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아파트값 올리려다 빛 공해·에너지 위기만 초래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 해운대구 아이파크주상복합건물의 옥탑부 야간조명으로 인한 눈부심이 심해 인근 주민들이 생활의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부산일보 독자 제공 부산 해운대구 아이파크주상복합건물의 옥탑부 야간조명으로 인한 눈부심이 심해 인근 주민들이 생활의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부산일보 독자 제공

■값싼 에너지 시대는 지나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위기가 전 세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가 서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잠그면서 유럽의 가스 비축량이 내년 3월에는 5% 수준으로 하락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올수록 에너지 위기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전기 공급 자체가 끊긴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서유럽은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해 실내 난방은 물론이고 조명과 온수 공급 시간까지 제한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NATO 중심의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 호주, 카타르 등을 통해 천연가스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결국 이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3개 국가에서 60% 이상을 수입하는 한국에도 수입 가격 인상은 물론이고 물량 확보에 부담이 되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에너지 수입액은 1587억 달러로 지난해에 비해 82%나 급증했다.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안팎으로 치솟았고, LNG(액화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보다 180%, 석탄은 60% 넘게 급등한 탓이다.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수입액이 늘어나면서 한국의 무역수지는 지난 4월 이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고물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적자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실을 해결하려면 전기·가스요금을 한꺼번에 40% 이상 올리거나, 수십조 원의 국가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가스·원유 등 대규모 에너지 수입이 무역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함에 따라 공공부문 중심으로 동계 적정 실내온도 유지, 난방사용 자제 등 강도 높은 에너지 절약을 펼치기로 했다.


■인공조명 오염도 세계 2위

싼값에 풍족한 에너지를 누려 온 한국은 여전히 ‘풍부한 전기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업·주거시설마다 난방과 에어컨이 전기를 소모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텔이나 아파트, 공공시설 곳곳에 경쟁적으로 야간 인공조명을 설치하면서 ‘빛 공해’의 피해가 심각한 지경이다. 산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야간골프도 성행하고 있다. 값싼 에너지에 취해 위기를 애써 외면하려는 모양새다.

빛 공해는 지나치게 강한 인공조명으로 수면을 방해하거나 보행자의 눈부심을 일으키는 등 생활환경에 불편을 주는 공해를 뜻한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각종 네온사인, 상점·빌딩 조명, 디지털 광고판, 가로등 조명이 과도하게 많이 설치돼 인공조명에 의한 오염이 G20(주요 20국) 가운데 이탈리아와 함께 최악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인공위성으로 밤하늘을 살펴본 결과 한국은 688μcd/m² 이상의 인공 밝기로 은하수를 볼 수 없는 인구가 전체의 91%에 달해 조사 국가 중 사우디아라비아(95.9%)에 이어 2위, 빛 공해 피해 지역 비율도 89.4%로 G20 국가 가운데 이탈리아(90.3%)에 이어 두 번째로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해운대구 아이파크주상복합건물의 옥탑부 야간조명의 밝기를 보름달과 비교해 찍은 사진. 부산일보 독자 제공 부산 해운대구 아이파크주상복합건물의 옥탑부 야간조명의 밝기를 보름달과 비교해 찍은 사진. 부산일보 독자 제공

■빛 공해로 잠들지 못하는 대한민국

“건너편 아파트 불빛 때문에 사는 것 자체가 힘들 지경입니다. 한여름 더위에도 밤에 창문을 열지 못하고 암막 커튼이 있어야 잠들 수 있습니다.” 도심 곳곳이 빛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상가와 오피스텔, 모텔, 아파트 외벽과 옥상 등에 우후죽순 설치되고 있는 조명 기구 불빛으로 인한 빛 공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부산은 해운대 마린시티 및 엘시티, 남구 용호동 더블유 등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옥상에 잇따라 조명을 설치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경우 아이파크 불빛 때문에 다른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A 아파트 입주민들은 “아파트 옥상에 밤 늦게 켜진 아이파크 옥상 조명 때문에 밤에도 창문 암막 커튼을 쳐놓고 살면서 압박감과 폐쇄공포증이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편안하게 자야 할 시간까지 건너편 아파트 옥상 불빛으로 수면에 방해를 받아 관할 구청에 민원을 아무리 제기해도 전혀 효과가 없다”고 호소한다. 주민들은 “가뜩이나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전기가 모자란다고 하는 상황에서 이웃의 불편만 야기하는 야간조명을 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야간조명은 ‘랜드마크를 위한 경관 조명’ 차원에서 새 아파트에서 주로 실시됐지만, 구축 아파트에도 퍼지고 있다. 아파트 가격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옥탑은 물론이고, 길에서 보이는 측벽에만 세로로 조명을 설치하면서 이웃과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부산 남구 용호동 더블유의 옥탑부 조명이 유행하면서, 기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자기들 아파트도 조명을 보완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A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에 세로 형태로 야간조명을 할 경우 건물의 웅장함과 도시적인 이미지, 새 아파트 같은 느낌이 강해지면서 입주자의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LED 조명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야간조명을 시공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힌 야간골프장 전경. 부산일보DB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힌 야간골프장 전경. 부산일보DB

■소송·민원도 줄이어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한 무리한 조명 설치로 인한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부산지법 민사11부(전우석 부장판사)는 11월 3일 부산 동래구의 한 아파트 주민 A씨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A씨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파트 가격을 올리려고 옥상 등에 설치한 경관용 조명기구로 입주민이 빛 공해에 시달렸다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5월 아파트 문주와 옥상 등에 LED 자체발광형 조명 기구를 설치하고 하루에 5시간씩 점등했다. 외부에서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 아파트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 집값을 올리려는 목적이었다. 동래구의 의뢰로 한국환경공단이 조명 기구 3곳의 밝기를 측정하니 기준치의 수백 배 이상을 넘었다. 밝기가 심한 곳은 21만 9906cd/㎡이 기록됐는데, 이는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상 기준인 평균 25cd/㎡를 8796배 초과한 수치다.

결국 인근 주민이 “빛 공해에 시달려 불면·불안 등 스트레스 진단을 받았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거주하는 등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빛 공해는 일종의 환경오염으로, 조명으로 인한 빛 공해는 사회 통념상 수인한도를 초과했으며, 원인자에게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조명 기구는 아파트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사회적 유용성이 있다거나 공공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한, 조명 점등 시간인 19시부터 24시까지는 수면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시간대이고, 원고 스스로 암막 커튼을 치거나 창문 필름을 부착하는 등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손해를 입지 않도록 조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빛 공해’로 인한 민원은 전국적으로 매년 3000여 건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7월에도 전북 군산 한 아파트 주민들이 맞은편 건물 외벽에 설치된 과도한 조명에서 발생하는 빛이 밤늦게까지 거실과 방으로 들어와 깊은 잠을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과도한 조명을 없애든지 아니면 줄여서라도 생활권에 침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산항대교 야간조명 현황. 강선배 기자 ksun@ 부산항대교 야간조명 현황. 강선배 기자 ksun@

■비만, 반딧불이 실종 등 환경·건강에도 악영향

밤에 각종 조명으로 빛 공해에 시달리는 사람은 비만과 불면증에 노출될 위험도가 높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도 나왔다. 식물의 경우 성장에 영향을 받고, 여름이면 도심에서 한밤중까지 울어 대는 매미, 산란기가 앞당겨진 개구리, 도시의 빛 때문에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 반딧불이 등이 모두 빛 공해의 그늘이다.

뷔셀의원 이광미(가정의학과) 원장은 “빛은 체내의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데 아침에 햇빛을 쬐면 체내시계가 24시간으로 맞춰지지만, 밤에 빛을 쐬면 체내시계가 점점 길어져 생체 리듬이 깨지게 된다. 이 경우 수면 각성과 멜라토닌 수면 호르몬, 심부체온 리듬이 깨지면서 몸에 온갖 컨디션 난조가 일어난다”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빛 공해가 지속될 경우 인지기능을 떨어뜨리고 수면의 질을 낮추고 불면증과 우울증, 피로, 면역 기능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심야 수면시간대에 일정 밝기 이상의 빛에 노출되면 인체 내 생체리듬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돼 수면장애, 면역력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잠 자는 시간에 어린이가 빛에 과다 노출될 경우 성장 장애, 난시 발생 등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빛 공해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광주 북구 임동 야구장의 인공조명 모습. 연합뉴스 빛 공해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광주 북구 임동 야구장의 인공조명 모습. 연합뉴스

■빛공해방지법 제정됐지만, 여전한 고통

2013년부터 '빛공해방지법'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다. 빛 공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빛 방사 허용 기준이 마련되었다. 2016년부터는 환경정책기본법상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역시 환경오염 중 하나로 명시됐고, 그에 따라 피해가 발생한 경우 원인자가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부산시도 지난해 가로등, 간판 등 야외 인공조명은 생활환경과 조명의 종류에 따라 빛 밝기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했다. ▲공간조명(가로등, 보안등, 공원등) ▲옥외광고물에 설치되거나 비추는 조명 ▲장식조명(건축물, 교량, 숙박업소 등에 설치되어 있는 장식조명) 등이 대상이다.

하지만 법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빛 공해 관리, 단속은 민원 접수에만 기대고 있고, 해운대 마린시티의 경우처럼 민원이 들어와도 구청에서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각 구청에서는 아파트 경관조명과 광고간판 등으로 수면에 방해를 받거나, 눈부심을 호소하는 민원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옥외광고물이나 아파트 외부조명으로 빛 공해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옥외광고물, 경관조명에 대한 허가 또는 신고 기준을 강화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값싼 에너지 시대, 에너지를 펑펑 낭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가 지구촌의 핵심 이익으로 등장했다. 인공조명으로부터 발생하는 과도한 빛 공해로 인한 생활 불편과 불필요한 야간조명으로 값비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에 대한 자발적이고 정책적인 조절과 통제가 시급하다. 에너지 절감을 통해 에너지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다가올 재앙을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빛 공해란: 지나친 인공조명으로 인한 공해로 인공조명이 너무 밝거나 많아 야간에도 낮처럼 밝은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으로 생활·환경에 불편을 주는 공해다. 특히 교통 문제뿐 아니라 생체리듬을 교란시켜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 유방암 등 인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조류와 철새 등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정확한 측정과 인식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돼 왔다. 정부는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 시행령’을 공포하였으며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방지법’에 근거해 빛 공해 연구용역을 추진하는 등 빛 공해 민원을 줄이고 자연환경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