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언론의 신뢰 위기와 얀테라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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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유엔(UN)이 2002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부터 상위권을 차지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비결은 높은 수준의 신뢰와 사회통합이다. 타인을 자신만큼 존중한다는 평등주의와 합의주의 사고는 북유럽 국가들의 오랜 문화이자 전통이다. 그 배경에는 북유럽 사회에서 수 세기에 걸쳐 불문율처럼 통용된 강력한 생활 규범인 ‘얀테라겐’(Jantelagen)이 자리하고 있다.

영어로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으로 번역되는 얀테라겐은 덴마크 태생의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가 1933년에 발표한 풍자소설 ‘도망자’에서 처음 등장한다. 소설 속 ‘규칙을 잘 지키는’ 마을 얀테에서는 소위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한다. 아니 ‘잘난 체하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주민들이 따라야 하는 열 가지 법칙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거나, 더 낫다거나, 더 많이 안다거나, 더 위대하다거나,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에서 언론 신뢰도 높아

타인 존중하는 평등·합의주의 영향

국내 언론, 북유럽식 사고 주목해야

신뢰 회복 위해 편향성 탈피할 필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얀테라겐은 이들이 스스로 겸손함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존중과 상호 평등 및 합의의 생활관을 형성하게 한 생활 규범으로서, 북유럽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로 분류되는데, 이 역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모르는 이기주의나 개인의 이익을 국가나 사회집단보다 우선시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개인주의와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스웨덴의 개인주의는 권리의 주체이면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는 ‘강한 개인’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되는데, 타인 존중을 바탕으로 한 평등주의와 합의주의 사고는 스웨덴의 오랜 문화이자 전통으로서 얀테라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행복지수 조사에서 늘 상위권을 지키는 북유럽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도 역시 높게 평가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뉴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하여 발표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뉴스 신뢰도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상위권을 지켜 오고 있다. 2015년부터 이 조사에 참여한 한국은 2022년 조사에서 뉴스 신뢰도가 46개국 가운데 40위로 최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 언론에 북유럽 국가는 부러움과 벤치마킹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유럽 국가에서 언론의 신뢰가 높은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우리 언론은 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가. 우리 언론 불신의 주요 요인으로 진영논리에 갇힌 정파적 편향성의 문제가 지적된다.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2〉에서도 3명 중 2명이 뉴스의 편향성으로 인해 뉴스를 회피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편향성이란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불균형적 태도로서,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옳다는 인식이나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존중하는 지나친 자의식과 우월의식은 편향적인 태도를 유발할 개연성을 높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언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언론인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42.7%)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32.2%)라고 답변하고 있다. 뉴스와 관련한 문제점들에 대한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서는 ‘뉴스의 편파성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70.5%가 그 심각성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언론인은 언론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하락하고,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이 축소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사기 저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우리 언론이 처한 총체적 위기 속에서 언론은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북유럽식 삶의 규범인 얀테라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우리 언론이 개인으로서건 집단으로서건 알게 모르게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거나, 더 낫다거나, 더 많이 안다거나, 더 위대하다거나,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진 않은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타인을 자신만큼 존중한다는 평등주의와 합의주의 사고를 형성한 얀테라겐이 높은 수준의 신뢰와 사회통합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언론산업 전반에 닥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신뢰 회복이 절실한 지금이 언론에는 자기성찰을 위한 최적의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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