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부산 사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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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 가시화
노조 반발하며 “파업 불사” 경고
부산 전보 명령에 법적 대응 나서
부산시, 주거 등 각종 혜택 제시
실제 유인 효과 있을지는 의문
부산 사람 자존감에 상처 우려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모습.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모습. 연합뉴스

찜찜하고 불쾌했다. 부산 이전을 추진 중인 산업은행(산은)의 임직원들을 달래기 위해 부산시가 준비하고 있는 여러 지원 방안을 접하고서 그랬다.

산은의 새 건물 지을 땅을 제공한단다. 부산 오는 임직원에 대해선 각종 지방세도 감면해 주고, 아이들이 다닐 학교도 원하는 곳에 배정할 방침이다. 행여나 아플까 종합검진 서비스도 제공하고, 뮤지컬 등 문화공연 관람료나 체육시설 사용료도 깎아 주겠다고 한다. 살기 좋은 입지에 아파트를 지어 산은 임직원들에게만 특별히 공급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그 정도로는 어렵사리 부산에 오는 그들에겐 오히려 부족하며, 그래서 더한 보상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다. 지난해 10월 ‘산은 부산 이전 지원단’을 꾸린 부산시는 최근 산은을 직접 찾아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

부산시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지금 부산 형편에 산은 이전은 그 얼마나 감지덕지할 일인가. 그러나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들을 극진히 대하는 건 좋으나, 숱한 차별과 곤경에도 지금껏 부산을 지켜 온 부산 사람들의 자존감은 어쩔 것이며 그들이 갖게 될 박탈감은 또 어떻게 메울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지방 사는 설움을 새삼 깨닫게 되니 그 마음이 좋을 리 없다.

무엇보다, 그런 배려가 산은 임직원들에게 통할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된다. 지금 돌아가는 사정이 부산시의 기대와는 명백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산은은 최근 정기 인사를 통해 50여 명에게 부산으로 전보 명령을 내렸다. 산은 노조가 거세게 반발한다. 이번 인사는 무리한 결정이며,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이달 초 법원에 내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조는 이미 강석훈 산은 회장의 부산 이전 추진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12일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노조는 향후 추이를 봐 가며 파업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산은 임직원들은 그 어떤 유인책에도 부산으로 올 생각이 조금도 없음을 이 지점에서 확실히 깨닫게 된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관련해 부산을 비롯한 지방의 사람들은 오래전에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른바 ‘특공 먹튀’ 논란이 그런 상처의 하나다. 한 국회의원이 2010~2021년 사이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종사자를 조사했다. 그런데 이전한 지방의 혁신도시 아파트를 특별 공급받은 임직원 3명 가운데 1명 꼴로 실제 거주지나 근무지가 다른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에서는 ‘특공’ 아파트를 받은 뒤 불과 10일 만에 퇴사한 이가 있었고, 한 기관에선 ‘특공’ 아파트를 받은 64명 중 무려 40명이 전매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사례도 있었다. 지방에 오래 살라며 특별히 각종 혜택을 부여하며 아파트를 공급했는데, 혜택만 챙기고 지역을 떠나버리는, 얌체 짓을 벌였던 것이다. 지방이라고 해서 제집 마련이 수월한 건 아닌데, 이런 행위가 지역민에게 얼마나 불공정하고 괘씸하게 여겨졌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서울에서 잠깐 살다 부산으로 와서 수십 년을 살아도 자신은 언제나 서울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을 종종 본다. 이들은 지방민으로 있기를 거부한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 서울로 돌아가려 한다.

이런 형편에선 산은 같은 공공기관을 부산에 유치해도 진정으로 지역에 보탬이 되긴 어렵다. 한국거래소가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게 2005년 1월이다. 그 외에도 여러 기관이 현재 부산으로 이전한 상태다. 이들은 이전 후 지역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세밀히 따져 볼 일이다.

이들 덕분에 부산이 나아진 게 무엇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부산은 여전히 일자리에 허덕이고 청년이 떠나고 도시 소멸의 징후는 점점 심해질 뿐이다. 공공기관 이전은 실패작이라고까지는 말 못한다 해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민과의 상생” 운운하는 건 역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산은 임직원을 위해 부산시가 준비하고 있는 지원책들은 포인트를 잘못짚고 있는 게 아닌가 묻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요, 이쪽만의 짝사랑에 그칠 공산이 크다.

상상해 본다. 안 오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오게 해서 쓰는 것보다 차라리 이전하는 산은에 부산 인재를 데려다 쓰는 것을. 부산에도 산은 업무 따위 감당할 능력 갖춘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본사가 부산에 있는데 굳이 서울 사람 데려다 쓸 이유가 없다. 그냥 부산 사람을 쓰면 된다. 황당한 객기요 발칙한 상상이라고? 그리 말해도 어쩔 수 없다. 쓸데없는 넋두리라고 해도 좋다. 여하튼 서울 사람들이 부산에서 상전 노릇 하는 꼴을 더는 보기 싫으니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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