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락 맛홀릭] <1> 통영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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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 /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경남 통영 섬마을의 햇살과 해풍, 자연의 힘으로 만든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의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경남 통영 섬마을의 햇살과 해풍, 자연의 힘으로 만든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의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울경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며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이 대표는 “지역의 제철 식재료와 술의 조합이 주는 만족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산·경남권 양조장을 조명하는 시도는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시 미륵산자락에 위치한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과 '야소주반' 식당. 경남 통영시 미륵산자락에 위치한 '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과 '야소주반' 식당.

설계부터 준공까지, 건물을 짓는 마음으로 빚은 전통주가 있다. 재료는 쌀과 물, 누룩이 전부다. 비움의 건축 철학을 온전히 담아낸 술. 그 고집스러운 맛을 찾아 경남 통영으로 향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건막’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자락의 마을. 막다른 샛길의 끝에 햇살을 잔뜩 머금은 붉은 기와의 전원주택이 나타난다. 박준우·김은하 부부가 양조장과 식당을 운영하며 어린 딸과 함께 생활하는 보금자리이다.

박준우 대표(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가 섬마을에서 쏟아지는 햇살과 바닷바람을 담아 만들었다는 막걸리는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건막). 글자 그대로 건축가인 박 대표가 ‘혼자’ ‘손으로’ 빚은 술이다.

2021년 가을 세상에 나온 이 막걸리의 탄생 배경도 남다르다. 사드 사태를 겪으며 박 대표의 중국 현지 건축 프로젝트에 지장이 생겼고, 물질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전통주의 세계와 만났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교육 과정을 마친 아내가 막걸리를 빚어 줘서 마셨는데, 다음 날 머리가 하나도 안 아픈 거예요. 또 빚어 달라고 했는데 안 주길래 직접 만들기로 했죠.”

마침 집에 은행대출 사은품으로 받은 찹쌀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대로 술빚기에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7년간 찹쌀과 멥쌀, 물의 비율을 달리하며 독학으로 술빚기에 도전하길 130여 차례. 박 대표는 매번 그 공식을 엑셀파일로 정리했고, 마침내 32번째 레시피에서 최적의 비율을 찾아냈다.

사계절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온도·습도를 조합한 ‘저온숙성법’, 12일간 발효조에서 1차 발효를 한 뒤 냉장고에서 열흘 동안 2차 숙성시키는 ‘혐기성 발효’ 등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비법이다.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뚜껑을 살짝 열면 천연탄산이 올라오면서 침전물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 뚜껑을 살짝 열면 천연탄산이 올라오면서 침전물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박준우 건축가의 비움 철학 온전히 담은 술

7년간 130여 차례 도전, 최적 비율 찾아내

첨가제 없이 쌀·물·누룩만 사용 손수 빚어


■빛깔은 막걸리, 맛은 스파클링 와인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발효 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천연탄산’이다. 병뚜껑을 살짝 열면 미세한 입자의 탄산이 바닥부터 올라오며 침전물과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빛깔만 막걸리일 뿐, 눈을 감고 마시니 스파클링 와인 같은 풍미가 느껴진다.

해산물과 ‘마리아주’(궁합)를 이루는 화이트 와인처럼, 건막도 해산물과 제격이다. 특히 박 대표의 아내 김은하 대표가 운영하는 식당 ‘야소주반’의 모든 메뉴는 건막을 위한 요리라 할 만하다. 식당은 당일 새벽 싱싱한 재료를 사서 당일 소진하기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된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에도 김 대표는 당일 새벽시장에서 공수해 온 ‘개체굴’을 내놓았다. 핑거라임을 얹어 한입에 넣자 우리나라 굴의 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연이어 유리잔에 따른 건막을 한 모금 마시니, 마법처럼 굴향이 배가된다. 천연탄산이 터지면서 향을 한층 돋우는 것이다. 유리잔은 탄산감을 살려 줘 날음식, 도자기잔은 탄산을 잡아 줘 익힌 음식에 적합하다고 한다.

“와인동호회에서 자주 찾아와 즐기다 가시곤 해요. 와인을 싸 들고 온 사람들이 저희 술만 먹다가 돌아가기도 하죠.” 김 대표의 설명에 왜 건막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소개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술 애호가들의 입소문에다 겨울철이 되면서 건막의 몸값은 더욱 높아졌다. 공급이 부족해 최근엔 식당에서 팔아야 할 술이 동나버렸다.

주문은 밀려들지만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는 한 번에 80병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박 대표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손으로 직접 빚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조금씩 늘렸지만, 한 달 최적의 목표를 618병으로 잡았다. 박 대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이면서, 건축설계 때 적용하는 황금비율(1 대 1.618)이기도 하다. “대량생산을 하려면 공정을 자동화해야 하고, 그러면 사람 손을 떠나게 돼요. 이 술에는 제 손에서 시작하는 정성, 저만의 가치가 담겨 있어요.”

'야소주반' 김은하 대표가 당일 새벽시장에서 공수해 온 통영 '개체굴'. '야소주반' 김은하 대표가 당일 새벽시장에서 공수해 온 통영 '개체굴'.

■한 병 한 병에 담긴 느림·비움의 철학

박 대표는 양조장이 둥지를 튼 야솟골의 자연을 최대한 활용해 ‘느리게’ 술을 빚는다. 전날 오후 8시에 두 시간 동안 쌀을 씻은 뒤 불리고, 다음날 새벽 5시부터 마당에 누룩을 널어 해풍을 맞힌다. 고두밥을 쪄서 자연 바람에 잘 말린 뒤, 오후가 돼서야 물에 재운 누룩과 고두밥을 골고루 섞는 치대기 작업에 비로소 돌입한다. 물은 제조용과 청소용을 철저히 구분해 술 제조에는 청정 지하수만 사용한다. 인근 고성군의 유기농 쌀 등 모든 재료는 유기농만 고집한다.

늦둥이 딸도 힘을 보탠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고두밥을 먹여 봐요. ‘아빠 더 주세요!’라고 하면 이번 술은 성공이죠. 아이들은 절대 미각을 지녔거든요.”

건막 양조의 전 과정엔 박 대표가 건축가로서 강조해 온 ‘공(空)의 개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쌀과 물, 누룩을 제외한 어떤 첨가제나 탄산도 인공적으로 넣지 않는다.

투명한 병과 라벨도 인상적이다. 막걸리의 빛깔과 천연탄산 알갱이를 온전히 볼 수 있다. 화려한 디자인의 여느 전통주와 달리 겉멋을 빼고 속을 그대로 드러내보인다는 점에서 이 또한 ‘공(空)’이다.

술맛을 향한 집념으로 박 대표는 올해부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서울의 한 보틀숍에서 저희 술을 맛봤는데 전혀 다른 맛이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영상 3도에서 보관할 때 제일 안정적인데 배송 과정에서 술이 변해버린 거죠.”

이에 온전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천연탄산 막걸리는 ‘야소주반’에서만 판매하고, 외부에는 탄산 없는 막걸리만 공급할 계획이다. 두 번 빚은(이양주) ‘약주’도 선보일 예정이다. 조만간 지역특산주 면허를 갖추면, 그동안 전국 20여 개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만날 수 있던 건막을 온라인에서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박준우 대표(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가 아침부터 누룩을 널어 해풍을 맞히고 있다. 박준우 대표(거북이와 두루미 양조장)가 아침부터 누룩을 널어 해풍을 맞히고 있다.
박 대표가 손수 빚은 막걸리가 발효실 내 발효조에서 익어가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톡 톡 톡' 탄산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박 대표가 손수 빚은 막걸리가 발효실 내 발효조에서 익어가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톡 톡 톡' 탄산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천연탄산 터지며 스파클링 와인 같은 풍미

부인 김은하 씨 운영 ‘야소주반’ 음식과 궁합

한 달 618병 생산…통영 굴 등 해산물에 제격


■싱싱한 해산물과 ‘통영 굴’ 맛보려면

겨울은 건막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건막에 어울리는 대표음식인 굴이 제철이기 때문이다. 통영은 우리나라 대표 굴 산지이지만 굴 요리 전문점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중 중앙전통시장 인근 ‘한마음식당’은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여러 방송에서도 소개됐다. 특히 굴·대패삼겹·김치를 불판에 구워 쌈 싸 먹는 ‘굴삼합’이 대표 메뉴다. 메뉴를 개발한 장수형 대표는 “삼겹살 기름이 굴에 스며들어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을 더한다”며 “김치가 기름기를 잡아 주면서 삼합이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굴탕수육은 세 단계에 걸쳐 튀김가루, 계란물, 빵가루를 입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자랑한다. 수제 소스를 결들이면 어린이도 좋아할 만한 맛이다. 옛 통영 어머님들의 레시피를 따라 살짝 데친 굴로 부친 굴전은 물기가 적어 비린맛이 없다. 이밖에도 굴무침, 굴찜, 생굴 등 굴 요리 종합세트를 맛볼 수 있다.

현지인들은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려는 이들에게 서호시장과 통영중앙전통시장을 추천한다. 서호시장은 새벽시간대 경매부터 시작하는데, 노점상은 오전 10시쯤 파하고 이후 중앙전통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중앙전통시장은 서호시장보다 좀 더 늦게, 저녁시간대까지 문을 연다.

통영중앙전통시장 인근 '한마음식당' 대표 메뉴인 '굴삼합'. 이외에도 굴탕수육, 굴전, 굴찜 등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통영중앙전통시장 인근 '한마음식당' 대표 메뉴인 '굴삼합'. 이외에도 굴탕수육, 굴전, 굴찜 등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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