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노래도 못 부르게 하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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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특정 노래 배제 논란
과거 검열·금지곡 시대의 우울한 기억 되살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올해 10월 16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했다. 행정안전부 제공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올해 10월 16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했다. 행정안전부 제공

■부마민주항쟁과 ‘늑대가 나타났다’

지난달 16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은 부마항쟁의 정신과 성과를 기리기 위해 매년 행정안전부와 부마진상규명위원회가 주최하고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하 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다. 행안부가 이날 기념식에 출연 예정이던 가수 이랑의 노래를 제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랑은 재단의 요청으로 자신의 대표곡인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를 예정이었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 의지를 표현했는데, 지난해 8월 발표돼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노래다. 당초 재단은 올해 기념식에서 이 곡을 꼭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을 앞두고 행안부가 “무색무취한 기념식을 원한다”며 재단에 해당 노래를 뺄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행안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는 입장이라 재단은 이를 무시하지 못하고 이랑에게 다른 노래를 요청했지만 이랑이 거부하자 결국 다른 가수와 감독을 뽑아 행사를 진행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과거 군사정권의 대중음악 검열과 금지곡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금지곡, 그 우울한 기억을 되살리다

권력이 민중을 억압하며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한 노래는 동서고금에 으레 있었다. 우리의 경우 그 상처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것이 특히 아프게 남아 있다. 일제는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 정책을 활용했다. 한편으로는 저항과 독립 의지를 담은 노래를 금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강점을 정당화하는 장려곡을 강권했다.

특히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레코드 취체규칙’을 통해 발매되는 음반을 검열했다. 치안방해, 풍속괴란을 이유로 여러 음반들이 금지됐는데, ‘아리랑’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눈물젖은 두만강’ ‘꿈꾸는 백마강’ 등이 대표적인 금지곡이었다.

그 바통을 박정희 정권이 이어받았는데, 1970년대 유신체제로 들어서면서 검열이 유달리 강화되며 수많은 금지곡이 탄생했다. 1975년 ‘긴급조치 9호’와 함께 ‘공연활동 정화대책’이 발표되면서 그해에만 무려 220여 곡이 금지됐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이장희의 ‘그건 너’가 당시 최고 권력자를 향해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라고 비판했다고 해서 금지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금지곡들은 점차 해제됐고, 1996년 대중음악의 검열을 담당했던 공연윤리위원회와 심의제도가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받음으로써 금지곡은 역사 속으로만 사라진 줄로만 사람들은 알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5월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5월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다

하지만 금지곡 트라우마는 이후에도 우리 국민의 뇌리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민중가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이 좋은 사례다.

1997년 김영삼 정부는 ‘5월 18일’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로 공식 지정했다. 이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사정은 바뀌었다. 2009년 기념식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식순에서 아예 빼 버렸다. 박근혜 정부 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제창이 아닌 합창 형태로 불렸다. 제창은 참석자들이 다 같이 부르는 것이고, 합창은 합창단이 따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않거나 최소한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에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두 정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렇게 금기시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제창 형태로 불렸는데, 올해 5월 18일 윤석열 대통령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윤 대통령만이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제창에 동참했다. 세상이 확실히 바뀌었구나, 하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시 이랑으로…, “노래도 못 부르게 하나!”

그런데 ‘늑대가 나타났다’ 논란이, 그것도 부마항쟁기념식과 관련해 불거진 것이다. 행안부는 지난 22일 설명자료를 통해 “기념식 행사에 특정 곡을 검열한 사실이 없으며 총감독과 가수 교체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념식이 미래 세대와 부마항쟁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 달라는 의견을 재단에 전달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행안부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재단이 이랑에게 ‘늑대가 나타났다’ 대신 다른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감독과 가수를 교체한 사실은 엄연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재단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해 시쳇말로 알아서 기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역시 금지곡 시대의 음울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하겠다.

‘운율이 있는 언어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노래의 사전적 정의다. 노래에 사상과 감정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음이며, 특정 노래를 배척하는 건 그 노래에 녹아 있는 사상과 감정을 배척하는 것이다. 그 배척의 주체가 권력자 또는 정치체제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질문도 못하게 하나” “그림도 맘대로 못 그리게 하나”라며 항의하는 모습을 근래 자주 보게 된다. 거기에 “노래까지 못 부르게 하나”라는 외침까지 더해지게 됐다. 왜 그런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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