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원작 몰라도 재밌을까?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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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농구 만화 ‘슬램덩크’ 극장판이 인기입니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을 제치고 당당히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선 3040을 중심으로 ‘역대급 명작’이라는 극찬이 자자합니다. 원작 만화를 전혀 보지 않은 사람도 ‘슬램덩크’ 극장판을 재밌게 볼 수 있을까요? 직접 관람해봤습니다.


슬램덩크 안 봤어도 ‘중꺾마’는 통한다

90년대생인 기자는 1996년 연재가 종료된 ‘슬램덩크’ 만화책을 한 번도 펴본 적이 없습니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입문(?)해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로 만화의 세계에 빠졌던 세대입니다. 슬램덩크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일부 등장인물과 만화 속 명장면을 인터넷에서 본 적은 있습니다.

농구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기본적인 규칙은 고등학생 때 배웠고, 대학 시절 몇몇 선배들과 미니 게임을 종종 해본 게 전부입니다. 그런 ‘농알못’(농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눈에도 지난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등학교 농구부 주전 선수들이 한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원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주인공은 강백호인데, 영화는 송태섭 위주로 흘러갑니다. 송태섭이 아픈 가족사를 극복하고 ‘전국최강’ 산왕공고 농구부를 상대하는 과정이 극의 큰 줄기입니다. 송태섭의 등번호 7번에 담긴 의미도 전달합니다.

극 중 산왕공고 농구부는 자타공인 전통강호이자 절대강자입니다. 산왕과 비교하면 송태섭이 몸담고 있는 북산고 농구부는 전형적인 ‘언더독’ 입니다. 북산의 선배들은 ‘전국제패’라는 대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장 채치수를 중심으로 모여든 강백호, 정대만, 서태웅 그리고 송태섭은 열정과 투지만큼은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크고 작은 약점도 있습니다. 특히 송태섭은 비교적 작은 신장 때문에 언더독 중에서도 언더독 입니다. 완벽한 선수들로 팀을 꾸린 산왕 앞에서 북산은 희생양에 불과해 보입니다.

사실 언더독의 유쾌한 반란은 애니메이션이나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이고 흔해 빠진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는 피가 끓어오르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선 긴장감과 박진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사력을 다해 속공을 펼치는 서태웅, 위기의 순간마다 팀을 구해내는 강백호의 모습을 타이트한 클로즈업과 슬로모션으로 구현하니 실제 경기를 볼 때보다 더한 몰입감이 느껴집니다. 2D와 3D의 경계에 있는 듯한 작화도 인상적입니다. 원작 만화의 질감은 살리면서도 공간감과 속도감을 불어넣었습니다. 3D로 모델링을 하고 2D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텍스쳐를 입히는 ‘카툰렌더링’ 기술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완급 조절도 기가 막힙니다. 적재적소에 깔리는 일본 유명 밴드의 음악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절정의 순간에 음악 대신 흐르는 정적은 극장 안의 모두를 숨죽이게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완전 멋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송태섭의 서사도 꽤나 감동적입니다. 영화는 북산 대 산왕의 경기 장면과 송태섭의 성장 과정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슬램덩크 원작 내용을 전혀 몰라도 극의 흐름을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눈시울이 붉어져 울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주변을 보니 다들 손으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슬램덩크’ 송태섭. ‘더 퍼스트 슬램덩크’ 공식 포스터 캡처 ‘슬램덩크’ 송태섭. ‘더 퍼스트 슬램덩크’ 공식 포스터 캡처

물론 유머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백호의 익살스러움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인터넷에서 봤던 각종 ‘짤’과 명대사들을 만나는 것도 반갑습니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 “난 지금입니다” “왼손은 거들 뿐” 등등 이미지로만 봤던 유명한 장면과 대사들의 유래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년만화 특유의 도전정신을 촌스럽지 않게 그려낸 점이 좋았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에 따르면 관중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탑독’을 상대하는 언더독을 응원하기 마련입니다. 언더독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이러한 공식을 성공적으로 적용했습니다. 북산이 포기하지 않고 산왕을 상대로 득점을 해낼 때의 희열감은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합니다. 2시간 전만 해도 이름조차 헷갈렸던 슬램덩크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경기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팀워크가 강해지는 북산 5인방이 자랑스러워집니다. 영화가 끝난 뒤 지인들과 메신저 대화에서 “내 고향은 부산이지만, 제2의 고향은 북산”이라는 ‘주접’ 멘트도 날렸습니다. 전국민적 유행어로 등극한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원조격이 바로 슬램덩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더빙판과 자막판이 있습니다. 자막판으로 감상했는데 전혀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엔딩크레딧 후 짧은 쿠키 영상이 있습니다. 개봉 9일차인 지난 12일까지 59만여 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며 ‘아바타: 물의 길’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주말 황금시간대 EPL 빅매치…맨유 vs 맨시티

다시 축구로 돌아왔습니다. 토요일인 14일(한국시간) 오후 9시 30분 ‘맨체스터 더비’가 열립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는 14일 오후 9시 30분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서 2022-2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라운드 경기를 치릅니다.

맨유는 11승 2무 4패(승점 35)로 4위, 맨시티는 12승 3무 2패(승점 39)로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5번의 정규리그 맞대결에선 맨시티가 3승 1무 1패로 우위에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올 시즌 첫 맨체스터 더비에선 맨시티가 맨유에 6-3 대승을 거둔 바 있습니다.

다만 최근 경기력은 맨유가 우세해 보입니다. 정규리그 최근 5경기만 놓고 보면 맨유는 아스톤 빌라에 1-3으로 패배한 뒤 내리 4연승을 거두고 있지만, 맨시티는 에버튼과 1-1로 비기고 브렌트포드에 1-2로 지는 등 비교적 들쭉날쭉한 성적(3승 1무 1패)을 거두고 있습니다. 리그컵 등 컵대회까지 포함하면 맨유는 8연승을 달리고 있어 기세가 무섭습니다. 반면 맨시티는 12일 열린 리그컵 8강에서 사우스햄튼에 0-2로 충격패를 당했습니다. 당초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로테이션을 가동했다가 리드를 허용하자 뒤늦게 엘링 홀란과 케빈 더브라위너 등 주전 선수들까지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맨유전을 앞두고 핵심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도 실패한 ‘최악의 수’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지난 12일 맨시티의 공격수 엘링 홀란(가운데)이 사우스햄튼 선수들과 볼 경합을 펼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2일 맨시티의 공격수 엘링 홀란(가운데)이 사우스햄튼 선수들과 볼 경합을 펼치고 있다. AP연합뉴스

맨유의 공격수 마커스 래시포드가 지난 11일 리그컵 8강서 찰튼 애슬레틱을 상대로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맨유의 공격수 마커스 래시포드가 지난 11일 리그컵 8강서 찰튼 애슬레틱을 상대로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맨체스터 더비’의 매치 포인트는 단연 공격수 대결입니다. 벌써 21골로 리그 득점왕을 노리고 있는 맨시티의 괴물 공격수 홀란은 맨유의 경계대상 1호입니다. 하지만 맨유의 마커스 래시포드도 최근 6경기 연속골에 성공하며 최상의 경기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 BBC는 ‘어떻게 래시포드가 최고의 폼으로 돌아왔는가’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래시포드의 성장 비결로 혹독한 훈련을 꼽았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래시포드는 올 시즌을 앞두고 자체적으로 포틀랜드와 뉴저지의 훈련장에서 ‘프리-프리시즌’ 훈련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달리기와 근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는 맹훈련에 임했고, 이어 프리시즌 투어 기간에 총 313분이나 뛰며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습니다. 래시포드 스스로도 이 시간을 두고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맨유는 이번 더비에서 승리하면 3위에 오르고 맨시티와 승점 차를 1점으로 좁히게 됩니다. 맨시티 입장에선 승점 5 차이로 리그 선두를 달리는 아스날(승점 44)을 추격하기 위해 맨유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손흥민이 지난 5일 크리스탈 팰리스와 정규리그 경기서 골을 넣은 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손흥민이 지난 5일 크리스탈 팰리스와 정규리그 경기서 골을 넣은 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맨체스터 더비 못지않게 기대되는 경기는 ‘북런던 더비’입니다. 손흥민의 토트넘은 16일 오전 1시 30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아스날과 맞붙습니다. 5위 토트넘(승점 33)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인 4위 쟁탈을 위해, 1위 아스날(승점 44)은 선두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리해 보이는 건 아무래도 아스날입니다. 토트넘과 최근 5번의 리그 맞대결을 보면 아스날은 3승 2패로 조금 앞서는 수준이지만, 경기력을 살펴보면 훨씬 우위에 있습니다. 최근 5번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토트넘은 2승 2무 1패로 저조한 편이지만, 아스날은 4승 1무로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습니다.

토트넘에는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가장 큰 단점은 허술한 수비입니다. 최근 리그 5경기에서 총 9골을 실점, 3골을 허용하는데 그친 아스날과 크게 비교됩니다. 다만 직전 경기인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 4-0 대승을 거둔 점은 고무적입니다.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던 손흥민 역시 이 경기에서 리그 4호골을 넣고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걸리적거리는 마스크를 호쾌하게 벗어던졌던 손흥민이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나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쏠립니다.

이 밖에도 일요일인 15일엔 오전 0시에 리버풀과 브라이튼, 오후 11시에 첼시와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기 등 빅클럽 경기들이 이어집니다. 모처럼 재밌는 축구 경기들을 연이어 만날 수 있는 주말입니다.

다음 주면 ‘교섭’과 ‘유령’ 등 기대작들이 개봉하는 만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이번 주말이 마지막일지 모릅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풍성한 주말 즐기시기 바랍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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