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국방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자주국방 인in人] 15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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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철마면 정밀조병탑 앞에 선 SNT모티브 기술 전사들. 왼쪽부터 고진욱 책임, 황철이 기성, 김민식 기성, 허성구 파트장, 하만중 책임. 부산 기장군 철마면 정밀조병탑 앞에 선 SNT모티브 기술 전사들. 왼쪽부터 고진욱 책임, 황철이 기성, 김민식 기성, 허성구 파트장, 하만중 책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이것이 자주국방이다. 국산 소화기의 메카 부산에는 도미기사의 후예들이 선배들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SNT모티브(주) 특수사업본부 전사들이다. 정밀가공 기술의 베테랑 기사 허성구 파트장, 총열 기술에서 대한민국 첫째로 손꼽히는 황철이 기성, 열처리 분야 최전선에 선 김민식 기성이다. 모두 3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판 도미기사의 후예들이다.

떠오르는 차세대 전사도 있다. 생산기술 파트에서 공정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하만중 책임과 총기개발팀에서 설계 업무를 맡은 고진욱 책임이다. 선배들이 이끌고 후배들이 뒤를 잇는다.

상상해본다. 승자총통에 자기 이름을 새긴 군기시 야장의 정신과 손기술이 최초의 국산 소총을 만들겠다는 국방부 도미기사단에 이어졌고, 그 직접적인 손기술이 SNT모티브 특수사업본부의 기사들에게 고스란이 전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도 이전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소화기를 생산하기 위해 현장에서 땀흘리는 전사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씩 불러본다.


허성구 파트장. 허성구 파트장.

총기 제작에 필요한 치공구 직접 만드는 허성구 파트장

캐나다에서 태어나 초기 중국에서 인간과 사회를 치료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사 닥터 노문 베쑨의 전기를 읽다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당시 외과 의료 기술은 지금처럼 로봇이 수술하던 시대와는 완전 딴판이어서 변변한 수술 도구가 없었다. 골절 수술을 받던 환자가 마취상태에서도 '수술 중 전기드릴 소리를 들었다'는 경험담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외과수술은 어쩌면 정밀한 기술과 훌륭한 공구가 갖춰줘야 하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다. 이것은 정밀 가공 기술의 첨단 작품인 소화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다.

"1983년 11월 1일 입사해 위총몸 담당으로 발령받았습니다." 회사 생활 39년이 지났는데 입사 일자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밀했다.

"2년 후 치공구 분야를 맡게 되었죠. 당시 부장 과장님들이 도미기사 선배님들이었습니다." 부산 동아공고 3학년 때 취업 실습을 나왔다가 직장 분위기가 맘에 들어 "눌러 앉았다"는 허 파트장은 사실 당시 직장의 가장 좋은 점은 병역특례였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일이 좋아 열심히 일했고, 덕분에 결혼하고 아파트도 사고, 딸 둘도 번듯하게 키웠다고 자랑했다.

정밀기술은 어쩌면 국산소화기 기술의 정화다. 치공구 작업은 특히 선반작업이 중요한데, 허 파트장은 30년 선반작업을 한 베테랑이었다. 총기 부품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치구나 정밀 게이지 등을 만드는데 물론 치구를 제대로 만들려면 총기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최초 국산 소총 K2를 개발할 때 생산 개발 업무를 담당했고요. 치공구 업무를 하면서 총열 브로치(총구 보링 작업용)를 우리 부서에서 제안하고 개선했죠.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허 파트장은 K15와 K16 치공구도 담당했다. 그 뿐만 아니다. 소화기에서 영역을 넓혀 자동차 부품 부문의 치공구 중 쇼바 너클 제작 등에 필요한 치공구도 만들었다.

'소화기 정밀기술은 우리나라 정밀기술의 근간이다'는 도미기사들의 말 딱 그대로였다.

"개발실에서 프로젝트를 의뢰했을 때, 시제품 가공하고 테스트하고 사격하고 잘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좋습니다." 허 파트장은 장비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이 중요하다. 지식이나 기술력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밀가공이 3D 업종으로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죠. 남은 직장생활 후배들을 키우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베테랑 기사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황철이 기성. 황철이 기성.

냉간단조 총열 제작 신기술 최고 장인 황철이 기성

총기의 핵심 부품은 어디일까. 가늠쇠 가늠자 방아틀 탄창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총열이 아닐까. 총열은 강선을 통해 총탄의 위력을 배가 시키고, 발사탄의 정확성을 높이는 핵심 부품이다. 황철이 기성은 총열의 강선을 냉간단조 방식으로 가공하는 신기술로 명품 총기를 시험하고 있다.

"대장간은 불로 쇠를 가열해 단조(두드림) 가공을 하죠. 물을 냉간단조하는데 4개의 자동 해머로 총열을 가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총열의 제작 방식은 원형 강철에 구멍을 뚫은 상태에서 버튼을 밀어넣어서 소성가공형태로 내부 강선을 제작했다. 그러나 황 기성은 강선틀을 내부에 집어넣은 후 해머를 두들기면서 냉간단조 형식으로 총열을 만든다. 총기 제조의 오랜 역사를 가진 오스트리아에서 관련 기구를 수입해왔다.

"요즘 소화기 제작 추세는 대량 생산보다는 정밀한 명품 총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냉간단조 제작 총열은 고품질이어서 직진도(정확성)이 뛰어나 고급 총기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습니다." 냉간단조 방식은 소성가공 방식보다 정확하다고 한다. 10개를 만들던 100개를 만들던 품질이 균열한 것이 강점이다.

황 기성은 기술 습득을 위해 오스트리아까지 직접 건너가 관련 기술을 습득했다. "입사한 지 38년입니다. 처음엔 주물 파트에서 일했는데 총열 파트를 맡은 지는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입사하기 전 직업훈련소에서 기계조립을 전공한 황 기성은 SNT모티브에 입사해 다양한 기술을 익힐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제가 파이널 공정 검사도 7~8년 한 노하우가 있어 신기술을 잘 습득한 것 같습니다. 실은 38년 직장 생활하면서 쌓인 경험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독보적인 신기술을 배운 황 기성은 "현장에서 늘 막내같은 기분으로 일하고 있다"며 "누구에게 특정한 유일 기술은 없다. 같이 배워서 기술을 공유해야 하니 정년 때까지 부지런히 후배를 가르치고 이 일을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한 직장에서 40년 가까이 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직 갈등이 없지 않았고요. 오래 다니면서 좋은 기술을 많이 배웠고, 좋은 직장이 되었습니다." 일에 귀천이 따로 없다는 황 기성은 “많이 배우고 많이 두드려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며 신형 소화기에 새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김민식 기성. 김민식 기성.

풀고 불리고 담금질해서 최고의 제품 만드는 김민식 기성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 최고의 소화기 부품을 생산하는 가장 큰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열처리다. 모든 금속 가공품이 그렇듯이 열처리는 금속 가공의 처음과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열처리가 잘못되면 총기 기능이 상실돼 버립니다. 열처리가 제대로 되어야 내마모성 내충격성이 뛰어나고 총기의 수명이 연장됩니다. 총기 사고도 열처리가 잘못돼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열처리 분야에서만 15년째 근무하는 김민석 기성은 열처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35년 6개월째 근무 중이라는 김 기성은 1987년 SNT모티브에 입사했다. 청주기계공고 졸업 후 잠시 다른 직장에 들어갔는데, 이곳에 입사한 친구들이 직장 좋다고 오라고 권해 생면부지의 부산으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왔단다.

“충청도 보은 촌놈이 부산에 와서 경상도 아가씨 만나 결혼하고 1남 1녀 두었습니다. 애들도 다 키웠고요. 이제 열처리 후계자만 제대로 키우면 됩니다.” 김 기성은 현장직의 최고봉인 '기성'이다. 허성구 파트장과 마찬가지로 입사 당시에는 위총몸 담당을 맡았다. 이후 치공구 파트, 공구 연마 등 총기 기술의 핵심 파트를 거쳤다. 내근직도 2년 6개월 정도 수행해 전체적인 공정을 보는 안목도 키웠다.

“저는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처음 배울 때 서툴러 선배님들께 혼도 많이 났죠. 잊지 않으려고 메모를 시작했는데 그게 습관이 돼 좋은 결과를 나았습니다.” 김 기성은 열처리 분야 이론을 잘 몰랐다고 했다. 밀링 전공이었기 때문이다. 열처리 이론을 익히려고 공정 특성을 기록하고, 참고철을 만들어 나만의 노하우를 얻었다. 그런데 그 기록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했다. 일종의 공정 매뉴얼이 된 것이다.

"참고철이 매뉴얼이 되었죠. 몇 분간 풀림, 불림 등을 기록해 최선의 결과값을 기록해 두었는데 이것이 표준이 된 것입니다." 김 기성은 주조품을 안정화 하는 풀림 공정, 단조품을 표준화 하는 불림 공정, 적정 온도로 가열하여 기름이나 물, 공기로 냉각하면서 높은 경도를 만드는 담금질 공정, 필요 강도를 조절하는 뜨임 공정, 가공 이후 기계적 응력을 제거하는 응력제거 공정 등을 제대로 기록했다.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총기 전 부품을 가공하는 김 기성은 “어찌 보면 힘든 일이라 지원자가 없어 현장의 마지막 기수처럼 여겨지는 게 안타깝지만, 지금도 후배를 키우고 제대로 가르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총기의 품질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강한 김 기성은 “비록 소수 인원이지만 총기 품질을 보장하는 역할이라 보람을 느낀다”며 "불을 가까이 하는 작업이라 힘들지만 명품 소화기를 만든다는 일념으로 뜨겁게 일하고 있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하만중 책임. 하만중 책임.

선배들의 기술을 뒤집어 성과를 낸 하만중 책임

2011년 1월 입사. 이제 갓 입사 11년차인 하만중 책임이 일찌감치 일을 냈다. 도미기사 시절부터 도입된 기술인 총열 절삭가공 방식을 단박에 소성가공 방식으로 바꿔 가공시간을 30배 이상 단축시킨 것.

생산 공정을 설계하고, 치공구 원천 설계를 담당하며 라인 공정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것이 그의 업무이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하 책임은 1년 정도 다른 회사를 다니다 SNT모티브에 입사했다. "첫 직장에서는 생산기술 파트에서 일했습니다. 1년 정도 다니다 보니 방산 쪽은 표준이 잘 갖춰져 있고 특히 40년 이상의 노하우가 축적된 회사라 정형화된 프로세스를 배우고 싶은 욕심이 강했습니다." 하 책임은 애초 자동차 부품 분야에 배치돼 있었는데 방산 파트를 자원했다고 했다. "입사 동기가 33명 이었는데 그 중에 3명이 방산에 자원했습니다."

사실 하 책임이 입사하던 당시 SNT모티브의 주력은 자동차 부품 파트였다. 하 책임 또래라면, 총보다는 자동차가 단연 인기였을 것. 그런데도 방산을 택한 동기가 궁금했다.

“총기와 인연이라고 해봐야 군대에서 K2 자동발사한 경험 정도죠. 쏴 보니까 꽤 잘나가더라고요. 잘 만든 총기라 생각했습니다.” 하 책임은 입사하자마자 K12 기관총 공정 설계에 투입됐다.

K12 기관총을 만들기 위해 부품을 하나하나 가공하는 순서를 정하고, 치공구를 설계하고,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최적의 프로세스를 찾는 일이 최고 품질의 총기를 만드는 작업임을 깨닫게 됐다.

역시 총열 가공이 까다로웠다. 당시 총열 가공 방식으로 5.56mm는 소성가공 방식을 했지만, 탄두가 큰 7.62mm는 절삭 가공을 했다. 원쇠를 가열해 버튼을 밀어넣는 소성가공 방식은 작업 속도가 빨랐지만, 7.62mm 총열은 절삭가공 방식이어서 소성가공보다 30배 정도 작업시간이 길었다. 하 책임은 과감하게 7.62mm 총열도 소성가공방식으로 전환했다. 도미기사 시절부터 아무런 고민없이 진행하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것이다. 작업 시간을 30배나 줄였으니 당연한 것은 포상. 하 책임은 회사로부터 푸짐한 제안상을 받았다.

“단조 총열 후공정 어떻게 간소화 시킬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손기술을 가공프로그램에 접목해 로봇이 일하게 하는 방식도 고민합니다. 모든 걸 기계가 대신할 수 없지만, 사람이 편해지는 기술을 만들 겁니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또 조만간 큰일을 낼 태세이다.


고진욱 책임 고진욱 책임

‘MZ세대가 만드는 총기는 이렇다’는 것을 보여준 고진욱 책임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직장을 구하다 보니 입사를 하게 됐고, 입사한 김에 파트를 정할 때 아버지가 군인이셨던 것이 영향을 살짝 미치기는 했죠. 총기가 익숙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방산에 지원했어요." 고진욱 책임은 총기개발팀에서 일한다. 2014년 공채로 입사했다. 기계공학 전공인 그는 입사하자마자 K15기관총 개발에 참여했다. 본인은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사실 K15기관총은 우리 회사 첫 체계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제안서부터 우리 기술로 방위사업청에 제안하고, SNT모티브만의 기술로 개발하고 납품하는 것이었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회사가 한 최초의 총기 개발 사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고 책임은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총기 분야 전 개발 과정을 습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총기 개발은 회사의 엔드아이템 파트라고 고 책임은 설명했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설정하고 다양한 성능을 개발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고 책임은 현재 개발하는 9mm 기관단총에 특별한 애착이 있다. 어찌 보면 본인 책임으로 진행한 첫 대형 프로젝트다.

“9mm 기관단총의 특징은 모듈화시스템입니다. 총열이나 견착 개머리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고 책임의 총열 모듈화 기술은 특허기술로 인정받았다. 어릴적 레고 좀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던가. 다시 군인 아버지에 관한 질문을 했다. 답은 의외였다.

“아버지께서 저더러 육사에 가라고 해서 정말 싫었어요. 군인이 싫었거든요.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겠어요. 계룡대로 할까요. 이사도 지긋지긋했고,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 일반 대학에 진학했죠.” 영향은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선한 영향력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가 선택한 직업에서 군인 아버지는 굵게 깊게 존재한 것이 분명했다.

고 책임이 자신이 개발한 9mm 기관단총을 들고 나타났다. 늠름했다. 그의 개발품은 기존 심플블로우백(총탄 발사 압을 이용해 다음 발사를 견인하는 것) 방식을 벗어나 지연블로우백 방식을 택했다. 지연블로우백 방식은 진동을 완화하고 정확도를 향상시켰다.

“다음 아이템은 새로운 구경의 총기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본으로 여겼던 구경이 아닌 다른 구경 총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레이저 총기도 한 방향이라고 봐야 합니다." MZ세대 총기 개발자의 상상력이 거침이 없다.

도미기사의 정신을 묻자 “잘 모르는데요”라고 쿨하게 답한다. 그가 애써 관계 짓기 저어했던 군인 아버지와 기술 전사 도미기사, 선배 기사들의 모습이 그에게 뚜렷하게 투영돼 있다는 것을 그도 곧 알게 될 것이다.


SNT모티브 기술 전사들. SNT모티브 기술 전사들.

요산 김정한 선생은 1973년 11월 29일 국방부 조병창 건립 기념 비문에 이렇게 새겼다. '국방은 한 나라의 존립을 보장하는 최대의 요건. 방비를 등한히 해 외적의 침략을 받았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말자. 여기 자주국방을 다짐하는 무기 생산의 터전을 마련했다. 우람한 가동 소리는 조국의 영원한 안전과 자유를 굳건히 보장하리라.' 선생의 말씀을 축약했지만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시원이 부산 기장군 철마면 전 국방부 조병창이다. 조병창은 (주)대우정밀로 민영화한 뒤 현재 SNT그룹(회장 최평규)의 SNT모티브로 발돋움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자주국방의 대의는 면면히 이어진다. 그 거룩한 여정에 묵묵히 복무한 이들을 발굴해 <부산일보>는 ‘자주국방 인in人 시리즈’를 지면과 온라인에 연재한다. 모든 영웅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를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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