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브라질, 미 공화당, 그리고 국민의힘
브라질에서 ‘대선불복’ 극우 시위대 폭동
미 극우 의원들, 하원의장 선거 어깃장
국민의힘 전당대회 극우 유튜버들 출마
■ 짓밟힌 브라질 민주주의
브라질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초록색 옷을 입은 시위대가 의회를 점거했다. 이들은 의회 건물 지붕에 올라가 ‘신(神), 조국, 자유’를 외쳤다. 또 다른 시위대는 대법원과 대통령궁에 난입해 무기를 탈취하고 경찰을 폭행했다.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진보 계열의 룰라 후보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당선되자 인정할 수 없다며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의 이들은 심지어 군(軍)이 쿠데타를 일으켜 룰라 대통령을 축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폭동을 일으킨 이들에 대해 룰라 대통령은 “파시스트”라며 비난했고, 각국 정상들도 “민주주의 파괴”라며 성토했다. 폭동은 이틀이 못 돼 진압됐다고는 하나 그 충격과 여진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 극우에 휘둘린 미국 공화당
브라질리아에서의 이날 폭동은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를 연상케 한다. 2020년 대선에서 패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대선불복을 외치며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의사당에 난입한 이들은 ‘위대한 미국 재건’을 기치로 내건 극우주의자들이었다. 2년이 지났지만 현재 미국은 그 사건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 진영에서는 당시 시위대를 폭도라고 규정하지만, 공화당 내 강경파와 극우 세력은 애국자라고 옹호하며 극심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건 공화당이 극우 세력을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휘둘린다는 점이다. 지난 7일 있었던 하원의장 선출 과정이 그랬다. 공화당의 공식 후보인 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력히 밀었던 매카시 원내대표가 무난히 선출될 걸로 다들 알았다. 하지만 매카시는 이날 무려 15번의 재투표 끝에 가까스로 선출됐다. 공화당 내 극우 성향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매카시가 타협적이라며 ‘반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해당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매카시는 하원의장 해임 조건을 크게 완화하고(프리덤 코커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해임할 수 있다는 의미), 법안 통과 열쇠를 쥔 하원 운영위원회 자리 상당수를 프리덤 코커스에게 내줌으로써 겨우 하원의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요컨대 매카시는 당내 극우 세력과 ‘거래’를 한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가에서는 매카시가 향후 사안마다 프리덤 코커스에게 발목을 잡힐 것이라며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소수의 극우 인사들이 공화당 전체를 쥐고 흔드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 국민의힘에 드리운 그림자
브라질과 미국에서의 이런 일들이 먼 나라의 모습일 뿐이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는 그런 일을 경험하고 있다. 2017년 제19대 대선 이후 부산과 서울 등에 나타났던 태극기 물결이 그중 하나다. 소위 ‘태극기 부대’ 중 상당수가 19대 대선은 부정선거였으며, 따라서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한 이들의 폭력적 행태와 엄청난 적대에서 우리는 극우의 그림자를 분명히 봤다.
그런데, 미국 공화당이 그런 것처럼, 극우의 그림자가 지금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에 드리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3월 8일 열리는 전당대회를 앞두고서다. 국민의힘은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의 규칙을 당원들만의 투표로 치르는 것으로 지난달 바꿨다. 이른바 ‘당심 100% 룰’이다. 이전에는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30% 반영했는데, 이번엔 아예 배제한 것이다. 그 결과 극성 당원의 입김이 더욱 거세지고 나아가 극우 성향으로 꼽히는 인사들이 세력을 키울 가능성이 커졌다.
우려는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김건희 여사 팬클럽을 운영했던 한 유튜버는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대표 출마를 밝힌 또 다른 인사는 “종북좌파 척결” “자유우파 대통합” 운운하며 색깔론으로 당내 강성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했다. 최고위원 선거도 주목된다. 10여 명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데, 거기엔 국민의힘 당원수(약 80만)보다 훨씬 많은 구독자수를 자랑하는 극우 유튜버들도 끼어 있다. 이들은 ‘친윤’ 주자임을 내세우며 세를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당선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당 지도체제까지 임의로 흔들 수 있다. 설마 당선까지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지만, 그리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들의 당선이 어렵다고는 해도 미국 공화당의 프리덤 코커스처럼 강경 목소리로 자신들의 지분을 내세우며 당 운영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극단의 정치는 국민의 불행
국민의힘은 과거 미래통합당 시절 ‘극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하지만 근래 국민의힘은 우경화의 길을 걷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때 정비한, 중도 지향의 정강·정책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한 의원은 “정강·정책 곳곳에 박혀 있는 민주당 흉내내기부터 걷어 내야 한다. 따뜻한 보수와 같은 유약한 언어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간신히 결별했던 극우 이미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극좌와 마찬가지로 극우는 위험하다. 극단의 정치는, 이번 브라질 폭동에서 보듯, 민주적 절차보다는 물리적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 테러를 비롯한 그 어떠한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극단의 정치에 휘둘리는 집권여당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만에 하나 그리 된다면, 그건 국민의힘이라는 일개 정당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 전체의 불행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