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고리 원전이 무인기 공격을 받는다면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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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공격 헬기·전투기 띄우고도 격추 실패
원전 공항 항만 등 일상 속 위협 등장
핵폐기물 임시저장소 등 취약지 대책 필요



북한 무인기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침범해 군이 대응에 나섰다. 사진은 2017년 6월 21일 강원도 인제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가 국방부 브리핑룸에 전시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 무인기가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침범해 군이 대응에 나섰다. 사진은 2017년 6월 21일 강원도 인제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가 국방부 브리핑룸에 전시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대선과 새 정부 출범의 기대로 시작한 한 해였지만 여야 간 정쟁으로 국민의 시름은 더 깊어졌고 경제난의 고통에 이태원 참사의 아픔마저 겪어야 했다. 연말 날아든 북한의 무인기는 남북 관계 긴장 속 전쟁 위협이 상존하는 한반도 상황을 환기시켰다. 북의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의 여객기 운항이 중단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면서 전쟁이 일상 속으로 다가왔다. 한반도 전역이 무인기 작전 범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방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특히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원전, 공항, 항만 등 국가 주요 시설의 무인기 공격 대응이 발등의 불이다. 세계적 원전 밀집 지역인 부산, 울산, 경남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북한 무인기에 농락당한 군, 불안한 국민

북한의 무인기는 진화하고 있지만 우리 군의 대응은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다. 우리 군은 5년 전에는 무인기 도발을 탐지·식별조차 못한 채 추락한 동체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탐지한 후 추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파치·코브라 공격 헬기와 전투기까지 출격시켰지만 격추하지 못했다. KA-1 경공격기는 무인기 대응을 위해 이륙 중 추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까지 냈다. 우리 군이 적 무인기 대응 전략 자산으로 자랑하던 ‘비호복합’ 등 대공화기는 쏘아 보지도 못했다. 대공화기는 자체 영상이나 레이더에 적 공격기가 식별되지 않으면 정확한 사격을 할 수 없는데 레이더 포착을 못한 것이다. 국방홍보원의 ‘드론? 무인항공기? 지상전? 다 드루와바! 비호복합이 다 막아 줄게!’라는 홍보 영상은 누리꾼들에게 희화화 대상이 되며 비공개로 전환됐다. 누리꾼들은 “보여 주기 하나는 전 세계 탑인 K국방” “북한이 이 영상 보고 테스트로 드론 날린 듯하다”는 등의 댓글로 우리 군의 대응 실패를 꼬집었다. 방위사업청은 북한 무인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한국형 재머(Jammer)’ 개발사업을 시작했지만 2026년에나 완료된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북한 무인기가 생화학무기까지 운반할 수 있어 한국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내놓았다. 군은 북 무인기 침공 이틀째 새떼 공격에 놀라 출격하기도 하고 시민들은 한밤중 전투기 출격 소리에 놀라 잠을 설치는 등 불안해하고 있다.


미국이 2020년 이란 군부 실세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제거 작전에 동원한 것으로 알려진 MQ-9 리퍼 드론 모습. 미 공군 홈페이지 캡처 미국이 2020년 이란 군부 실세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제거 작전에 동원한 것으로 알려진 MQ-9 리퍼 드론 모습. 미 공군 홈페이지 캡처

∎진화하는 무인기, 전쟁의 게임 체인저

무인기 역사는 꽤 오래다. 무인기(無人機‧unmanned aerial vehicle)는 사람이 타지 않고 원격조종 혹은 자동으로 운용할 수 있는 항공기 일체를 지칭한다. 무인기를 드론이라 부른 계기는 명확하지 않다. 영국에서 1935년 훈련용 ‘타이거 모스(Tiger moth)’를 원격조종 무인 비행기로 개조하면서 여왕벌(Queen Bee)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영국 여왕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수벌을 뜻하는 드론으로 이름을 바꿔 부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초기 미사일 표적 연습용 정도로 사용되던 무인기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현대전에서 전쟁의 게임 체인저로 등장하고 있다. 2020년 1월 미국의 공격용 드론 MQ-9 리퍼가 이라크 미군 기지에서 이륙해 상공을 날아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사살했다. 솔레이마니 동선 정보가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 본토에 있는 드론 작전통제부에 실시간 전달돼 이를 토대로 드론 조종사들이 원격조종하며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드론 전쟁의 서막으로 받아들여지며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드론 전쟁이라 할 정도로 무인기의 역할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주력 드론인 튀르키예산 바이락타르 TB-2는 러시아 탱크를 무력화시키며 전세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TB-2의 활약으로 방위산업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튀르키예가 방산 강국으로 부상했다. 러시아도 자국 드론을 동원하고 있는 가운데 공격용 드론을 방어하기 위한 안티 드론 경쟁도 치열하다.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부산일보DB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부산일보DB

∎원전 등 일상의 위협이 된 무인기 공격

무인기의 확산은 원전, 공항 등 우리의 일상 속 위협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2019년 1급 국가보안시설인 고리 원전 인근 상공을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이틀 연속 비행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 당초 경찰과 군이 출동해 비행체 조종사를 추적했지만 출몰한 드론이 군사용인지 일반 동호인 활동인지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하면서 드론 공격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에서도 원전의 허술한 드론 방호 체계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수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2021년 탐지-RF 스캐너와 휴대용 전파 교란기 ‘재밍건’을 도입했다. 또 올해 6월에는 원전에서 드론 대응 장비 실습 훈련을 실시했고 7월에는 원자력통제기술원 고리본부 드론 대응 장비 특별점검도 벌였다. 8월에 실시된 ‘을지 자유의 방패’ 한미 연합훈련에서도 원전 테러와 드론 공격 대응 훈련이 실시됐다. 그러나 이번 북 무인기 침범에서 보듯 실제 상황에서 원전의 방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 무인기 개발 현황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대전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 무인기 개발 현황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드론 전쟁 시대 대응책 시급하다

북한은 현재 소형 폭탄을 장착해 투하할 정도의 드론을 운영하고 있지만 미사일 발사 등을 할 수 있는 이른바 ‘킬러 드론’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달 초 평안북도의 한 공군기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중국제 킬러 드론과 비슷한 신형 무인기가 포착됐다. 미 국방전문 매체 디펜스도 북한 방현 공군기지에서 중국산 무인기와 유사한 신형 무인기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당 8차 대회에서 중고도 무인기 개발에 주력하기로 선포한 상황이어서 북한판 킬러 드론 등장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우리 군의 대응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방부는 레이저 대공 무기 등 북 무인기 대응 전력 확보와 연구에 내년부터 5년간 5600억 원을 투입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한 드론 부대 창설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날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속도감 있게 대응할 수 있느냐다. 원전과 공항 등 시민 생활과 밀접한 국가 주요 시설 방어 대책도 과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의 자포리카 원전에 대한 드론 공격 위협이 이슈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의 경우 두터운 콘크리트 벽으로 된 격납 건물의 안전성은 신뢰할 만하다고 본다. 다만 기타 시설들이 드론 공격을 받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취약할 수 있는 시설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를 꼽았다. 정부가 고리 등 원전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마당에 철저한 대책이 필요하다.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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