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불황에 오히려 돈방석, 횡재세 어찌할꼬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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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고금리로 정유 업계·은행권 돈방석
임직원들에게 거액 성과급, 서민 박탈감 느껴
외부 요인 의한 이익 독식 막을 제도 논의 주목

2월 들어 갈수록 따뜻해지는 날씨에 새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 서민들의 삶은 고유가·고금리 등에 휘둘려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라고 하니,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오히려 호기로 작용해 돈방석에 앉은 곳도 있다. 일부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역대급 실적을 근거로 막대한 성과급을 누려서 대조적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부러움과 박탈감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고유가·고물가로 많은 국민은 고통 속에 신음 중이다.

자연스레 정치권을 필두로 ‘횡재세’ 논의가 나오면서 단번에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정치권에서 처음 제기됐던 횡재세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해에도 여전히 뜨거운 화제다. 횡재세 논란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난해 유가 급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국내 정유 업계가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횡재세’ 논란이 뜨겁다. 연합뉴스 지난해 유가 급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국내 정유 업계가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횡재세’ 논란이 뜨겁다. 연합뉴스

■ 역대급 이익, 곳곳에서 ‘돈 잔치’

최근 역대급 이익을 바탕으로 성과급 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곳은 정유 등 에너지 업계와 금융기관이다. 특히 지난달 혹한으로 난방비가 폭등하고 또 대중 교통비마저 올라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쪼들리는 판에 이들의 돈 잔치는 더욱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정유업계 ‘빅4(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가 거둔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약 15조 원.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이들이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성과급은 회사에 따라 1000~1500% 안팎에 이른다.

이에 앞서 고금리에 바탕을 둔 이자 수익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 금융업계와 카드사 역시 성과급 돈 잔치의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하나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의 작년 당기순이익 전망치 평균은 총 16조 5557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를 바탕으로 금융권은 지난해 말 희망퇴직자들에게는 ‘백만장자 명퇴 시대’란 말이 생길 정도로 후한 위로금을 줬고, 기존 임직원에게는 수백%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했다.

카드와 보험 업계도 마찬가지다. 고객에게 최대 18%에 육박하는 고금리 신용대출로 수익을 낸 카드사들도 작년 1~3분기에 전년보다 약 3조 3000억 원 늘어난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올렸다. 보험사 역시 지난해 3분기 동안 순이익이 전년에 비해 4조 8000억 원이나 급증한 역대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임직원들에 많은 성과급을 줬거나 줄 예정이다.


은행권 역시 예금·대출 금리 차이를 바탕으로 올린 막대한 수익으로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해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 은행권 역시 예금·대출 금리 차이를 바탕으로 올린 막대한 수익으로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해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

■ ‘우연한 횡재’ vs ‘정당한 이익’

정유 업계와 금융권의 많은 성과급을 비판하는 근거는 과연 이들의 돈 잔치가 순수한 노력의 결과물인가, 아닌가로 모인다. 외부 요인에 따른 고유가·고물가로 예기치 않은 엄청난 이익을 관련 업계가 독식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논란이다. 반면에 서민들과 다른 기업들은 고통이라는 반대급부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면 공평성 차원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정유 업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 상승의 혜택을 누렸고, 은행들은 금리 정책에 의한 예금·대출 이자의 차이로 인한 금리 마진이 주요 수입원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카드사와 보험사들도 고객들의 기존 혜택을 줄이는 방식을 통해 실적을 올린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체 노력이 아니라 외부 효과나 고객에게 갈 혜택의 축소를 통해 달성한 이익이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정유 업계는 국내의 경우 원유를 정제한 이후 석유 제품의 판매를 통해 올린 수익으로 다른 원유 생산국과는 입장이 다르다고 한다. 카드 업계는 조달 금리 상승으로 인해 불가피한 상황, 보험 업계는 손해율 개선에 따른 실적 개선 등으로 이익 급증을 해명했다.


고유가·고물가 등 외부 요인에 의한 막대한 이익에 따라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한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 설계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부산 시내 은행의 창구 모습. 부산일보DB 고유가·고물가 등 외부 요인에 의한 막대한 이익에 따라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한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 설계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부산 시내 은행의 창구 모습. 부산일보DB

■ 이익 독식 막을 제도 개선은 필요

완전한 우연에 의한 이익이든, 일부 외부 요인을 감안하든 간에 한쪽의 막대한 돈 잔치가 다른 한쪽의 눈물겨운 고통에 기반한 것이라면 공동체를 위해서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횡재세도 이런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횡재세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다르다. 정부·여당은 횡재세 도입을 반대하지만, 야권에선 이에 대한 입법 움직임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미 지난달에 고유가·고물가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취약 계층을 위해 ‘횡재세’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후속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고유가·고물가로 인해 국민 피해가 누적되고, 이로 인한 양극화가 더 심화한다면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제도 설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업계의 정상적인 영업 활동이나 수익에 대한 간섭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과 어울리지 않고, 업계의 자율적인 수익 추구는 그 자체로 보장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폭등하는 난방비, 고금리 등으로 취약 계층이나 중소기업이 벼랑 끝에 있다면 어떤 식이든 사회의 제도적인 완충 장치 또한 필요하다.

횡재세를 포함해 이름이야 어떻든 이에 대한 제도 설계의 움직임은 앞으로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가격 불안정이나 금리 요동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임을 고려하면 이에 따라 발생하는 불균형, 불평등의 시스템 모순은 그냥 놔둘 수 없는 문제임은 자명해 보인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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