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새해 동기부여에 제격인 ‘골때녀’와 ‘피지컬: 100’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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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방송가에선 음식과 요리를 주제로 하는 ‘쿡방’이 유행했습니다. 지상파 예능을 통해 ‘스타 셰프’들이 탄생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스포츠 예능 전성시대가 왔습니다. 전·현직 스포츠 선수, 헬스 트레이너, 보디빌더가 TV와 동영상 플랫폼들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여자축구 예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SBS ‘골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은 어느덧 시즌3 결승전까지 마치는 대장정을 소화해냈습니다. 이에 질세라 MBC도 스포츠 예능에 ‘진심모드’로 뛰어들었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서바이벌 게임 예능 ‘피지컬: 100’을 지난 24일 넷플릭스에 공개했습니다. 새해부턴 열심히 운동하겠다는 다짐에 동기를 부여하는 두 프로그램을 추천합니다.


축구에 진심인 ‘골때녀’, 이렇게 재밌을 줄은…

골때녀의 시작은 실험적이었습니다. 2021년 2월,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이라며 공을 차본 경험도 없는 연예계 여성 인사 수십 명을 모아 풋살 경기를 시켰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최고 시청률 14%로 당시 설 예능을 통틀어 1위를 기록했고, 기세를 이어 같은 해 6월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습니다.

초창기 방송은 웃음 포인트가 많은 예능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력이 전무한 아마추어 여자 선수들의 허술한 움직임은 의도치 않은 ‘몸개그’를 연발했습니다. 이영표, 최진철, 이천수 등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 멤버들이 감독이 된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포인트는 축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진심이었습니다. 모델, 코미디언, 배우, 가수 등 번듯한 본업도 있는 여성 출연자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장면들은 감동과 희열을 선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적 같은 골을 넣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저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습니다. 매주 챙겨보는 해외 프로축구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었습니다.

시즌1 당시 모델로 구성된 팀 ‘구척장신’을 지휘했던 최용수 강원FC 감독은 출연자들의 투지가 프로선수들보다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최 감독은 2021년 8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특정 구단을 언급하며 “선수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구척장신보다 못한 멘탈”이라고 일갈했습니다.

“매일 개인운동만 하다 보니까 팀 스포츠를 할 일이 없었다. 남자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토로했던 모델 한혜진은 “축구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다. 너무 행복해서 비현실적”이라고 밝혀 축구 팬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골때녀는 수요일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내달리며 시즌2까지 순항했지만 이내 위기를 맞았습니다. 2021년 12월 조작 논란이 터지면서 프로그램 정체성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골 득실 순서를 편집으로 마구 바꾼 사실이 드러났고, 결국 제작진이 교체됐습니다. 여자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축구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시청자로서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밖에도 특정 구단에 실력자들이 쏠리며 발생한 밸런스 문제, 일부 출연자를 향한 과도한 악플 등 크고 작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연자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 만은 조작이 아닌 진심이었고, 시청자들도 이를 느낄 수 있었기에 프로그램 명맥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축구에 문외한이던 여성 연예인들이 똘똘 뭉쳐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서사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즐거웠습니다. 국악인 송소희처럼 뜻밖의 실력자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방송된 ‘골 때리는 그녀들’ 69화 방송화면 캡처 지난해 11월 방송된 ‘골 때리는 그녀들’ 69화 방송화면 캡처

출연자들이 늘어나며 승강제까지 도입한 시즌3는 굵직굵직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포르투갈 축구 레전드 루이스 피구와 한국 축구 레전드 박지성이 풋살팀 감독으로 대결을 펼치는 그림을 남긴 것이 대표적입니다. 시즌을 거듭하며 실력이 크게 향상된 출연자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저히 기량이 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벤치 멤버가 골을 곧잘 넣으니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최약체로 꼽히던 ‘구척장신’과 ‘FC 탑걸’이 결승전까지 올라간 점은 고무적입니다.

지난 설 연휴 기간인 23, 24일 연속 방송된 골때녀 특집 프로그램 ‘골림픽’은 설특집 예능 시청률 1위(1부 6.1%, 2부 5.0%)를 기록하며 여전한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이어 25일 방송된 시즌3 결승전 경기는 분당 최고 시청률 9.4%까지 찍는 등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출연자들이 발톱이 빠지고 뼈에 금이 가는 수난을 겪고도 축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요.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빌 샹클리 전 리버풀 감독은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 태도에 아주 실망스럽다. 나는 축구가 그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혹자는 이를 과장된 말이라 여기겠지만, 축구를 사랑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많을 겁니다. ‘FC 탑걸’ 주장인 채리나는 지난 25일 방송에서 결승전이 끝난 뒤 “저한테 축구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줬다. 너무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골때녀 덕에 관심이 생겨 실제로 축구를 해보고 흥미를 느꼈다는 여성 누리꾼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25일 방송된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결승전에서 ‘구척장신’ 주장 이현이(왼쪽)와 ‘FC 탑걸’ 주장 채리나의 모습. SBS 방송화면 캡처 지난 25일 방송된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결승전에서 ‘구척장신’ 주장 이현이(왼쪽)와 ‘FC 탑걸’ 주장 채리나의 모습. SBS 방송화면 캡처


포르투갈 여자축구 경기서 축구사 최초로 ‘화이트 카드’를 주는 캄포스 주심. ‘Canal 11’ 트위터 캡처 포르투갈 여자축구 경기서 축구사 최초로 ‘화이트 카드’를 주는 캄포스 주심. ‘Canal 11’ 트위터 캡처

최근 한 여자축구 경기에선 ‘화이트 카드’가 등장했습니다. 지난 21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포르투갈 여자축구컵대회 8강 벤피카와 스포르팅의 경기에서 주심 카타리나 캄포스는 흰색 카드를 들어 보였습니다. 관중석에선 박수갈채와 환호가 나왔습니다. 현지 중계 카메라는 옅은 미소를 띤 양팀 의료진 두 명의 얼굴을 잡았습니다. 이들은 경기 중 쓰러진 한 관중에게 즉각 응급 처치를 하고 벤치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축구 역사 최초로 화이트 카드가 등장한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스페인 ‘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화이트 카드는 포르투갈 축구협회가 ‘페어플레이’를 장려하는 차원에서 몇 달 전 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제도입니다. ‘스포츠의 윤리적 가치 향상’이 목적이라 합니다. 축구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투지를 선보이며 한국에 여자축구 붐을 일으킨 골때녀 출연자들에게도 화이트 카드를 주고 싶습니다.


완벽한 피지컬 찾는 ‘근징어게임’…출발은 성공적

스포츠 예능 전성시대답게 전국이 ‘육체미 소동’에 빠졌습니다. 동네마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헬스클럽은 몸매를 가꾸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운동 유튜버들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것도 ‘피지컬’(신체 능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다는 방증입니다.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 그 답을 찾는다.” 지난 24일 넷플릭스에 1, 2화가 공개된 서바이벌 게임 예능 ‘피지컬: 100’은 최고의 피지컬을 표방합니다. 내로라하는 피지컬 강자 100명을 모아 최후의 1인을 뽑는다는 내용입니다. MBC와 루이웍스미디어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습니다. 방탄소년단(BTS), 빅뱅, 블랙핑크 등 K팝 그룹들의 월드투어를 연출한 유재헌 미술감독, ‘오징어 게임’과 다수의 뮤지컬 작업에 참여한 김성수 음악감독, 봉준호 감독의 핵심 스태프로 꼽히는 최세연 의상감독, ‘PD 수첩’의 장호기 PD 등 각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투입됐습니다.

박성제 MBC 사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피지컬: 100’에 대해 “한마디로 국내 최고의 남녀 몸짱들이 체력을 겨루는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제작비도 웬만한 드라마만큼 투입해서 대한민국 리얼리티 콘텐츠 사상 가장 큰 스케일로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본 1, 2화는 제법 재미있습니다. 1화는 참가자 100명을 간략하고 속도감 있게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 격투기 선수 추성훈,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헬스 유튜버 심으뜸 등 낯익은 유명 인사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이밖에도 전직 특수부대원, 보디빌더, 외국인 스포츠 모델, 레슬링 선수, 야구선수, 치어리더 등 성별, 나이, 인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피지컬 강자들이 등장합니다. 헬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인플루언서들도 많지만, 낯선 얼굴도 꽤 보입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약물을 사용해 근육을 키운 이른바 ‘로이더’로 강하게 의심되기도 합니다.

피지컬: 100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분위기는 ‘오징어게임’과 흡사합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1인에게 억대의 상금이 주어진다는 설정은 동일합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오징어게임 같다”는 말이 나오고, 시청자들 사이에선 이미 근육과 오징어게임의 합성어인 ‘근징어게임’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피지컬: 100’ 예고편에 등장한 격투기 선수 추성훈(왼쪽)의 모습.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 캡처 ‘피지컬: 100’ 예고편에 등장한 격투기 선수 추성훈(왼쪽)의 모습.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 캡처

물론 뚜렷한 차별점이 있습니다. 모든 게임의 승패가 신체 능력으로 판가름 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각본에 따라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있습니다. 또 오징어게임과 달리 참가자들이 단순히 상금이나 생존에만 매달리지 않습니다. 각 분야 최고의 피지컬들이 모였기 때문에 자존심 싸움도 치열합니다.

1, 2화 현재까지 공개된 게임은 오래 매달리기와 1:1 매치입니다. 첫 게임부터 신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혼자 조용히 보다가도 입에서 ‘와’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없던 ‘고퀄리티’ 세트장에도 눈길이 갑니다. 설계에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납니다. 한 참가자는 “콜로세움에 선 검투사가 된 기분”이라고 표현합니다.

게임 종목들은 나름의 형평성도 갖췄습니다. 근력으로만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 민첩성, 스피드, 지구력, 근성 등 여러 신체 능력에 정신력까지 갖춘 사람이 최후까지 남을 수 있겠습니다.

원초적인 힘겨루기나 스피드로 승부를 펼치는 2화는 강렬합니다. 사실 기자는 호전적이지 않은 편이라 이런 장르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살벌한 신경전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하지만 힘 좀 쓰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1대 1로 대결하는 장면, 이건 굉장히 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끄는 보디빌더와 해군 특수전전단(UDT) 예비역 부사관의 맞대결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격렬한 몸싸움에 ‘다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승자가 궁금해 끝까지 지켜보게 됩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페어플레이를 펼치는 덕에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에피소드는 매주 2편씩 공개됩니다. 다음 편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27일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피지컬: 100’은 공개 2일 만에 전 세계 7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과 싱가포르에선 1위를 차지했고, 미국에서도 7위에 오르는 등 반응이 뜨겁습니다.


새해 들어 운동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평소 기자가 다니는 헬스클럽도 못 보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으려면 동기부여가 중요한 법입니다. ‘골때녀’와 ‘피지컬: 100’은 운동 동기부여 측면에서는 최고의 프로그램입니다. 목표를 위해 온힘을 쏟는 출연자들을 보고 있으면 삶의 의욕까지 돋우는 효과가 있습니다. 새해에 추진력이 필요한 독자 여러분께 두 프로그램을 추천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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