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장군주먹바위.
정양늪 탐방로 바닥에 깔린 낙엽. 정양늪 탐방로 바닥에 깔린 낙엽.

큼직한 돌이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흙이 깔린 숲길이다. 이 흙길은 하회마을 입구까지 이어진 1.7km이다. 왼쪽으로는 울긋불긋 단풍이 든 나무가 줄지어 섰고, 바닥에 깔린 낙엽은 바스락바스락 ‘겨울’ 소리를 낸다. 정양늪의 매력에 단박에 빠져든다. 평일이라 그런지 방문객이 많지 않다. 번잡스럽지 않고 고요해 사색에 빠지기 좋다.

이 길에는 장군주먹바위의 전설이 있다. ‘신라와 백제가 정양늪을 사이에 두고 고소산성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신라 장수가 진지를 둘러보러 용주면 성차골 먼당 산성에서 출발해 안버러실 먼당에 첫발을 디뎠다. 하회마을 참능 먼당의 바위에 오른발을 디디며 발자국이 생겼다. 이때 몸이 미끄러지면서 정양늪에 빠질 위험에 처하자 손을 뻗어 주먹으로 바위를 짚으면서 위기를 모면했는데, 주먹을 짚은 자국이 바로 장군주먹바위다.’ 바위에 움푹 팬 자국이 그럴듯하다.

흙길 끝에 벤치 하나가 그림처럼 놓여 있다. 지금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거나, 혹은 반대 방향에서 걸어왔다면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자리다. 벤치 가까이에 길 양쪽으로 세워진 짧은 울타리가 가을에서 나와 겨울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징검다리를 건너면 생명길이라 이름 붙은 길이다. 주차장까지 1km 구간. 이 길에서는 철새와 가깝게 만난다. 붉게 물든 메타세쿼이아가 걷는 이를 반긴다. 왼쪽으로는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버드나무가 늪을 향해 누운 이색 풍경이다. 탐조대의 네모나게 뚫린 창으로 늪과 철새를 바라보면, 액자 속 그림을 보는 것처럼 색다르다. 멸종위기종인 큰고니를 비롯해 큰기러기, 흰뺨검둥오리, 큰고니, 청둥오리가 겨울 늪의 주연이다. 이렇게 정양늪을 한 바퀴 걷고 나면 정양늪을 소개하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정양늪.’


■자세히 만나볼까, 정양늪의 친구들

정양늪 생태학습관은 ‘작지만 알차다’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곳이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금개구리 모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금개구리는 정양늪이 경상권 최대 서식지이다. 금개구리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참개구리와 생태가 유사하지만, 금개구리는 거의 물에서 떠나지 않는 습성을 가진 점이 다르다. 등에 돌기가 없거나 점 모양이면 금개구리, 길쭉한 돌기가 있으면 참개구리이다.

생태학습관은 정양늪에 서식하는 생물, 조류와 수생식물들의 표본과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정양늪에는 모래주사(멸종위기종)·버들치·가물치 등 어류 10여 종, 대모잠자리·참매미·호랑나비 등 곤충 130여 종, 큰기러기·큰고니·말똥가리 등 조류 50여 종, 수달·고슴도치·너구리 등 포유류 10여 종이 살고 있다. 가시연·수련·줄·갈대·마름·어리연·물옥잠 등 식물은 250여 종이다.


정양늪 생태학습관 2층의 포토존. 정양늪 생태학습관 2층의 포토존.

정양늪 생태학습관 2층의 휴게실. 정양늪 생태학습관 2층의 휴게실.

2층으로 올라가면 풀벌레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풀잎과 커다란 벌레로 꾸민 포토존이 재미있다.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가족영화 ‘애들이 줄었어요’가 생각난다. 작은 사람이 되어 풀숲을 헤매는 듯, 동심이 솟는다. 복도 한쪽에는 정양늪의 생태를 알 수 있는 터치스크린이 있다. 동물, 수생식물, 물고기 중 주제를 고르고 원하는 생물을 ‘터치’하면 자세한 정보를 보여준다. 체험실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 백로와 대결하는 코너인 ‘한 발로 서 봐요’ 코너는 재미는 물론 자신의 균형감각도 체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누구의 둥지일까요’ ‘부리가 달라요’ ‘다리가 달라요’ 등 다양한 내용의 정양늪 생태 콘텐츠가 있다.

어른들에게 생태관의 하이라이트는 2층의 휴게실이다. 둥근 유리창으로 넓게 펼쳐진 늪을 바라보며 몸도 마음도 쉬어갈 수 있다. 풍경에 푹 빠질 수 있는 힐링의 시간이다. 3층 옥상에도 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풍경을 마음껏 누렸다. 생태학습관 1층 야외의 그네 의자에 앉아 정양늪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지난 계절의 아쉬움과 오는 계절의 설렘을 함께 느끼면서.


▷여행 팁: 정양늪 생태공원에는 전용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생태체험관은 매주 월요일과 설·추석 당일, 1월 1일 휴관한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관람료는 무료.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생태체험관을 먼저 둘러보고 탐방로를 걸으면 좋다.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관 입구 데스크에서 ‘정양늪 어드벤처’ 책자를 챙기자. 미션을 풀면서 재미있게 늪의 생태를 탐험할 수 있다. 생태학습관과 생태공원 곳곳에 놓인 스탬프 찍기를 완료하면 작은 기념품을 받는다. 정양늪 생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오후 4시 등 하루 3회 운영한다. 환경생태해설사와 함께 1시간 30분 동안 생태학습관 관람과 정양늪 생태체험 탐방, 생태학습, 체험교구 만들기를 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체험 3일 전까지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된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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