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설 연휴 한국영화 대전, 교섭 vs 유령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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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교섭' 공식 포스터(왼쪽)와 '유령' 공식 포스터 영화 '교섭' 공식 포스터(왼쪽)와 '유령' 공식 포스터

설 연휴를 앞두고 한국 영화끼리 정면으로 붙었습니다. 황정민과 현빈을 앞세운 ‘교섭’과 설경구·이하늬·박소담이 합을 맞춘 ‘유령’이 지난 18일 개봉했습니다. ‘교섭’은 2007년 아프간 피랍 사태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유령’은 항일조직 비밀 요원을 색출하는 과정을 다뤘습니다. 두 영화 모두 매력 포인트가 있지만, 아쉬운 점도 남습니다. 연휴 기간 시간을 내서 기꺼이 볼 만한 영화들인지, 가족들과 함께 보기에도 손색이 없을지 살펴봤습니다.


‘순한 맛 액션’ 교섭, 온가족 보기에도 무리 없어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업 액션영화에서 수위 높은 잔인한 장면을 보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점점 ‘리얼’한 액션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신체가 잘려나가고 유혈이 낭자하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라도 부모나 10대 초반의 학생들과 함께 보기에 괜찮을지 걱정이 앞서는게 사실입니다.

교섭의 임순례 감독이 고민하는 지점도 이와 같습니다. ‘리틀 포레스트’(2018) 이후 5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임 감독은 “영화를 보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관객 입장에서 조금 불편하더라”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교섭을 연출하면서 주력한 부분에 대해 “일단 사람을 많이 죽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총을 쏘거나 사람을 죽일 때 이유가 있는 액션을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섭은 2007년 한국 교인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된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작품입니다. ‘이론파’인 외교부 실장 정재호(황정민 분)와 ‘실전파’인 국정원 요원 박대식(현빈)이 삐걱대면서도 함께 손을 잡고 인질을 구하는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연신 부딪히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결국 대의 앞에 힘을 모으는, 자칫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우려를 안고 영화를 봤는데, 괜한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황정민과 현빈의 브로맨스’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디테일에서 어색함이 드러납니다. 예컨대 누가 보더라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박대식이 “이제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묻자, 정재호는 “가만히 있어 봐, 생각 좀 해보자”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대식은 대뜸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냐”며 재호의 멱살을 잡고, 두 사람은 한 바탕 붙습니다. 관객으로선 갑자기 왜 싸우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교섭' 공식 포스터 영화 '교섭' 공식 포스터

갈등을 빚던 남자들이 우정을 쌓는 모습을 보여주려는건 알겠는데, 갈등을 빚는 이유가 빈약해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캐릭터도 아쉽습니다. 영화 속 정재호와 박대식은 ‘깡다구’가 좋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진 않습니다.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멋진 수염으로 마초 냄새를 물씬 풍기는 대식입니다. 대식은 세평도 좋지 않고 다혈질이지만, 현지 사정에 밝고 직감을 따르는 국정원 요원입니다. 이런 유형의 캐릭터는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유능함을 뽐내야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빈은 전투 능력을 제외하면 정보원으로서는 무능한 편에 가깝습니다. 책임감과 사명감도 투철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현빈의 필모그래피에서 교섭의 박대식이 ‘인생캐’가 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정재호도 다소 아쉽습니다. 재호는 외교부 실장으로서 피랍된 자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합니다. 황정민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대의를 위해 상관도 들이받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 황정민은 교섭에서 처음 보는게 아닙니다. 심금을 울리는 대사로 감동을 줘야 하는데, 그나마 힘을 실은 대사는 예고편에서 이미 봤던 것이라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껄끄러운 두 사람 사이에서 능청을 떠는 통역 담당자 카심(강기영 분)은 전형적이고 일차원적인 캐릭터지만 감초 역할은 잘 해냈습니다.

극의 전개, 액션은 전체적으로 무난한 편입니다. 차량 추격신 정도를 관람 포인트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임 감독의 말대로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보기에 불편한 잔인한 장면은 없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를 기대했다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요르단 현지에서 촬영한 덕에 한국 영화서 보기 힘든 이국적인 냄새도 물씬 풍깁니다.

납치범과 협상하는 영화들의 ‘킬링파트’는 납치범과 협상가가 단독으로 대면하는 대목일 겁니다. ‘교섭’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재호가 극의 후반부에 목숨을 걸고 탈레반 사령관과 독대해 대담한 협상을 벌입니다. 잘 만든 영화는 여기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교섭에서는 그 정도의 서스펜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또 이런 유형의 영화에서는 악역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협상’(2018)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것은 현빈이라는 매력적인 악역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섭에서는 악역의 존재감이 미미해 긴장도가 떨어집니다. 이왕 실제사건을 각색한 만큼 탈레반 사령관이라는 악역의 비중을 늘리고, 재호와 대식이 합심해 그를 상대하는 구도를 강조했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습니다.

다른 관객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실관람객만 만족도를 평가할 수 있는 CGV ‘골든에그’ 지수는 개봉 이튿날인 19일 오후 3시 현재 79%에 그쳤습니다. 포털사이트 관람객 평점도 7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겠습니다. 납치, 협상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악역 못지않게 ‘무고한 인질’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혹평 중에는 인질이 됐던 교인들을 비난하는 내용도 많습니다. 정부 경고를 무시하고 여행제한국가였던 분쟁지역에 입국해 위험을 자초했다는 취지입니다. 인질에 대한 반감을 안은 채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인질이 구출되더라도 희열감이나 해소감을 느낄 리가 없습니다. 반대로 그런 인질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임 감독의 휴머니즘에는 공감을 보낼 관객도 있겠습니다. 임 감독은 지난 17일 공개된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영화만 보고 생각을 정리해보시길 바란다. 영화 자체로 혹은 실제 사건을 찾아보면서 영화를 즐겼으면 좋겠다”며 “과연 국가의 기능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해보면 의미 있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새로운 시도 돋보인 유령…완성도는 글쎄

교섭에 맞불을 놓은 유령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독전’(2018)을 연출했던 이해영 감독의 작품입니다. 조선총독부에 잠입한 항일단체 ‘흑색단’의 비밀 요원 ‘유령’을 색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총독의 경호대장인 카이토(박해수 분)가 5명의 용의자를 한 호텔로 불러 모으면서 치열한 심리전이 펼쳐집니다.

카이토가 호텔에 가둔 용의자는 엘리트 군인이었지만 통신과 감독관으로 좌천당한 무라야마 쥰지(설경구)와 조선 최고 재력가의 딸이자 통신과 직원인 박차경(이하늬), 정무총감 직속 비서 유리코(박소담), 통신과 암호해독관 천계장(서현우) 등입니다. 시놉시스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용의자들을 한 데 모아놓고 범인을 색출하는 것은 추리 영화에선 흔한 설정이지만, 일제강점기 영화에서는 드물었습니다.

영화는 첩보 심리극으로 시작합니다. 배경과 출신이 다양한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합니다. 관객들은 ‘유령’의 존재를 미리 인지한 상태에서 이들의 심리전을 지켜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나이브스 아웃’과 같은 훌륭한 추리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선사하지는 못합니다.

용의자들과 갇혀버린 ‘유령’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이 영화의 핵심 축입니다. 이 과정에서 화려한 액션과 영상미가 돋보입니다. 특히 2023년에 걸맞은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이 특징입니다. 유관순 열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제외하면, 일제감정기 배경 상업영화에서 여성 주연들이 이렇게 전진 배치된 적은 없었습니다. 설경구와 이하늬가 사력을 다하는 격투신은 여성과 남성의 주먹다짐이라는 점을 잠시 잊게끔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유령 역시 아쉬운 점들이 많습니다. 우선 영화의 핵심 포인트인 액션이 과합니다. 화려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습니다. 근거리에서 일본군들이 총알을 퍼붓는데 주인공은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사격 훈련을 아주 게을리 했나 봅니다. 반면 주인공은 원거리에서도 쏘는 족족 일본군들을 쓰러트립니다. 인간의 한계는 물론이고, 당시 재래식 무기의 한계까지 뛰어넘는 전투능력을 선보입니다.

박해수가 맡은 악역 캐릭터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경호대장 카이토는 영화에서 악독하면서도 아주 신중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신중한 인물치고 실제 전술과 행동은 상당히 허술합니다. 당연히 지켜야 할 곳을 지키지 않아 번번이 유령에게 유리한 환경을 허용합니다.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의 톰처럼, 목표의식은 뚜렷한데 무능합니다. 그 수하들도 마찬가지여서 경계가 느슨하기 짝이 없습니다.

카이토와 부하들이 무능한 것이 황당한 액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설계’였다면 이해할 여지가 있겠습니다. 일례로 ‘유령’이 도망갈 곳 없이 엄폐물 뒤에 고립돼 있는데, 카이토를 비롯한 일본군들이 엄폐물에 냅다 총알을 퍼붓고 있는 장면 말입니다. 악역이 치밀하지도 유능하지도 못하니 ‘유령’들이 위기를 헤쳐 나갈 때의 쾌감도 덜합니다.

19일 현재 포털사이트 관람객 평점에서 영화 ‘유령’은 7점을 조금 넘었고, CGV 골든에그지수는 80%로 나타나 역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의 뛰어난 영상미는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과감하면서도 정교한 색감을 활용한 미장센이 중독성 있습니다. 주·조연들의 연기 모두 훌륭하고, 그 중에서도 새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 박소담이 인상적입니다.

설 연휴를 노리고 개봉한 ‘교섭’과 ‘유령’ 모두 기대에는 못 미칩니다. 두 영화 모두 감동이나 여운을 남기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나름의 관람 포인트가 있는 영화들이라 참 아쉽습니다. 관객들의 혹평도 거셉니다. ‘이도저도 아니다’는 취지의 지적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교섭의 경우 인질협상극에 액션, 브로맨스, 서스펜스 등 요소를 모두 담으려 했습니다. 유령도 첩보물, 액션, 독립운동 등 여러 장르에 손을 대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 악수가 된 모양새입니다.


여론 반영했다는 ‘Busan is Good’, 왜 반응 나쁠까

지난 13일부터 부산시 새 슬로건으로 확정된 ‘Busan is Good’을 향한 혹평의 원인도 결이 다르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애써 ‘반응이 엇갈린다’고들 하지만, 혹평이 압도적인게 사실입니다. 관련 소식을 다룬 <부산일보> 포털사이트 기사에는 “다이나믹 부산만 한 게 없다” “후보 3개 모두 별로였다” “다이나믹 부산이랑 붙었으면 다 떨어졌을 것” “모른 척 해줄테니 다이나믹 부산으로 돌리면 안 될까” 등 댓글들이 압도적인 공감을 얻었습니다.

물론 단순히 20년간 보고 들은 슬로건 ‘다이나믹 부산’이 익숙하기 때문에 거부 반응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획을 주도한 전문가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슬로건이란 건 사실상 있을 수 없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한 누리꾼의 “솔직히 아무런 특색도, 독창성도, 의미도 없다”는 댓글이 핵심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 댓글의 ‘좋아요’와 ‘싫어요’ 비율이 100대 1 수준입니다. “부산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도시브랜드”라는데, ‘Busan is Good’에선 부산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부산다운 뭐 그런게 빠졌다 아입니꺼”라는 댓글이 또 한 번 핵심을 관통합니다. 반면 ‘다이나믹 부산’에선 역동적인 도시 부산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 누리꾼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살펴보니 부산은 물론 전국 다른 지역 누리꾼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권 친구들이 많은 단체 대화방에 ‘Busan is Good’이 새 슬로건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알리니 폭소가 터져 나와 씁쓸했습니다.

새 슬로건은 여론을 충분히 반영한 결과라고 합니다. 지난해 말 부산시민 1000여 명 대상 조사에서 71%가 ‘새로운 도시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이후 340명의 ‘부산 시민 참여단’을 구성해 기획 단계부터 소통했습니다. 시민들 아이디어를 모으는 슬로건 공모전을 열었고, 전문가그룹이 3개 후보안으로 압축한 뒤 시민 투표를 거쳐 선정된 것이 바로 ‘Busan is Good’입니다.

2003년부터 사용된 슬로건인 ‘다이나믹 부산’은 시민 투표로 선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민공모를 열고 3차례의 선정 자문회의를 거친 뒤 시 기획관리실장과 간부, 외부 전문가, 학계 및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선정위원회에서 10개의 공모작을 놓고 심사를 벌여 확정했습니다.

이후 부산시는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2018년 새롭게 출발하자는 취지에서 대표 슬로건을 공모한 바 있습니다. 680건이 넘는 아이디어가 모였지만, 오 전 시장은 기존의 다이나믹 부산을 유지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정착화가 이뤄진 데다 이를 뛰어넘을 만한 슬로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실 슬로건보다 중요한 것은 내실을 다지는 것입니다. 제목을 맛깔 나게 지은 영화라도 재미가 없으면 흥행에 실패합니다. 도시 경쟁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사카나 시카고, 시드니는 슬로건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특유의 도시브랜드와 세계적인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부산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려면 청년인구 유출과 고령화, 일자리 부족 등 산적한 과제들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살기 좋은 부산’이 돼야 부산의 자랑거리를 세계에 뽐낼 수 있을 겁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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