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중대선거구제, 내년 총선 때 가능할까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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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시행된 소선거구제로 정치 양극화 심화
중대선거구제, 양당 구도·지역주의 완화 기대
정당·의원마다 선거제 개편 득실에 동상이몽
민의 대변 극대화 차원 정치개혁 속도 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한 언론사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 의사를 밝혔다. 이후 이 선거제도에 여야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며 논란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며 갈등이 깊어졌다”면서 “지역 특성에 따라 2명, 3명, 4명을 선출해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중대선거구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때마침 김진표 국회의장도 내년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인 오는 4월 10일까지 선거제도 개편을 이뤄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맞이한 설날 연휴에 가족, 친구들이 만나 정치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떤 것이 소재가 될까? 중대선거구제 검토를 비롯한 선거제 개편은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개혁 방안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번 설 명절 밥상머리 민심의 주요 관심사가 될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 의사를 밝혔다. 부산일보DB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 의사를 밝혔다. 부산일보DB

소선거구제가 낳은 부작용

윤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한 까닭은 현행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가 여야 간 극심한 정쟁을 빚는 거대 양당 구도를 공고히 하고 지역주의까지 심화하고 있어서다. 사실, 최다 득표자 말고는 모조리 낙선하는 소선거구제는 다수당의 출현에 유리한 구조여서 정국 안정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유권자가 출마 후보자들을 파악하기 쉽고 선거 관리가 용이하며 선거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소선거구제는 민주화 이후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부터 30년 넘게 시행되는 동안 여야의 거대 양당 구도를 고착화했다. 거대 양당이 국회의 대부분 의석을 차지하고 양분한 가운데 한국 정치를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당리당략이나 이념을 앞세운 정쟁으로 본연의 업무에 소홀한 ‘식물 국회’, 사사건건 충돌하고 몸싸움까지 불사하는 ‘동물 국회’ 등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또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구조는 무수히 많은 사표를 만들며 지역 표심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는 제1당만 살아남아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판치도록 만든다. 이로써 제3, 4당 등 소수 정당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봉쇄되고 있다. 이는 대구·경북에서 국민의힘이, 광주·전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국회의원 자리를 싹쓸이하고 있는 데서 여실히 증명된다. 1당 출신이 아닌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을 선출하는 게 불가능해 결국 정치나 지역에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소선거구제 개편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이유다.

중대선거구제는 어떤 제도?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다. 세부적으로는 윤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선출 의원이 2~4명이면 중선거구제, 5명 이상은 대선거구제로 분류한다. 선출 인원이 늘어날수록 선거구의 크기도 커진다. 하나의 선거구에서는 정해진 의석수에 따라 득표 순서대로 각 정당이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이 때문에 중대선거구제는 작은 정당의 당선자 배출과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여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주 거론돼 왔다. 하지만 실제 개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해 실시된 6·1 지방선거에서 전체 기초의원 선거구 1030곳 중 30곳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 바 있다. 지역의 다양성을 높이고 민의의 대표성을 확대하려는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30곳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96.3%나 되고 소수 정당은 4명에 불과해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한 선거구에 복수 공천된 거대 양당 후보들에게 쏟아진 몰표 탓이다. 이에 대해 중대선거구제가 거대 양당 독식 체제를 타파하기는커녕 양당의 동반 부패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까지 총선의 중대선거구제가 별다른 도입 움직임 없이 제안이나 논의 수준에 그친 이유는 집권 여당과 거대 제1 야당의 기득권 집착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실시될 경우 지역주의가 강한 영남과 호남에서도 소수당의 당선자 배출은 물론 지역에 기반한 신생 정당의 창당과 의석 확보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는 영남에서 ‘비윤’(비윤석열) 계열 보수 정당이 창당되고 호남에선 비민주당 성향을 가진 지역당이 출현하는 등 같은 진영 내에서도 그룹이 나눠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거대 양당에 좌우되는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없애고 다당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중대선거구제가 필요하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에게는 세력 분열·약화의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꺼려지기도 할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특정 정당의 복수 공천이 가능하더라도 후보자 난립과 과열 경쟁, 계파정치 심화, 정치 신인 불리, 선거 비용 증가 등이 예상돼 정치권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청에 마련된 투표소. 부산일보DB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청에 마련된 투표소. 부산일보DB

부산 선거구에 미칠 영향

부산 지역 상당수 국회의원들 역시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부정적이거나 미온적인 입장이다. 주된 이유는 선거제가 중대선거구제로 개편돼 내년 4월 총선에서 적용된다면 현역 의원은 지금보다 불리한 환경에 놓이게 돼 경우의 수를 따져야만 해서다. 현재의 동래·금정·연제 3개 선거구가 중대선거구제에 의해 1개 선거구(가칭 ‘동래권’)로 묶일 경우 이들 선거구가 지역구인 김희곤·백종헌·이주환 등 국민의힘 소속 초선 의원 3명은 공천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이들은 만일 같은 당 출신의 또 다른 유력 후보가 공천 경쟁에 나서거나 당의 전략공천을 받을 경우 당선은커녕 공천조차 장담할 수 없을 전망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상황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시 남구와 수영구, 중·영도구와 서·동구, 해운대구와 기장 등 현재 인접한 선거구는 각각 단일 선거구로 합쳐져 지역구가 지금보다 넓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 선거구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도 더욱 격렬해질 공천 경쟁 속에서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마찬가지다. 혹시나 공천에서 탈락하더라도 무소속 출마를 통해 2명 이상인 당선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이러한 측면에서 평소 지역구를 충실히 누볐거나 인지도를 잘 다진 거대 양당 후보나 중진 정치인이 공천에서 생존해 선거에서 당선될 확률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최인호·박재호 등 부산의 민주당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를 기대하고 반기는 눈치다. 최근 잇단 선거에서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30~40% 정도 지지율을 확보한 민주당이 중대선거구로 챙기는 이득이 호남에서 10%가량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국민의힘의 이득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지역의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후보자가 늘어나 모든 후보의 자질과 공약, 정보 등을 꼼꼼하게 살피기 힘들어지는 것이 중대선거구제의 단점이다. 현행 선거구 2곳 이상을 하나로 합치게 되면 지역 면적이 넓어지고 유권자가 크게 증가하는 만큼 출마자들의 선거운동과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에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되는 문제점도 있다.

1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소위가 개최한 선거제 개편 공청회. 연합뉴스 1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소위가 개최한 선거제 개편 공청회. 연합뉴스

중대선거구제, 전망과 과제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관련 발언은 실제 도입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정치개혁 어젠다의 선점 효과를 노린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최근 40%대 초반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에 힘입어 유리한 정치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개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던진 화두라는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인 노동·연금·교육에 이어 요구되는 분야가 정치개혁인 것이다. 아무튼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는 선거제 개편에 관심이 컸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16일 여야 의원 60여 명이 참여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개시했다. 이들은 소선거구제 개편에는 의견을 같이했으나 중대선거구제 등 구체적 방법론에서는 의견 차이를 드러내 진통을 예고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국회의장의 선거제 개편 지침에 따라 지난 19일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는 공청회를 열었다. 정개특위는 주 1회 이상 회의를 갖고 4월 10일 선거제 개편 시한까지 개편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여야 모두 내부에서 백가쟁명식 논의가 이어지며 선거제 개편에 대한 회의론마저 나오고 있어 이번에도 용두사미식 논의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이는 각 당과 의원들마다 선거제 개편을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제도가 자기에게 더 유리한지, 득실부터 따지는 정략적 시야에 갇혀 있어 개편 역시 정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선거제 개편에 필수적인 여야 합의가 쉽지 않아 내년 총선의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은 실정이다. 더욱이 정치개혁을 희망하는 국민들의 여론이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선 의외로 미지근한 사실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의 잇단 여론조사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총선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찬성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 중대선거구제 추진에 험로가 예상된다. 또 여론조사 결과, 진보·보수·중도층 모두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반대 의견이 강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국민들이 선거제 개편 작업을 국회에 맡겨 두고 마냥 지켜만 볼 게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을 논의에 참여시키고 사회 여론을 적극 반영할 것을 주문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 18일 보수와 진보 진영을 망라한 전국 65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권에 진영과 정파를 초월해 선거제 개혁을 이뤄 내라고 촉구한 것은 고무적이다. 선거제 개혁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진영 구분 없이 한목소리를 낼 정도로 국민의 염원이라는 걸 웅변한다. 정치권이 무겁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어떤 제도든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여야 정치권이 정략적 계산을 넘어 민의에 입각한 선거제 개혁을 위해 최선의 방안을 도입하는 데 힘을 모으고 속도를 낼 일이다. 이와 함께 여야의 논의 과정에서 지방의회 의원들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가 심한 정당 공천제를 개선하는 방안도 같이 검토돼야 마땅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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