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방음터널’ 부산서도 화재위험 안고 지난다
제2경인 화재로 부산 전수조사
동서·번영로 등 6곳 열에 약해
가야 등 3곳은 소화기조차 없어
시 “설비보강 등 안전조치 계획”
지난달 29일 46명의 사상자를 낸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에서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는 ‘열 가소성 플라스틱’을 사용한 방음터널이 부산에도 6곳이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중 3곳은 현행 지침상 필수인 소화설비도 마련돼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일 부산시와 한국도로공사 등에 따르면, 부산지역 방음터널은 총 6개 도로에 위치해 있다. 이 중 4면이 닫힌 밀폐형 구조의 방음터널은 영도고가교, 화명고가교, 동서고가도로, 가야고가교, 부산울산고속도로 등 5곳이다. 번영로 대연2교 방음터널은 밀폐형은 아니지만, 화재 시 반대쪽 차선으로 대피할 수 없는 구조다.
영도고가교에는 밀폐형 방음터널이 여러 구간에 걸쳐 총 1.63km 길이로 설치돼 있고, 동서고가도로 560m, 가야고가교 490m, 부산울산고속도로 363m, 화명고가교 330m, 번영로 대연2교 150m 등이다. 이들 터널에도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의 확대 원인 중 하나로 꼽힌 열 가소성 플라스틱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화재가 난 방음터널에는 인화점이 300도 미만으로 낮아 열에 쉽게 변형되는 흔히 ‘아크릴’로 불리는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이 쓰였다. 부산지역 방음터널 지붕에는 아크릴보다 인화점이 높지만 같은 열 가소성 플라스틱으로 분류되는 폴리카보네이트(PC)가 쓰였다.
화재 현장에서 일명 ‘불똥 비’를 만들었던 아크릴 지붕은 아니지만, 폴리카보네이트 또한 열 가소성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가열되면 모양이 변형될 수 있다. 또 방음터널의 지붕이 아닌 외벽의 일부 구간에서는 폴리메타크릴산메틸도 쓰였다.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이 2018년 발간한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 수립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아크릴은 인화점이 300도 전후로 낮고 녹아서 바닥으로 떨어진 뒤에도 계속해서 타는 성질이 있어 방음터널에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됐다. 폴리카보네이트의 경우 인화점이 약 450도로 비교적 높고 자소성이 있어 비교적 적합한 재료로 간주된다. 다만, 열에 의해 재료가 용융되면 아래로 낙하할 수 있다.
부산지역 일부 방음터널에는 관련 지침상 필수인 소화기구도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시는 동서고가도로와 가야고가교, 번영로 대연2교 방음터널에는 소화기구가 설치돼있지 않다고 밝혔다.
방음터널에 대한 방재 기준을 규정한 국토부 지침에 따르면, 소화기구 설치를 모든 터널에 대해 의무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대부분 방음터널의 구간 길이가 500m 미만이라 가장 낮은 등급인 4등급이 적용된다. 4등급 터널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화설비, 경보설비, 피난대피설비를 기본시설에서 면제하고 있지만, 소화기구 만큼은 유일한 기본시설로 포함돼 있다. 이에 4등급 터널에는 수동식 소화기 등 소화기구를 50m 간격으로 설치해야 한다. 특히 부산에서 이미 방음터널 내 화재가 몇 차례 발생했는데도 부족한 소화설비가 갖춰지지 않아 안전불감증이라는 지적도 인다. 동서고가도로 방음터널에서는 2022년 8월과 2020년 5월 달리던 차량에서 불이 났다. 다행히 당시 화재가 인명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또 번영로 대연2교의 경우 비교적 최근인 2022년 준공한 방음터널인데도 소화기구가 누락됐다.
부산시는 대부분 방음터널이 관련 지침 정비 전 설치되면서 일부 구간에 소방설비가 보강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번영로 대연2교 방음터널은 민간에서 지어 기부채납한 구조물이라며, 향후 이곳에 소화기 2대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시 관계자는 “동서고가도로, 가야고가교에 대해서는 별도 위험도 평가를 실시한 뒤, 관련 지침상 추가 보강방안은 없는지 등을 알아보고 설비를 확충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