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전직 대통령 검찰 포토라인 비극 재연될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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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초라했다. 대통령의 비극적인 운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끊이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들의 반복되는 불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검찰의 칼끝은 점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가 문재인 전 정권의 핵심인 서훈(구속기소) 전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으로까지 올라갔다. 현 정부가 ‘중대한 국가범죄’로 규정한 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이정근발 친문 게이트 등에 대한 사정 칼날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검찰의 사정 한파는 깊어 가는 겨울과 함께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까지 매섭게 몰아칠 것인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15일 서해 피격 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보고서 삭제 지시 의혹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는 묻지 않았다”며 “제가 받은 감으로는 (수사가) 문 전 대통령이 아니고 제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정원이 그를 첩보 보고서 삭제 지시 혐의로 고발한 지 5개월 만의 소환 조사였다.

하지만, 박 전 원장 검찰 조사 하루 전인 14일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 유족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검찰로서는 언제든지 서면 혹은 대면 조사 형태로 문 전 대통령을 소환할 수단을 갖게 된 셈이다.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가운데)이 1960년 5월 하와이 망명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에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가운데)이 1960년 5월 하와이 망명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에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하야, 시해, 검찰 수사, 구속…대통령 수난사

수많은 국민의 환호 아래 영광과 기대로 시작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은 화려한 출발과 달리 끝이 좋지 않았다. 대부분 재임 기간, 혹은 퇴임 후 본인 비리에서부터 측근·친인척 비리에 휘말렸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이승만(1~3대), 윤보선(제4대), 박정희(제5~9대), 최규하(제10대), 전두환(제11~12대), 노태우(제13대), 김영삼(제14대), 김대중(제15대), 노무현(제16대), 이명박(제17대), 박근혜(제18대), 문재인(제19대)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거쳤다.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은 4·19 혁명에 의해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라 결국 사후에 유해로 돌아왔다. 경제개발에 성공한 박정희는 심복에게 피살되는 비운을 맞았다. 전두환, 노태우는 5·18 광주 민주항쟁을 유혈로 진압한 뒤 집권했으나, 퇴임 이후 수감됐다. 민주화 시대를 연 김영삼, 김대중도 재임 시절 아들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치 개혁과 높은 도덕성이 강점이었던 노무현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서거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명박, 박근혜는 임기 직후 수감됐다.


1973년 제28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손을 흔들며 시민들에게 답례하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 연합뉴스 1973년 제28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손을 흔들며 시민들에게 답례하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 연합뉴스

■대통령의 비극, 반복되는 이유는

정권이 바뀌면 흔히 전 정권의 정책을 지우려는 경향은 어느 국가에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검찰 등 수사권을 동원하는 사법적인 처리가 주를 이루는 선진국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의 리더십과 도덕적, 정치적 자질 부족이라는 개인적인 자질론도 첫 번째 이유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 구조 때문이라는 평가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치 구도와 정치 문화로 이를 바라봐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 세력이 정권 장악과 유지를 위해 상대방의 실패를 조장하고, 극한의 대치를 펼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주요한 원인이라는 뜻이다. 대통령 입장에서 야당 등 반대 세력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정권을 전복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면서, 검찰을 통한 정치적 반격을 시도하는 행태가 반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상대방을 ‘정권 전복 세력’으로 인식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이명박과 노무현 관계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일어난 미국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촛불 시위를 청와대 뒷산에서 보고 나서는 ‘항의나 비판을 위한 시위가 아니라, 정권 퇴진이나 전복의 기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결국 정권이 수세에 몰리면서 ‘화해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인식을 갖고 사정 권력으로 반격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론이다.

역대 정권이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상대방의 존재를 동반자나 경쟁자로 여기기보다는 소탕해야 하는 '적'으로 인식하는 경향과 문화가 고착되고 있다. 이는 진보와 보수 정권 모두 해당된다. 같은 당, 같은 이념 성향의 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8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8년 8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안타깝고 부끄러운 일

한국 헌정 역사상 거의 매번 역대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다가가는 비극적 장면을 보는 대다수 국민의 마음은 좋을 수가 없다. 반대편 지지자들에게는 행여나 복수감에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국가와 국민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라 해도 범죄 혐의가 있거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수사를 받아야 하고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비극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의 통치를 받은 한국인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법 앞에서는 전직 대통령도 평등해야 한다. 2018년 이명박 구속 수사를 앞둔 상황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불구속 수사를 한다면 대한민국 정의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2월 7일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의미의 통치행위라는 건 민주국가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통령의 성역과 치외법권은 없어졌다는 시대적 상황을 여야 정치권과 법조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7월 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7월 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이 생기게 될 그날…”

역대 대통령의 수난과 관련해 통합과 포용의 정치 문화가 가장 아쉽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신은 무조건 옳고 상대는 항상 틀렸다는 편향적 태도로는 협상과 통합의 정치가 불가능하다. 대화와 절충, 존중과 배려의 정치 문화가 꼭 필요하다. 적개심과 분노, 보복에 휩쓸린 역대 대통령의 비극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사회 성숙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혹은 정치 구조와 문화의 탓이라고 하더라도, 매번 일어나는 비극을 방치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노력, 논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역사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대통령의 비극, 한국 정치의 불행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4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대통령 양산 사저 앞 공터에서 '자유대한수호연합 부울경본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귀향 반대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대통령 양산 사저 앞 공터에서 '자유대한수호연합 부울경본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귀향 반대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학자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밝혔다. 과거 정권의 적폐 청산에 이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 등의 잘잘못을 떠나,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민과 정치권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어두웠던 과거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포용과 통합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정치권 한 원로는 “바라건대, 우리에게도 다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이 생기게 될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 70년을 넘었지만, 행복한 대통령, 존경 받는 대통령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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