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갈수록 세지는 '행동주의 펀드'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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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인 기업 지배 구조 개선
한국 증시 재평가 긍정적 기대

"하이브는 더 이상 K팝의 거장이 아니다. K는 사라지고 대중음악(pop)의 거장으로 올라섰다."

지난 10일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14.8%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자 CNN이 내놓은 논평이다. 불과 사흘 전인 7일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SM 지분 9.5%를 확보하면서 2대 주주가 되는 일이 있었다. 카카오에 이어 하이브까지 참전한 SM의 경영권 분쟁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3월 주주총회 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SM 지배구조 개선 요구였다. 갈수록 힘이 세지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SM에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연합뉴스 SM에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연합뉴스

■ SM 경영권 분쟁 아래에는

2년 전인 2021년 5월 네이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CJ ENM이 각각 SM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최대 주주인 이수만의 보유 지분 18.46%를 매각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결국 SM의 독특한 지배구조 때문에 인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SM은 이수만의 이니셜을 따왔다고 할 정도로 이수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상장회사 SM의 중심에는 이수만이 설립한 '라이크기획'이라는 개인 회사가 있었다. SM은 2021년까지 주주들에게 단 한 번도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동안 라이크기획에는 SM의 지난 10년 치 영업이익의 35%가 흘러들어 갔다고 한다. 무려 16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2019년에는 SM의 3대 주주인 KB자산운용이 라이크기획과 SM의 합병, 배당금 지급, 신규 사외이사 선임을 주장하는 주주 서한을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SM은 음악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제안이라면서 무시하고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연장했다.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로 출범한 얼라인파트너스는 그 뒤 혜성같이 등장했다. SM 주식을 1.1% 사들인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3월 주총을 앞둔 SM에 지배구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감사 선임 주주 제안을 한다. 에스엠은 답변을 피했지만, 주총에서 수많은 소액주주가 의견을 행사해 얼라인파트너스는 표 대결에서 승리한다. 창사 이래 첫 배당도 이루어졌다. 얼라인파트너스는 한 번 더 주주 서한을 발표하고 몰아붙여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도 끝내게 만들었다. SM은 결국 손을 들고 '팬, 주주 중심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의 도약'으로 요약되는 SM 3.0을 내놓고,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경영권 분쟁 수면 아래에는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이 있었다.

하이브는 SM의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다. 연합뉴스 하이브는 SM의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다. 연합뉴스


■ 단군 이래 최대 횡령 사건

치과용 임플란트 생산 공장을 부산에 둔 오스템임플란트는 2018년부터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1위 기업. 사람들은 오스템임플란트를 2021년에 있었던 자금관리 직원의 2215억 원 횡령 사건으로 기억한다. 회사 자본금의 108.18%, 단군 이래 최대 규모 횡령 사건이었다. 상장사에서 자기자본의 5% 이상을 횡령하면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오스템임플란트는 바로 주식 거래가 중지됐고,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도 받았다. 당시 범인은 횡령한 돈으로 구입한 금괴의 절반을 최규옥 회장에게 넘겼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경영진 연루 의혹에 대해서 경찰이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경영진이 회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 횡령 사건 이후 오스템임플란트는 지속적으로 M&A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이전에도 오너 리스크에 시달렸다. 최 회장은 2014년 치과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회삿돈을 해외법인에 부당 지원한 혐의로 기소되어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KCGI(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지분 100%를 보유한 에브리컷홀딩스는 오스템임플란트의 3대 주주(지분 6.92%)가 되면서 공개 주주 서한을 보냈다. 후진적인 지배구조 탓에 기업 가치가 저평가됐으니 최 회장은 퇴진하라는 것이다. KCGI의 공세에 대주주인 최 회장(보유지분 20.6%)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국내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 연합에 지분 절반가량(9.16%)을 넘기기로 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에 최 회장이 사실상 경영권을 포기한 것이다.


오스템임플란트는 그동안 오너 리스크에 시달려 왔다. 연합뉴스 오스템임플란트는 그동안 오너 리스크에 시달려 왔다. 연합뉴스


■ 내달 정기 주총 앞두고 맹활약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란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의결권을 확보한 뒤 기업에 구조조정, 주주 환원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 수익을 내는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를 말한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대상이 된 국내 기업은 2017년 3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7곳으로 늘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입김이 강해진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은 특히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올해 정기 주총에서 태광산업과 BYC에 주주들이 추천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연말 계열사인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경고를 받아들여 불참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BYC의 회계 장부를 열람한 결과 관계사에 대한 부당지원과 경영진의 배임 의혹이 드러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는 KT&G에서 한국인삼공사 주식을 100% 보유한 지주회사를 떼어 내는 분리 상장을 요구하고 있다. KT&G는 자회사 분리 상장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향후 5년간 4조 원의 투자를 단행해 10조 원의 매출액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새로 내놨다. SM을 상대로 주주 행동을 벌인 얼라인파트너스는 또한 7개 은행 지주에 주주환원 정책 수립을 요구해 주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네덜란드 연금투자 회사 에이피지(APG Investments Asia)는 KT에 경영진의 우호 지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상호주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변경하라고 주주제안을 했다. 에이피지는 그동안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와 현대산업개발의 건물 붕괴 사고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주주 자격으로 적극적인 질의와 제안을 해 오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증가가 한국 증시 재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합뉴스 행동주의 펀드의 증가가 한국 증시 재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합뉴스

■ 한국에서 행동주의 이제 시작

행동주의 펀드가 가장 흔히 요구하는 사항이 배당 확대다. 행동주의 펀드의 목적도 수익률이라 그 자체를 선하다고 볼 수는 없다.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 이익을 위해 기업을 공격하거나 기업 경영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어쨌든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기업들의 주가가 다른 기업들보다 더 오른 것은 사실이다.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오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이 저하될 가능성도 물론 있다. 이처럼 행동주의의 입김이 커진 데에는 자본시장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역할도 컸다.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기 때문이다.

KCGI 강성부 대표는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주가가 오르고 성과가 난다는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해야 한다. 성과가 쌓이면 더 많은 돈이 모일 테고,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는 더 빠르게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행동주의는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증가가 투자 대상 기업의 주가 상승과 한국 증시 재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행동주의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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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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