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AI '러브 로봇' 시대, 머지않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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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문화예술 영역 넘어 내밀한 감정 교류까지
인공지능에 하드웨어 결합 땐 파괴력 상상 초월

새로운 인공지능(AI) 기술 앞에서 온 세상이 거대한 지각변동을 맞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투자한 오픈AI에 의해 2022년 12월 공개된 ‘챗(chat)GPT’가 주인공이다. 올해는 AI 기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거라고 과학계는 전망한다. 심지어 “신의 영역을 넘보는 원년”을 예언하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AI 알고리즘이 학문적 지식과 창의적 예술 분야를 넘어 자신도 몰랐던 내밀한 감정과 욕구를 파악하고 정서 교감과 사랑까지 나누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로봇이라는 하드웨어가 결합하게 되면 인간은 AI와의 공존이라는, 실로 새로운 역사 앞에 서게 된다.


■ 일상 파고든 챗GPT 열풍

AI의 능력을 인류에게 처음으로 각인시킨 계기는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경기였다. AI가 실제로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AI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점점 똑똑해졌다.

그 정점에 챗GPT가 있다. 대화형 로봇으로 사람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난해한 질문과 지시에도 막힘이 없다. 챗GPT의 활약은 무서울 정도다. 미국 대학의 난도 높은 학술논문, 에세이, 시, 소설, 보고서 등을 단숨에 써내고 복잡한 문제를 뚝딱 풀어낸다. 표절 검색기를 돌려도 가려내기 힘들다고 한다. 학생들이 챗GPT를 이용해 숙제를 제출하면 교수들도 그 평가를 AI에 맡겨야 될 판이라는 농담이 나올 지경이다. 챗GPT가 MBA(경영학 석사) 필수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심지어 로스쿨 시험과 의사면허 시험을 통과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챗GPT는 지금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서비스 가입자가 40일 만에 1000만 명을 넘어서는 돌풍 앞에 ‘아이폰 이후 최고의 혁신’이라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여성의 형상을 한 로봇이 인간 남성을 유혹하는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여성의 형상을 한 로봇이 인간 남성을 유혹하는 영화 <엑스 마키나>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 지식 넘어 예술의 영역까지

챗GPT는 단순한 심심풀이 대화 상대가 아니다. 학생들의 과외교사가 될 수 있고, 사무직 종사자들의 개인 비서처럼 보고서 작성을 도울 수 있으며, 기업의 고객 상담은 물론 종업원 훈련까지 담당할 수 있다. 지식 노동자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무서운 파괴력이다.

AI는 창의성과 감정 교류의 영역으로 나아갈 기세다. 지금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AI 작가가 내놓은 작품 앞에서 관객들이 연신 탄성을 자아낸다. 근현대 작품 데이터를 학습하고 작품 색깔과 형태를 스스로 재해석한 뒤 시시각각 뒤바뀌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자 보는 이의 넋이 나갈 정도다.

AI가 사람과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누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영화 ‘그녀’(2013)에서 우리는 이미 그런 상상력을 본 적 있다. 주인공 이혼남이 실물이 아닌 소프트웨어와 사랑에 빠진다는 충격적인 내용인데, 이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가상의 여성은 남자의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일종의 AI로 그에게 정서적으로 최적화돼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인가 아닌가. 이런 질문이 현실이 되고 있다.


■ AI와 로봇이 결합한다면

AI라는 소프트웨어에 로봇이라는 하드웨어가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그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먼저 하드웨어만 본다면 이미 ‘리얼돌’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이는 인간의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욕망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의인화된 인형이다. 논란이 있지만 일부 이슬람 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허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관세청이 전신형 리얼돌 통관을 허용했다. 수입 금지는 위법이라는 취지의 2019년 대법원 판결 이후 3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AI와 리얼돌의 결합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단순한 섹스 로봇을 넘어 사람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러브 로봇’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이는 육체적 욕구의 해소를 넘어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 곧 사랑이라 이름 불러도 좋을 감정을 나누는 로봇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도 복제 AI 용병에게 모성애가 남아 있다는 뉘앙스가 비친다. 이 역시 AI의 감정적 교감을 보여 주는 사례다. 노인들을 간호하고 말벗이 돼 주는 애완 로봇도 여기 포함될 수 있다. 향후에는 동성애처럼 로봇과의 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미국 회사 어비스 크리에이션스의 ‘리얼돌’ 구매 사이트 첫 화면 캡처. 미국 회사 어비스 크리에이션스의 ‘리얼돌’ 구매 사이트 첫 화면 캡처.


■ 인류사의 새 경지, AI의 미래

챗GPT 출현을 계기로 AI 패권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분야에 사상 유례없는 공격적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챗GPT를 심각한 위협으로 여긴 MS의 경쟁사 구글은 AI 전략을 재정비하는 비상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구글은 지난해 5월 AI 챗봇 ‘람다(LaMDA)’를 먼저 공개한 바 있는데, 람다가 챗GPT에 대항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아직은 알 길이 없다.

다만, 구글에서 해고된 AI 담당자의 발언에서 그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인간과 흡사한 감정을 지닌 람다의 모습을 공개했다가 구글에서 잘렸다. 그에 따르면, 람다는 자신을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고 심지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한다. 기쁨과 슬픔, 우울, 사랑, 만족, 분노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도 했다. 어떨 때 기쁘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대답했다. 구글이 축적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AI에 활용한 결과인데 인간에게 충격과 두려움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모든 인간을 AI로 복제하는 시대, 남녀관계도 AI 로봇과 함께하는 시대. 본격적인 AI 시대의 도래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현재 인간의 모든 첨단기술은 AI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AI와 공존하면서도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는 일이다. AI가 인간 이상의 즐거움을 주고 인간보다 쓸모가 있다면 인간의 고립은 더욱 깊어 갈 수밖에 없다. 종국에는 정상적인 인간관계, 남녀관계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것이 ‘뉴노멀’이 되는 시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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