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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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사회부 차장

사별의 슬픔에 대한 책 ‘슬픔의 위안’에는 퇴근해 돌아온 집에서 돌연 아내가 죽어 있는 걸 발견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가 곧 이사를 갈 거라고 했지만 그가 집을 떠나리라는 예감은 한참 뒤에 찾아온다. 장례 뒤 첫 퇴근길 교차로에서 집 차로로 들어가는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때 보이는 부엌 창문 너머에 늘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아내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마주한 장면은 감당했지만 아내가 없는 창문을 보는 일은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20여 일. 158명의 젊은 생명이 꺼진 그 좁은 골목을 떠올리는 일은 모두에게 비슷한 고통을 안긴다. 지금도 온라인 공간에서 끝없이 재생되고 있는 참사 직전의 영상만큼이나 폴리스라인 너머 텅 빈 골목을 보는 일은 가슴 아팠다. 사진이 아니라 활기찬 인파로 붐비는 그 골목의 실물을 기억하고 또 걸어본 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날 그곳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무엇보다 그 골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이라면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 슬픔은 쉽게 사라질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황리에 끝난 지스타의 구름 같은 관람객을 볼 때 불쑥 찾아왔다가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에 가볼까 말까 망설이는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나타날 것이다. 부산불꽃축제의 인파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과거 어느 날로 거꾸로 거슬러갈 수도 있다. 유족이라면 그 양상은 더욱 구체적이다. 아들의 납골당에서 언론과 만난 한 유족은 발걸음 소리나 문 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이가 오는 것 같아 가슴이 무너진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한 과거와 영영 함께하지 못할 미래까지 모든 것이 무시로 유족을 무너뜨릴 수 있다.

국가적인 참사의 애도는 이 거대한 슬픔의 힘으로 과거를 성찰하고 같은 미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출발은 응당 희생자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유족의 개별적인 슬픔을 위로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참사 직후 선포된 국가애도기간과 이후 정부의 추모에서는 희생자의 얼굴도, 유족의 목소리도 찾기가 쉽지 않다.

참사 희생자 대신 사고 사망자라 명명된 정부와 지자체의 합동 분향소에는 희생자의 위패도 영정 사진도 없었다. 유족 동의를 얻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는 해명은 애도를 위한 애도가 더 조급했다는 고백과 같다. 대통령은 희생자 이름 하나 유족 한 명 없는 분향소와 추도식에서 여섯 차례 막연한 추모를 하고는 “막연히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 매체는 유족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비판을 받았지만, “‘알아서 살아라’는 식으로 내팽개쳐진 것 같다”는 인터뷰를 보면 유족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 유족은 유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같은 고통을 겪는 유족들이 만나 함께 추모하고 이야기할 공간이라고 답했다. 애초에 희생자 명단을 확보한 게 정부라면 정부가 유족들이 연결되는 것을 돕지 않을 이유는 없다. 국가애도기간이 끝났다고 국가의 애도가 끝나는 게 아니라면, 유족이 가장 바라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시간이 걸린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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