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93) 정만영 ‘하얀숲 White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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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영 작가는 부산을 거점으로 한국, 일본, 미얀마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작가이다. 부산대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일본 동경대 대학원에서 첨단예술을 접한 이후 매체 중심의 실험적인 작업을 꾸준히 선보였다. 정 작가는 현재 사운드 중심의 설치 작업이라는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디어 실험 초기 작업 때는 대나무를 뼈대로 세우고 영상프로젝션을 활용한 거대한 미디어설치작업 ‘베이직 미디어(Basic media)’로 빛과 구조화된 공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도시 풍경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다. 2003년 사진을 이용한 ‘필름 이벤트, 인스톨레이션’, 2004년 자신의 성장 과정이 담긴 사진과 모니터·조명을 사용한 ‘도큐먼트 앤드 메모리’를 통해 매체의 실험과 주제 의식의 변화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2005년 믹싱된 사운드와 영상 설치작품 ‘비트윈(between)’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운드를 작품의 주요 매체로 활용한다. ‘소리 만들기’로 매체적 실험을 해오던 작가는 2009년 대안공간 반디 전시에서 굴삭기를 이용한 도시 드로잉을 사운드와 영상 그리고 텍스트로 기록한 ‘사운드 큐브(sound cube) 1.5’에서 본격적으로 고유의 ‘소리를 찾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이후 부산의 산복도로 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양한 국내외 프로젝트 전시에 참여하며 도시 고유의 소리를 ‘채집’하는 방식의 작업을 선보인다. 정만영 작가가 채집한 소리는 시공간의 기록이자 아카이브로서 역할도 수행한다.

작가는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의 근대 작가인 게이아미가 폭포를 그린 작품을 보며 작품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한 공감각 현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공간에는 고유의 소리가 있다. 소리가 파생하는 이미지나 공간은 오히려 시각적 판단에서 놓치는 기억과 진실에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작가가 공간탐구에서 찾아낸 소리는 오히려 소리를 중심에 두고 공간을 연상시키는 역발상으로 작업을 전환하게 되는 근원이었다. 작품 ‘하얀숲’은 2006년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대형 설치작품 ‘하얀숲’의 연작 중 하나이다. 당시 출품된 ‘하얀숲’은 부산 도시의 건물을 하나하나 캐스팅해 사각형 모양의 도시공간을 연출하고, 중앙에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운드 작업으로 전환된 2009년에 이 작품은 중앙의 모니터를 빼고 스피커로 교체해 ‘도시의 소리’를 들려준다.

현재 작가는 자연과 도시를 오가며 다양한 시간대와 공간에서 소리를 채집하고 있다. 특히 사라져가는 원도심을 중심으로 소리 지도를 그리는 등 도시의 기억을 공감각적으로 기록하고, 동일한 시간에 부산과 해외도시, 한국의 숲과 일본의 숲 소리를 연결해 시공간의 간극을 좁히는 실험도 한다. 사운드라는 매체 실험을 통해 시각 중심의 가시적 한계를 넘어서게 하고, 공감각적 사유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김지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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