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스위치’, 겪어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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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위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스위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2022년 마지막 주 화요일, 덜컥 코로나19에 확진됐습니다. 친동생에게 옮은 게 확실한데, 동생의 감염원은 알 수가 없습니다. 부랴부랴 연말 약속을 취소하고 휴가를 냈습니다.

이튿날 코로나19 통계를 보니 저와 같은 날 부산서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6000명도 넘습니다.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여전히 수천 명의 신규 확진자가 매일 추가되고 있습니다. 연말연시 계획이 어그러졌을 분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격리기간에도 세상은 쉴 새 없이 움직였습니다. 벌써 새해 첫 한국영화 개봉작이 스크린에 걸렸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스위치’를 만나봤습니다. 극장을 찾았다가 문득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생각했던 사연도 공유해보려 합니다.


훈훈해지는 코믹 가족영화 ‘스위치’…과하지 않은 담백함 강점

지난 4일 개봉한 ‘스위치’는 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톱스타 박강(권상우 분)과 그의 매니저 조윤(오정세 분)이 크리스마스에 서로 인생이 뒤바뀌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흔한 코믹 영화 시나리오처럼 보이지만, 웃음과 감동이 적절히 공존하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선을 넘는 불쾌한 유머코드 없이 웃기고, 뻔하고 억지스러운 신파 없이 감동을 줍니다.

주인공인 박강은 겉보기엔 ‘싸가지’ 없는 톱스타지만, 속으로는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며 잠도 편히 못 자는 인물입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첫사랑 수현(이민정 분)을 아직 잊지 못해서인지 진정한 사랑에도 실패합니다.

두 아이의 아빠인 조윤은 무명배우를 벗어나지 못해 박강의 매니저로 일합니다. 젊은 시절 연극판에서 동고동락했던 절친한 사이인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도 함께 술잔을 기울입니다.

이내 만취한 박강은 조금은 특별한 택시에 올라탔다가 하루아침에 조윤과 인생이 뒤바뀌게 됩니다. 눈을 떠보니 인기스타 박강은 사라졌고, 첫사랑 수현과 결혼한 쌍둥이 아빠이자 생계에 쪼들리는 재연배우 박강이 됐습니다. 그는 처음엔 현실을 부정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조윤은 톱스타가 됐지만, 짝사랑만 반복하는 외로운 생활을 이어갑니다.


영화 ‘스위치’ 포스터 영화 ‘스위치’ 포스터

영화는 잔뼈 굵은 배우들의 호연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 요소로 어색함이나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권상우는 극 중에서 인생이 바뀐 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일명 ‘소라게 짤’을 재연해 웃음을 자아냅니다. 오정세의 능청스러운 연기 역시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11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이민정의 부부 연기도 눈길을 끕니다. 이민정 스스로도 앞서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권상우와) 연기 호흡이 잘 맞더라”고 밝혔습니다.

권상우와 이민정의 쌍둥이 자녀로 등장하는 아역배우 박소이, 김준의 연기는 인상적입니다. 익살스럽고 자연스러워 재미와 몰입감을 더합니다.

‘스위치’는 감동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짜내는 연출 없이도 가족과 사랑의 중요성이라는 메시지를 은은하게 전달합니다. 권상우가 “시사회 때 눈물을 흘리며 봤다”더니, 실제로 영화관 곳곳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실관람객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개봉 후 CGV ‘골든에그’서 94%의 만족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체로 “가볍게 보기 좋은 코믹영화”라는 평가입니다. 다만 “크게 재밌는 부분은 없었다”거나 “미국 영화 ’패밀리맨’(2000)과 다를 게 없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일부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실제 흥행 성적표는 나쁘지 않습니다. 개봉 사흘째인 6일 오후 3시 현재 ‘스위치’의 누적 관객 수는 8만 9410명을 기록했습니다.


휠체어 탄 관객은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영화 관람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영화관 한 가운데나 약간 뒷줄의 ‘명당’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고개를 들고 있어야 하는 앞쪽 좌석은 대부분이 ‘불호’하는 좌석입니다.

기자가 이번에 ‘스위치’를 본 시간은 평일 낮이었던 덕에 자리에 여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극장에 들어서니 유일하게 앞쪽에 자리를 잡은 관객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화관 의자 대신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었습니다. 앞에서 세 번째 줄 제일 좌측인 그곳은 해당 상영관의 ‘장애인 전용석’이었습니다. 이 상영관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평소 자주 가는 부산의 상영관들을 살펴보니 장애인 전용석은 대부분 ‘맨 앞줄’ 입니다. 물론 전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상영관에서 나가려는데, 휠체어를 탄 관객이 출구를 마주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직원의 실수였는지, 나가는 문이 열려 있지 않았던 겁니다. 문을 열어드리니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그제야 갈 길을 갑니다.

회사로 돌아가면서 지난해 가을 다른 영화관에서 봤던 지체장애인이 떠올랐습니다. 휠체어를 탄 그는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아해하며 버튼을 누른 뒤 고개를 돌린 순간, 그가 왜소증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버튼이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누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엘리베이터 내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하 1층 정도는 간신히 누를 수 있었지만, 고층 버튼은 도저히 혼자 누를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 보니 왜소증이 아니더라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는 누를 수 없겠습니다. 지체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은 아니겠구나,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통행에 큰 불편을 느낍니다. 2020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한 달간 거의 매일 외출했다’는 장애인은 45.4%로, 2017년(70.1%)과 비교해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 ‘전혀 외출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던 장애인은 8.8%로 2017년(4.5%)에 비해 2배 가량 늘었고, 주 1~3회 외출(32.9%)과 월 1~3회(12.9%) 외출에 그친 장애인도 증가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외출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장애로 인한 불편함’이었습니다. 교통수단 이용 시 장애인의 39.8%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통수단 이용이 어려운 이유는 ‘버스·택시가 불편해서’(52.6%), ‘장애인 콜택시 등 전용교통수단 부족’(17.4%), ‘지하철 편의시설 부족’(12.1%)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병·의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들(32.4%)도 ‘의료기관까지의 이동 불편’을 그 이유로 꼽았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는 가운데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2022년 전국을 들썩이게 한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와 전장연이 서로 소송전을 벌이는 데 이르자 법원은 지난달 19일 강제조정안을 내놨습니다. 공사는 2024년까지 19개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운행 시위를 중단하라는 내용입니다. 전장연이 지하철 승하차 시위로 지하철 운행을 5분 넘게 지연시키면 1회당 500만 원을 공사에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전장연은 “재판부가 조정한 지하철 탑승을 기꺼이 5분 이내로 하겠다”며 조정안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하철 시위는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권리 예산이 ‘쥐꼬리’만큼 증액됐다는 이유입니다.

전장연은 2023년도 장애인 권리 예산을 전년보다 1조 3044억 원 늘릴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일각에서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여야 합의안과 비교해보면 실제 증액된 예산이야말로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앞서 여야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전장연 요구의 절반 수준인 약 6650억 원의 장애인 권리 예산을 증액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여야 의원들도 ‘이 정도 예산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셈입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반대로 국회 본회의에서 실제 증액된 예산은 106억 원에 그쳤습니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온갖 비난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이어가는 것은, 그들이 지난 세월 동안 ‘예산 없이 복지도 없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갈등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2일 전장연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법원 조정안대로 5분 이내로 지하철을 타는 선전전을 진행하겠다”며 열차 탑승을 시도했지만 공사 직원들에게 저지당했습니다. 같은 날 공사는 “불법시위로 인한 이용객 불편, 공사가 입은 피해 등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심사숙고한 끝에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정했다”고 밝히며 “조정안을 수용한다면 (전장연이) 이용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시위를 계속 이어갈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사는 이날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는 안전 안내 문자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공사의 태도는 더 강경해졌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전장연이 탑승 시위를 시도했으나, 공사 직원들은 경찰과 함께 활동가들을 막아세웠습니다. 공사가 전장연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근거는 철도안전법이었습니다. 이날 삼각지역장은 마이크를 잡고 수십 차례에 걸쳐 “역 시설 등에서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광고물 배포 행위, 연설 행위 등은 철도안전법에 금지돼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날 오후 삼각지역을 지나는 열차 13대가 무정차 통과했습니다.

전장연은 입장문을 내고 “4호선을 이용하시는 시민들께 무거운 마음으로 죄송하다”면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면담에 응한다면 선전전을 유보하겠다. 대화로 풀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공사는 강경대응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입니다.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서울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다 서울교통공사 측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서울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다 서울교통공사 측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립니다. 공사가 전장연의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안전문자를 발송한 2일부터 전장연에 후원금이 쏟아지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SNS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전장연 후원 인증 글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공사 측이 조정안을 수용한 전장연에 ‘불법’ 운운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러나 불편을 초래하는 시위 방식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시민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전장연이 지난 5일 후원과 연대에 감사하다며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 누리꾼 A 씨는 “아들이 전장연 시위로 인해 수업에 늦어 결석 처리되고 시험을 치르지 못해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통학에 1시간 걸리는 학교를 2시간 먼저 나가야 한다. 처음엔 지지하려 했지만, 이젠 지지보다 거부 반응부터 나오려 한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들도 아닌, 아침부터 수많은 인파를 뚫고 출근과 등교를 해야 하는 서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장연을 옹호하는 측에서도 매번 똑같은 시위 방식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전장연의 시위 방식은 온건한 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1995년 영국 장애인 직접행동 네트워크(Disabled People's Direct Action Network, DAN)의 시위 방식은 훨씬 과격했습니다. 이들은 버스를 탈 권리를 부르짖으며 휠체어로 도로를 막고 버스 밑으로 들어가는 등 목숨을 건 투쟁을 펼쳤습니다. 오늘날 영국 버스 대부분이 저상버스인 것은 이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법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는 것입니다. 장애인과 대다수 시민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는 것이 그들의 역할입니다.

전장연 이형숙 대표는 지난 3일 시위 중 “오늘 우리 투쟁을 조롱하고 짓밟은 경찰, 서울교통공사, 삼각지역 직원들. 여러분 모두 나중에 나이 들고 약해져서, 혹은 장애를 갖게 되면 꼭 지하철 엘리베이터 이용하십시오”라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해온 우리를 짓밟고 모욕한 오늘을 꼭 기억하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영화 ‘스위치’에서 박강은 조윤과 처지가 뒤바뀐 뒤에야 가족과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형숙 대표의 말처럼 꼭 ‘스위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그의 저서 <혐오사회>에서 “표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배제되고 멸시 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한다. 자신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는 이들의 감정에 이입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휠체어를 타고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며 울부짖는 동료 시민들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태도일 것입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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