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밤, 따뜻한 불… “끌리는 대상과 시간을 그리고 있어요” [전시를 듣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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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영 개인전 ‘달과 불과 밤과 나’
10일까지 부산 중구 18-1갤러리
“밤, 내면 들여다보기 좋은 시간”
‘아주 사적인 풍경’을 그린 그림

오소영 '불'. 18-1갤러리 제공 오소영 '불'. 18-1갤러리 제공

“밤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 좋은 시간이죠. 20대 때도 스케치하러 가야지 하면서 밤에 돌아다니곤 했어요.”

오소영 작가의 개인전 ‘달과 불과 밤과 나’가 부산 중구 중앙동 18-1 갤러리(대청로141번길 18-1)에서 10일까지 열린다. 2020년 개인전 이후 부산에서 약 3년 만에 열리는 전시이다. 오 작가는 밤 풍경을 주로 그리는 이유에 대해 밤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사한 햇빛도 좋지만 그건 껍데기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안(내면)에 있는 것들이 밤에 더 잘 보여요. 센티멘털해지는 상황을 즐긴 것 같기도 하고요.”

오소영 개인전 '달과 불과 밤과 나'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오소영 개인전 '달과 불과 밤과 나'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1966년생인 오 작가는 부산대 미대를 졸업했다. 부산에서 활동하다 1년 반 전에 부친 오우암 작가와 함께 경남 함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활달하다고 그래요. 활달한 성격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적인 것을 지향하는 마음이 있어요. 산속으로 온 것도 고요한 것이 좋아서 그랬어요.” 이번 전시 작품은 모두 함양에서 그린 신작이다. “예전 그림과 비교하면 편안함이 느껴져요. 함양에 와서 안정을 찾았고, 아버지도 건강해지셔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계세요.”

오소영 '밤'. 18-1갤러리 제공 오소영 '밤'. 18-1갤러리 제공

지평선 위 작은 집을 그린 30호짜리 ‘밤’은 정확하게 말하면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담아냈다. 어두운 땅과 구름이 가득한 하늘의 모습까지 종교적 느낌이 강한 작품이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느낌이 나는 것 같네요.”

‘밤’과 함께 등장하는 ‘불’ 그림도 차분하다. 오 작가는 자신의 불은 ‘태워 없애는 불’이 아니라고 했다. “첫 개인전에서도 불을 그렸어요. 스스로 늘 ‘나는 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실제 사주에도 불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시절에는 자신을 ‘엄청나게 타오르는 불’이라 느꼈다면, 나이가 드니 ‘그런 시기가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제는 따뜻하게 조명하는 불이 된 것 같아요.”

오 작가는 최근 캔버스 대신 종이를 자주 사용한다. 유화 물감은 종이 위에서 흡수되고 번지고 또 미끄러진다. “캔버스 작업도 두 점 전시했는데 일부러 물감을 얇게 발랐어요. 유화의 두께감도 ‘치장’처럼 느껴졌거든요. 유화의 기술적인 면을 모두 배제하기 위해 무광 처리도 했죠.”

오소영의 '나'. 18-1갤러리 제공 오소영의 '나'. 18-1갤러리 제공

밤, 불, 달 그리고 작가 자신. 오 작가는 전시작 중 ‘나’를 그린 작품은 딱 1점이지만 자신은 모든 그림 속에 들어 있다고 했다. “까만 집 속에도 내가 있고, 하늘을 바라보는 내가 있죠. 내 앞에 펼쳐진 것들, 아주 사적인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거든요.” 자신이 끌리는 대상과 시간을 그리고 있다는 오 작가가 말했다. “밤, 불, 달, 나. 그들은 낱낱이기도 하지만 한데 어울려 있기도 해요. 앞으로도 그것들을 쫓아가며 계속 그릴 것 같아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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