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할머니 ‘동심’ 담긴 동백·새·홍매화·초가집… 미술계도 ‘깜짝’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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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남편 여읜 뒤 그림에 몰입
자녀들에 의해 달력으로도 제작
내달 양산 노동자복지관 전시회

염갑순 할머니가 달력에 나온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이종국 씨 제공 염갑순 할머니가 달력에 나온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이종국 씨 제공

초등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한 아흔 살 할머니가 그림을 그린 지 4년 만에 미술계로부터 호평받는 화가가 돼 화제다.

3남 1녀를 둔 염갑순 할머니가 주인공. 양산시에 사는 염 할머니는 4년 전 치매에 걸린 남편을 여읜 후 우울증을 앓다가 의사와 아들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때 부친이 돌아가신 뒤 여자라는 이유와 큰아버지의 반대로 초등 6학년 때 학업을 포기했던 염 할머니는 어릴 때 곧잘 그렸던 그림 실력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어머니의 재능을 눈여겨본 자녀들은 “어머니 잘 그리신다”는 응원과 함께 스케치북과 색연필, 물감, 참고용 사진과 그림을 가져다 드리며 그림 공부를 응원했다. 그림 수십 점이 모이자, 자녀들이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의미 있는 선물을 드리자”고 뜻을 모았다. 어머니의 그림으로 채운 내년 달력 500장을 제작한 것이다.


57년 전 자녀들과 찍은 사진과 자녀들의 헌사가 적힌 2023년 달력 첫 장. 이종국 씨 제공 57년 전 자녀들과 찍은 사진과 자녀들의 헌사가 적힌 2023년 달력 첫 장. 이종국 씨 제공

달력은 1월 동백과 새, 3월 홍매화, 8월 해바라기 등 계절에 맞춘 꽃을 중심으로, 2월에 초가 고향 집을 함께 넣어 누구라도 친숙함을 느끼게 했다. 달력 첫 장에는 57년 전 찍은 가족사진과 자녀들이 ‘구십 평생 헌신하신 어머님께 바친다’는 헌사를 써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까지 주고 있다.

둘째 아들 이종국(60) 씨와의 친분으로 그림을 처음 접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의 부인 최성숙 동양화가는 “60대 자녀를 둔 할머니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며 염 할머니가 그린 그림 모두를 구입했다. 최 화가는 염 할머니의 그림을 문신미술관에 전시하는 한편 티셔츠·에코백 등 아트 상품을 만들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부인인 최성숙 화가를 만난 염 할머니. 이종국 씨 제공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부인인 최성숙 화가를 만난 염 할머니. 이종국 씨 제공

김성헌 평론가(부산미협 학술평론분과 회장)도 “할머니가 그린 목련꽃 3점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하는 조카에게 선물한 ‘꽃피는 아몬드나무’의 소박미와 그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 비교되고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염 할머니의 작품은 내달 1일부터 3일까지 3일간 양산시 노동자종합복지관 로비에서 전시된다. 할머니 작품 21점과 큰아들 이종락(전 양산문인협회장) 씨의 시와 수필 5점도 함께 전시된다.

염 할머니가 그린 ‘목련’. 이종국 씨 제공 염 할머니가 그린 ‘목련’. 이종국 씨 제공

염 할머니는 “늘 가는 한의원에 달력을 가져다줬더니 훌륭한 아들 꼭 와서 차 한잔하고 가라고 당부했다”며 “자식들이 어머니 공을 인정해주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머니”라고 빙그레 웃었다.

둘째 아들 이종국 씨는 “가족에게 헌신했던 모친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1년간 달력·전시회를 준비했다”며 “당신께서 생을 마감하실 때 가장 행복한 추억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태권 기자 ktg66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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